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2016년 1월 6일

[강천석 칼럼] '북한 三代'를 위한 변명

최만섭 2018. 7. 7. 11:38

[강천석 칼럼] '북한 三代'를 위한 변명

입력 2018.07.07 03:17

核 거짓말 믿는 사람 책임은 거짓말하는 사람만큼 무겁다
북핵 이후 성급한 그림 그리기 앞서 정확한 판단 먼저강천석 논설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은 지켜질까.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대답은 '글쎄'와 '아니다'가 다수(多數)다. 전문가 집단일수록, 북한과 협상 경험이 많을수록 고개를 가로젓는 쪽이다. 서울이나 워싱턴이나 사정은 비슷하다. 문정인 대통령특보는 북한을 불신(不信)하는 사람들은 하늘과 땅이 바뀌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냉전적(冷戰的) 사고에 젖은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크리스토퍼 힐 전 한국 주재 미국대사는 대표적 북핵 협상론자다. 그런 그가 완전한 비핵화의 가능성을 어둡게 보고 있으니 냉전적 사고 운운하는 비판은 과녁을 빗나갔다.

완전한 비핵화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행동과 말 사이의 엇박자다. 아무리 정찰위성의 성능이 발달해도 상대의 의도(意圖)를 찍을 수는 없다. 의도는 사람 머리와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겉으로 나타난 행동을 먼저 파악하고 그걸 토대로 의도를 추정(推定)하는 방법밖에 없다. 북한이 싱가포르 회담 이후 핵과 미사일 시설을 축소·폐쇄하고 있다는 징조는 없다. 정찰위성이 포착한 움직임은 오히려 거꾸로다.


'글쎄'와 '아니다' 쪽은 북한의 거짓말 전력(前歷)을 꿰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짓말에도 여러 색깔이 있고 급수(級數)가 있다. '하얀 거짓말(white lie)'이 있다. 하얀 거짓말은 선의(善意)의 거짓말이다. '한·미 동맹은 지금도 물 샐 틈이 없다'는 미국 정부 인사들의 말이 그런 예(例)다. '고상한 거짓말(noble lie)'도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국민에게 했던 거짓말을 대표 케이스로 꼽는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소는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거하고 미국은 터키에 배치했던 핵미사일을 철수하는 거래(deal)였다. 케네디는 이 사실을 감쪽같이 속였고, 소련 측에 이 사실이 공개되면 거래는 무효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런데도 이 거짓말에 '고상한'이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를 얹어 주는 이유는 그 거짓말로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는 평가 때문이다.

북한의 과거 거짓말은 새빨간 색깔 일색(一色)이었다. 무조건 잡아떼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관한 북한 3대(代)의 거짓말은 과거와 결이 조금 다르다. 김일성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방북(訪北)한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겠다고 했다. 김정일은 2000년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미사일 발사 실험을 더 이상 않겠다고 했다. 김정은은 줄곧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先代)의 유훈(遺訓)이라고 했다. 북한 3대(代)는 이렇게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포기한' 끝에 마침내 핵 무장을 완성했다. 그래서 전문가일수록 김정은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와 거짓말은 등이 붙어있는 샴쌍둥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한 몸이었다. 어떤 나라도 핵무기 개발 시작을 발표한 적이 없었고 개발 중이라는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었다. 적(敵)에겐 물론이고 우방국 사이에서도 핵개발은 비밀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에도 거짓말을 했다. 이스라엘에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구명(救命) 조끼의 바람을 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도 거짓말을 했다. 핵무기 문제에서 거짓말을 믿는 사람 책임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만큼 무겁다.

'제2의 핵 시대(The second Nuclear Age)'는 미국 전(前) CIA 국장·합참의장이 반드시 읽어야한다고 추천하는 책이다. 저자는 북한의 핵무기가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고 믿는 단순 사고(思考)를 경계하라고 한다. 북한 핵무기는 이웃집 거실에 들어가 '여기서 이 무기로 자살하겠다'고 위협해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협박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 핵무기를 내려놓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걸 믿고 싶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위에서 한국 철도가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대구상(大構想)을 그리고 있다. 미국의 어느 전략 전문가는 싱가포르 회담 전 '북한 핵 포기 가능성은 0.05~0.1% 사이'
라고 했다. 싱가포르를 거치며 그 가능성이 10배 높아졌다고 치면 0.5~1%가 된다. 국민들도 트럼프 대통령처럼 믿고 싶고, 문재인 대통령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 김정은이 진심이라면 응원을 보내고 싶기까지 하다. 다만 국민들은 핵문제에서 거짓말을 '믿는 사람 책임'이 '거짓말하는 사람 책임'만큼 무겁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6/20180706036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