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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최만섭 2007. 2. 13. 16:55

 

1.
박속같이 고운  얼굴에
이 세상(世上)에 존재(存在)하는 모든 슬픔과
이 세상(世上)에 존재(存在) 하는 모든 기쁨을 숨긴 젊은 여인은
검정 머리카락 위에 하얀 윤기를 드라이로 말리면서
창 밖 봄바람의 유혹을 즐기고 있다.

 

거울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여인의 초록 나신(裸身)은
운명의 갈등으로 생긴 고통과 불행을 격은 후에
찾아오는 카타르시스가 된다.

 

심연(深淵)같이 깊은 가슴에
이 세상(世上)에 존재(存在)하는 모든 고뇌(苦惱)와
이 세상(世上)에 존재(存在) 하는 모든 번뇌(煩惱)를 숨긴 청년(靑年)은
삶에 대한 끝없는 의문(疑問)과 갈증(渴症)을 냉수로 해소 하면서 창 밖

이슬비의 유혹을 즐기고 있다.

 

거울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청년(靑年)의 황금 나신(裸身)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그리워하다가 물속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Narcisse)의 환생(還生)이다.

 

거울 속의 초라한 몸꼴에서 서글픔을 느낀 나는
육체(肉體)를 멸하고 마음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울에 보이는 형상(形狀)에서 어떻게 마음을 찾는단 말인가?

 

내가 만약 거울 속의 침묵(沈默)을 미소(微笑)로 깰 수 있다면
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거울 속의 침묵(沈默)이 가슴과 가슴으로 나누는
인간(人間)의 대화(對話)라는 사실(事實)을 증명(證明)할 수
있다면 나는 마음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2.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   拭莫使有塵埃
(신시보제수 심여명경대 시시근불식 막사유진애)
몸은 보리의 나무요/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며 티끌 끼지 않도록 하세
`신수 대사의 게송`에서


菩提本無樹  臺明鏡亦無 佛性常淸淨 何處有塵埃
(보제본무수 대명경역무 불성상청정 하처유진애)
보리에 본래 나무가 없듯이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육조 혜능 대사의 게송`에서

게송[偈頌] : 불교에서 부처나 보살의 덕을 찬미하는 시구의 체재.

 

3.
우리는 긍정(肯定)과 부정(否定)을 설명할 때 물컵을 예로 든다. 물 반 컵이 있을 때, 긍정적 사고를 한 사람은 `물이 반 컵이나 남았네!`라고 할 것이고, 부정적 생각을 한 사람은 `물이 반 컵밖에 남지 않았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희망(希望)과 절망(絶望)을 설명할 때 이순신의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를 예로 든다. "이제 제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으니."

 

그런데 왜? 이 시대(時代)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희망(希望)과 긍정을 노래하면서 부처가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가?

 

그런데 왜? 이 시대(時代)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희망(希望)과 긍정을 노래하면서 모든 인간(人間)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인(聖人)이라는 사실(事實)을 부정(否定)하는가?
 
거울에 비췬 인간(人間)의 모습은 항상 현재(現在)이며 찰나이다. 절대적 진리(眞理)와 그 진리(眞理)에 이르는 과정(過程)은 동시에 발생한다.

 

거울 앞에 선 시인(詩人)은 인간(人間)의 육체(肉體)를 그리는 화가(畵家)가 되어야 한다.

거울 앞에 선 화가(畵家)는 인간(人間)의 정신(精神)을 노래하는 시인(詩人)이 되어야 한다.

거울 앞에 선 인간(人間)은 참된 일상(日常)으로 인류(人類)의 행복(幸福)을 기도(祈禱)하는 구도자(求道者)가 되어야 한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어렴풋이 다가오는 알지 못할 불안(不安)에 진한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 시대(時代)를 살아가는 인간(人間)에게 느끼는 회한(悔恨)의 눈물이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