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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趙炳華 1921∼2003) 시인카테고리 없음 2015. 9. 29. 22:12
ㆍ작성자 최만섭 ㆍ작성일 2008-03-27 17:23 ㆍIP: 조병화 (趙炳華 1921∼2003) 시인
1.생애와 활동.
시인. 호는 편운(片雲). 경기도 안성(安城) 출생. 1938년 경성 사범학교, 1945년 일본 도쿄[東京(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1949년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1950)》, 제3시집 《패각(貝殼)의 침실(1952)》 등 계속해서 시집을 발표하며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고, 많은 국제대회에도 참가하였다. 현대적 도시풍의 서정 시인으로 자신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일상의 쉬운 문맥으로 진솔하게 그려 일반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1960년 아시아자유문학상, 1974년 한국시인 협회 상, 1985년 대한민국 예술 원상 및 국민훈장모란장 등을 수상하였다. 1982∼1984년 시인협회장, 1989∼1991년 문인협회 이사장, 1995년 예술원회장이 되었다. 기타 번역 시론 집 《현대시론(1956)》, 수필집 《사랑은 아직도》 등이 있다.
2. 조병화 (趙炳華)와 만남.
제목 : 의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일전에 모 신문에서 ‘첼리스트 장한나’ 씨의 기고를 읽었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늘 음악과 같이 지냈다고 한다. 그녀가 여섯 살 때쯤에 ‘첼리스트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고 감동하여, 어머니에게 뛰어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인류문화의 가장 위대한 유산 가운데 하나인 바흐의 음악에서 감동을 하기는커녕 잠들기 십상이었다.
그녀는 음악적인 감정은 지식이 많다고 해서 풍부해 지는 것은 아니라, ‘얼마나 일찍부터 음악을 접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흡수할 수 있는 감수성이 민감한 어릴 적부터 음악을 만나는 것이 성인이 되고 마음의 울타리가 형성된 이후에 음악을 접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 감정은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파장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 만족감, 기쁨, 들뜸, 설렘, 실망, 슬픔 등 수만 가지 감정을 통해 인간의 정신은 풍요로워 지고 인간의 마음은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에 잠자는 감정을 어떻게 깨워서 우리의 의식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의 여부가 달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10대에 ‘조병화의 의자’를 만난 것은 내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귀가하여 텅 빈 교정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이 높은 키를 가까스로 버티는 농구대 옆에 앉은뱅이 의자가 놓여있었다.
사물과 인간에 대한 의문이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청소년기에 만난 조병화의 의자는 내가 직면한 가난과 번민에서 나 자신을 해방해주는 희망의 메시아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회상할 때는 고향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없다. 고향은 감정과 감성이 최초 생산되기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향을 생각할 때 “마실간다”라는 말이 연상된다. ‘마실’은 ‘마을’의 방언으로서, 내가 어렸을 때는 마을 안의 특정하지 않은 이집저집으로 놀러 간다는 뜻으로 쓰였다. 나는 겨울 밤마다 친구 집으로 마실을 갔다. 그리고 허기진 배를 날고구마와 무로 채우면서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둠이 두려워 친구들과 밤을 새운 ‘마실’은 나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말이면 미국인들은 친구들을 뜰 안으로 초청하여 소시지를 굽고 맥주를 마시면서 큰 소리로 일상을 떠들어 댄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합창을 하면서 농구공을 바스켓에 던져댄다. 미국인에게 농구는 우리의 ‘마실’과 같다. 그 당시 `조병화의 의자`는 내가 동경하는 꿈과 이상의 세계였다. 그 세계는 물질적으로 먹을 것이 풍부하여 배를 곪지 않아도 되며 정신적으로는 내가 흠뻑 빠져있던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 철학자인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 등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조병화의 의자’는 50대 중반에 다시 나타나서 내게 시인이 되라고 유혹하고 있다. 나는 희망의 의자에 앉아서 이 땅에서 태동할 르네상스를 기다린다.
3. 조병화의 고독과 허무.
조병화는 ‘내가 산 세계를 충실히 쓰고 싶어’ 시를 쓴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 덧붙여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문제보다도, 나의 관심거리는 어떻게 살 건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건가? 하는 생존의 문제’였다고 밝힌다. 이러한 태도로 시를 쓰는 시인은 그 시의 예술적 성공 여부보다도 그 자신의 인간적 진실을 더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독자는 대체로 시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그들 역시 예술적 성패보다는 그러한 시인의 인간적 진실에 더 큰 공감하게 된다.
