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2016년 1월 6일

[박두식 칼럼] "한국은 닮지 말아야 할 安保 모델"

최만섭 2016. 3. 2. 11:09

[박두식 칼럼] "한국은 닮지 말아야 할 安保 모델"

對北 압박이 성과 거두려면 美·中이 먼저 한국의 決意 무겁게 받아들이게 해야
이란 핵 문제에서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모델을 보여줬다
한국은 정반대되는 실패 사례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2010년 2월 이스라엘 대표단이 중국 베이징을 찾았다. 이들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이란 핵(核) 문제 때문이었다. 유엔 안보리(安保理)가 이란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한 제재 결의(決議)에 대한 논의에 다시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이란은 당시 북한과 함께 핵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북한과 이란은 핵·미사일의 파트너이자 쌍둥이 골칫거리였다. 이란 핵 관련 유엔 안보리의 첫 제재 결의가 나온 게 2006년 7월이다. 그해 10월 북은 1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그러자 유엔 안보리는 닷새 만에 대북 제재 결의를 내놨다.

그러나 이란은 유엔 제재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란을 이끌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재 따위로 우리를 위협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유엔은 상전(上典)인 미국이 하라는 대로 움직일 뿐"이라고 쏘아붙였다. 이란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스라엘을 겨냥해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이란을 더는 그냥 둘 수 없다며 미국이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게 2010년 초다. 미국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스라엘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대(對)이란 제재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언제든 이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태세였다.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2007년 인접한 시리아의 핵 시설을 폭격했다. 1948년 건국 후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주변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공격을 망설인 적이 없다. 이런 이스라엘이기에 세계 누구도 이란 핵 불용(不容)이라는 이스라엘의 다짐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란과 북한에 대한 제재는 늘 중국의 비협조 때문에 솜방망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유엔 안보리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이란 제재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2010년 2월 이스라엘 대표단이 베이징을 찾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확보한 이란 핵 정보를 중국 측에 내밀었다. 한동안 중국 관리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선제 기습 공격을 감행할 경우 예상되는 중국의 경제적 피해를 거론하기 시작하자 중국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고 한다. 중국은 당시 원유의 10%가량을 이란으로부터 들여왔다. 원유 거래만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위기가 발발할 경우 고속 질주 중인 중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스라엘 대표단이 베이징을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중국은 대(對)이란 제재 찬성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스라엘의 경고와 설득 때문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도 국가 생존 차원에서 이란의 핵 보유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이스라엘의 단호한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은행·단체에까지 벌칙을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에 들어가는 등 대이란 제재의 고삐를 바짝 죄기 시작한 것 역시 '이스라엘 변수'와 무관치 않다.

2013년 집권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로하니 역시 2000년대 중반 서방과 이란 사이의 핵 협상 책임자로 나섰을 때만 해도 '이란 핵 프로그램은 평화적 목적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변했던 인물이다. 이란의 변화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이란 국민과 국제사회의 압박이 호응을 이룬 결과다.

북핵 문제가 처음 불거진 노태우 정부부터 현 박근혜 정부까지 모두 '북핵 불용'을 외쳐왔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이 이스라엘만 한 결의로 무장돼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북핵의 최대 미스터리는 한국의 무관심'이라는 말이 국제적으로 화제가 될 정도다. 유엔 제재 결의 채택이 북핵의 유일한 해법이자 목표인 양 매달리는 것 역시 20년 넘게 똑같다. 오늘 채택되는 유엔의 대북 제재 역시 '중국의 선의(善意)'에만 기대고 있을 뿐이다. 1420여㎞에 이르는 북·중 국경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그대로 오가는 한 대북 제재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그저 이것을 외교적 성과로 홍보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눈치다. 이래서야 북한 김정은과 미·중·일이 '한국의 입장'을 두렵고 무겁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0년 북의 연 평도 포격 도발 직후 이스라엘 신문은 '한국은 안보 문제에서 우리가 닮지 않아야 할 모델'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이 신문은 "한국은 북쪽 형제들로부터 협박당하고 큰 타격을 입고도 참고 있어야 하는 나라"라며 "미국 정부는 (한반도 위기가 터지면) 그저 항공모함을 지역에 보내기만 할 뿐 북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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