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전략 자산 ‘반도체’ 지키기, 교육부 아니라 정권 목숨 걸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우리 경제의 근간”이라면서 교육부에 “목숨을 걸고” 인재를 육성하라고 주문했다. 옳은 문제 인식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길에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찾고, 삼성 반도체 공장을 첫 방문지로 골랐듯이 반도체는 한미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다. 국가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제1의 성장 엔진이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해야 경제가 살고 동맹의 전략적 가치도 유지할 수 있다.
한국은 삼성전자의 분투와 반도체 종주국 미국의 협조 덕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30여 년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핵심 무기로 반도체가 부상하면서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이 대만, 일본, 유럽을 끌어들어 반도체 공급망 개편에 나서면서 반도체 산업은 국가 간 경쟁 차원을 넘어 국가 연합 간 경쟁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에 올라타기 위해 경쟁적으로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자국 반도체 기업 전방위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가 ‘K반도체 전략’을 내놓고, 반도체 특별법도 만들었지만 내용 면에서 경쟁국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산업계는 특별법에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와 주 52시간 규제 완화를 반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회는 ‘대기업 특혜 불가론’ ‘지방 균형 발전론’을 이유로 거부했다. 각 대학도 타 학과 교수들의 기득권 저항 탓에 반도체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기업들은 몇몇 대학에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반도체 계약 학과를 만드는 수준에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대졸 이상 반도체 전문 인력이 1600명 이상 필요한데 비해 계약 학과 졸업생은 260명에 불과하다. 경쟁국 대만은 매년 1만명의 반도체 인재 확보를 목표로 반도체 학과 정원 규제를 풀고 대학에 1년에 두 번씩 신입생을 뽑는 특혜를 주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교육부가 경제 부처처럼 생각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육부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소재·장비 등 연관 산업, 용지·용수·전력 등 인프라, 세제 등 제도적 환경, 인력 양성 등 한 나라의 총체적 역량이 동원돼야 한다. 지역 주민 반발 탓에 삼성전자 평택 공장의 송전선 설치가 4년간 지연되는 동안 대만에선 극심한 가뭄으로 용수난이 발생하자 정부가 농업용수까지 끊고 반도체 공장에 물을 공급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도체 관련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의회에 지원 법안 통과를 재촉하고 있다.
윤 정부도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 제거에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 교육부에만 “목숨 걸라”고 할 일이 아니라 정권의 명운을 걸고 나서야 한다. 국회도 남아도는 지방 교육 교부금을 대학에도 분배해 학과 구조 조정에 쓸 수 있도록 법을 고치는 등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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