그는 평생을 인간을 탐구한 작가로 알려졌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는 실존주의적 존재론에 탐닉한 시인이다. 실존주의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가 주장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일 것이다. 인간은 항상 일정한 상황에 부닥쳐 있으며 인간을 구성하는 가능성은 이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실존주의자들은 미래에 선택할 가능성을 실존이라고 명명한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는 상황이 인간의 선택을 결정한다는 운명론(運命論)을 사르트르는 선택이 상황을 결정한다는 자유 의지론(自由意志論)을 주장했다. 실존의 고유한 양상은 가능성인데 반해 존재의 고유한 양상은 현실성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미래의 가능성은 유(有)로 표현할 수 없으며, 현실성은 현재 및 과거의 행위로 나타난 존재의 양상이므로 시차적으로 미래를 의미하는 실존이 되려면 현실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실존주의자의 삶이란 실존을 무(無)로 환원하는 것이다. 현실성을 부정하고 실존을 무(無)로 환원하는 과정은 끝없는 고독과 허무와의 대화다.
조병화는 이러한 고독과 허무를 노래한다. 그에게 도시는 이긴 자만이 살 수 있는 곳이며 시가 팔리지 않는 메마른 땅이다. 도시는 청정한 자연도 없고 인간도 없다.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이 소외된 현대 도시에서 시인은 아무런 희망도 느끼지 못한다. 그가 느끼는 고독은 이러한 현실의 부조리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그는 고향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고독과 여행 그리고 또다시 만나는 고독은 그가 살아가는 과정이다. 나이 50대 중반이 되어 그는 자신이 ‘종점’에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 고독과 허무의 양극을 오가면서 그가 도착한 종착역은 ‘어머니’다.
서양의 사유(思惟)와 이성(理性)에 의하여 생성된 고독과 허무를 어루만져주고 포용해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감성과 감정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삶은 고독한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그 자각 속에서 얻는 자기 확인의 여정이다. 그는 고백한다. “인간 본연의 그 영역 내에서 인간을 찾았고, 인간의 말을 찾았고, 인간의 생존을 찾았고, 그 종언을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로 도달한 지점이 군중, 군중의 숨은 가슴. 나는 이곳에서, 나의 말, ―인간으로서의 나의 대화, 나의 시를 지금 발견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한국 전후 문제 시집》1963, 신구문화사).
4. 조병화 (趙炳華)의 대표작.
제목 : 이승에 단 램프
나의 목숨은 이승에 단 램프
아직은 어머님이 주신 기름이 남아
너를 볼 수가 있다
불빛이 밝은 만큼 뚜렷이
불빛이 강한 만큼 따뜻이
불빛이 퍼진 만큼 넓게
어둠을 헤치며
아직은 어머님이 주신 기름이 남아
멀리서나마, 이렇게 까마득히 멀리서나마
그냥
너를 저리도록 그리워할 수가 있다
간단없는 거센 바람 속에
영원처럼
*이 시는 이승과 저승을 함께 바라보면서 ‘어머니’와 ‘너’라는 상징을 통해서 구원을 갈 망하고 영원에 이르기를 소망하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목 : 호수
밤을 새우는 물이 있다
뜬 눈으로 주야 도는 물이 있다
구름을 안는 물이 있다
바람을 따라가는 물이 있다
물결에 처지는 물이 있다
수초밭에 혼자 있는 물이 있다
*물을 통해서 만감에 사로잡혀있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목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생에 가치를 부여했던 모든 헛된 것을―미혹을 미련 없이 버리고자 하는 초탈의 심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세속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상성에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삶을 속박시키고 드디어는 파멸에 이른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에 미련을 두지 않은 것은 오히려 생을 충실히 살 수 있는 기초가 된다. 그것은 사심 없는 사람이 매사에 공정한 세상의 이치와도 같다.
5. 인생의 성찰.
조병화는 인간(人間)을 탐구하고 인생을 성찰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가 말하는 ‘인생의 성찰’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정직해지려는 혹독한 노력과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직의 의미를 어떤 행위에 대한 진위로만 한정한다. 그러나 그의 정직은 심정적인 정직이다. 그는 시인이 아니라 인간의 어진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를 실행하는 따뜻한 인간이 되고자 하였다. 여기에 그의 초기 작품 ‘초상’을 소개한다. “한 남자의 이토록 정직한 사랑 고백에 등을 돌릴 여인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제목 : 초상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땐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두 번째 그대를 보았을 땐
사랑하고 싶어졌지요
번화한 거리에서 다시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땐
남 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땐
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
미친 듯이 바다 기슭을 달음질쳐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