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70) 전 세종대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대인 전문가’다. 구약성경의 아브라함부터 현대의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유대의 경제사를 파고들며 ‘유대인’을 조명하기도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혁신적 기업들도 사실 유대인의 창의성에서 출발한 예가 상당수다. 20일 서울 서소문에서 홍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유대인 창의성의 뿌리’를 물었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는 "유대인 부모는 성인식 때까지 아이를 '온전한 유대인'으로 만들어서 하느님께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왜 ‘유대인’에 관심을 갖게 됐나.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32년간 근무했다. 그중 18년은 해외근무였다. 콜롬비아ㆍ브라질ㆍ스페인ㆍ미국 뉴욕ㆍ파나마ㆍ멕시코ㆍ이탈리아 등 7개국에서 근무했다. 무역관 일을 하다 보니 가는 곳마다 시장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유통과 서비스업의 핵심은 죄다 유대인들이 잡고 있었다. 콜롬비아는 한 줌도 안 되는 유대인 몇백 명이 그 나랏돈을 꽉 잡고 있더라. 뉴욕은 아예 유대인의 도시더라.”
뉴욕이 왜 유대인의 도시인가.
“역사를 보면 안다. 뉴욕은 유대인이 건설한 도시다. 지금도 뉴욕은 유대인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금융이든, 패션이든, 뮤지컬 산업이든 유대인이 다 잡고 있다. 미국의 초대 국회와 초대 대통령이 선출돼 취임한 게 어디인지 아나. 월 스트리트다. 지금도 월 스트리트를 움직이는 힘은 유대인이다. 그래서 ‘유대인’ 연구를 시작했다.”
유대인은 한 마디로 어떤 민족인가.
“한 마디로 ‘배울 점이 많은 민족’이다. 사람에 따라 유대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세계 금융과 서비스 산업을 주도하는 사람들이기에 우리도 알아두어야 한다. 그들과 경쟁하려면 그들의 장점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유대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유대인의 종교와 교육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중앙포토]
홍 교수는 “유대인의 힘은 교육에서 나온다”고 했다. 특히 유대인의 자녀 교육법에는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한국의 부모들도 가슴에 새겨둘 만한 대목이 곳곳에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유대인의 자녀 교육은 성인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했다. 남자아이는 13살, 여자아이는 12살에 성인식을 갖는다.
성인식이 왜 중요한가.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한국의 부모도 있지 않나. 유대인은 다르다. 그들은 자식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본다. 아이를 맡아서 기르다가 12살, 13살이 되면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린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부모의 자식 교육은 성인식 때까지만 이루어진다. 우리로 치면 중학교 입학하는 나이까지다. 한국은 그때부터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부모와 자식 간 전쟁이 시작되지 않나.”
성인식 후에는 어찌 되나.
“그때부터는 아이를 ‘온전한 성인’으로 대한다. 부모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성인식을 치른 아이는 이제 하느님과 독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부모는 자녀 교육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짐을 벗는다. 대신 성인식 전까지는 자녀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한다.”
유대인 부모는 어떤 식으로 열과 성을 다하나.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반드시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기관이나 기업은 의무적으로 모유 수유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만약 유대인 엄마가 모유 수유를 하지 않으면 회당(유대교 집회 장소)에서 제적을 당한다. 유대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거다. 왜 그럴까. 유대인은 갓난아이가 엄마의 젖을 물면서 느끼는 믿음, 신뢰, 사랑의 느낌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와 엄마의 애착을 중시한다.”
홍익희 교수는 "유대인 엄마는 주로 감성적 영역을, 아빠는 주로 이성적 영역을 맡아서 전통적 방식으로 자녀를 교육한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유대인 아빠는 어떤 역할을 맡나.
“유대인이 결혼하면 1년간 집안 살림과 경제를 여자가 책임진다. 남자는 히브리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 거기서 유대 전통과 유대교에 대해 배운다. 아빠가 아이에게 그걸 가르쳐야 하니까. 일종의 ‘아버지 학교’다. 아빠의 자녀 교육은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진다. 유대인 아빠는 아이의 성인식 전까지는 절대 바깥에서 저녁 외식을 하지 않는다. 반드시 집에 와서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하느님 이야기, 조상 이야기, 아빠가 경험한 이야기 등이다. 이때 아빠는 답을 주지 않고 주로 질문을 던진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게끔 한다.”
아빠의 자녀 교육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꼭 15분 이상 책을 읽어준다. 글자를 모를 때부터 말이다. 이 때문에 보통 아이들이 800~900단어를 인지할 때, 또래 유대인 아이들은 1500단어 이상을 인지한다. 모두 밥상머리 교육과 베갯머리 교육 덕분이다.
아이가 커서 유치원에 갈 때는 어떤가.
“유치원에 보낼 때는 꼭 다른 아이의 강점만 보라고 가르친다. ‘사람은 모두 강점과 허물이 있다. 강점은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걸 찾기 위해 네가 친구보다 말을 적게 하고, 친구의 말을 더 많이 들어라. 사람에게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이유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고 일러준다.”
나라를 잃고 2500년 이상 세계 곳곳을 유대인들은 떠돌았지만, 유대인 공동체에는 탄탄한 신뢰의 전통이 있다. [중앙포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 유대인 부모가 건네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남의 험담을 하지 마라.” 홍 교수는 “절대로 친구 험담을 못 하게 한다. 유대 속담에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다. 험담하는 사람, 험담 당하는 사람, 험담을 듣고 말리지 않는 사람. 이렇게 셋이다. 그래서 유대인 사회에서는 절대 다른 구성원을 험담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뢰가 생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유대인 공동체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그럼 유대인 학교에는 따돌림이 없나.
“유대인 학교에는 ‘왕따’가 있을 수 없다. 유대인의 언어 히브리어에는 ‘자선’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체다카’라는 말이 있다. 체다카는 공동체의 약자를 돌보는 일이다. 자선은 내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 관용의 의미다. 체다카는 다르다. 유대인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도리로 받아들인다. 만약 공동체 안에 약자가 있으면, 그가 자립할 수 있도록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도와야 한다.”
설령 ‘외톨이’가 있다 해도 괴롭힘의 대상이 아닌 건가.
“그렇다. ‘외톨이’가 있다 해도 도움의 대상이지,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유대인 학교에는 ‘왕따’가 없다.”
이말 끝에 홍 교수는 “유대인은 베스트(Bestㆍ최고)를 지향하지 않고, 유니크(Uniqueㆍ독창성)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홍익희 교수는 "유대인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동등하다고 믿는다. 그건 자녀를 키울 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유대인은 직장의 경영자와 신입사원도 맡은 역할만 다를 뿐 평등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둘은 무엇이 다른가.
“아이의 성적을 보면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이 있다. 한국의 교육은 베스트를 지향한다. 그래서 못하는 과목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유대인은 다르다. 못하는 과목의 성적을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잘하는 과목을 갈고 닦아서 세상에서 우뚝 서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베스트는 한 반에 한 명만 나오지만, 유니크는 한 반의 모든 학생이 될 수 있다.”
유대인 아이들은 12세(여아)나 13세(남아)가 되면 성인식을 치른다. 성인식에서 랍비가 아이에게 묻는다. “네가 세상을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럼 아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티쿤 올람입니다.” 유대인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아직 완전히 창조된 게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하느님 사업의 협력자인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티쿤 올람’이다.
이 때문에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세상의 발전과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유대인 사업가들이 어마어마한 거액을 사회에 기부하는 스토리의 뒤에는 티쿤 올람이 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