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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만섭 ㆍ작성일 2007-11-23 16:56 ㆍIP: 효(孝)
1. 지난여름에 집사람이 애 호박을 무채처럼 썰고 돼지고기를 잘게 다진 뒤 갖은 양념을 쳐서 버무린 만두소로 만두를 만들었다. 집사람은 냉동실에서 얼린 삶은 만두 한 접시를 담아 미지근한 물에 살짝 데쳐 내게 내밀었다. `당신의 무더위를 단숨에 날려 드리겠어요.` 적당히 얼려진 호박을 씹을 때마다 입속에서 엷은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마치 청정한 약수가 내장으로 흘러가는 듯한 시원함을 만끽했다.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음식은 일종의 향수다. 나와 집사람은 이 감칠맛을 팔순이 넘은 장모님과 나누기 위해서 만두 한 사발을 싸서 처가로 향했다. 텅 빈 냉장고에는 작은 김치 통과 약수물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냉장고의 공간과 건강은 비례하는 것일까?` 장모님은 아직도 정정하시다.
미국인들의 냉장고에는 공간이 없다. 그들의 냉장고에는 물 대신 마시는 콜라와 사이다 그리고 냉동시킨 양고기와 치킨, 냉동 고기를 요리하기 위한 각가지 향료와 소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많은 미국인이 당뇨와 고지혈증 등 영양 과다로 인한 현대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이러한 음식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흔히 곱게 늙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는 심심산골에 흐르는 물같이 자신을 낮추고 버릴 것은 미련없이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숙련되고 능란함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나 기능 따위의 경력이 있거나 `인생이 무엇인가?` 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업무를 잘 처리하고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선별하고 언제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의 바람직한 인간상이 서부 개척시대의 정신을 이어받은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젊은이라면 동양인들이 그린 이상적인 인간은 노자(老子)와 같이 `속이 확 트인 늙은이`이다.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處衆人之所惡,故幾於道,
상선약수,수선리만물이부쟁,처중인지소오,고기어도,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게 혜택을 주지만 다투는 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무위자연의 도의 모습과 가까운 것이다.`
(노자(老子) 제8장,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우리 집사람은 늘 내게 말한다. "우리 엄마는 복받은 노인네야." 기력이 쇠약해진 노인에게 절실한 것은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 잘되는 음식을 섭취하고 몸을 깨끗이 하고 청결한 옷을 입는 것이다. 딸들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진찰까지 받게 해 드리니 `머지않아 이 세상과 이별한 노인에게 이 보다 큰 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장모님은 매우 불행한 분이다. 당신은 아직도 밤새 낙엽 지는 소리에 삶과 죽음을 들락날락할 만큼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세 명의 사춘기 손녀 딸들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가장이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2. `효(孝)란 무엇인가?`를 생각 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절실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A friend in need a friend in deed)`라는 미국 속담이다.
몇 년 전 만취한 초등학교 동창이 갑자기 우리 집에 쳐들어왔다. 그리고 아들 애를 다짜고짜로 물러 세워 놓고 물었다. ` 효(孝)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아니야! 효(孝)는 부모님 수족 못쓸 때 삼 년간 수발들어 드리는 것이란다.`
나는 불효자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이 년 전에 당신이 손수 수의를 장만하셨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자손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야속하게만 생각했을 뿐, 이 년 동안 어머니가 느낀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와 쓸쓸함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왜 늙고 병들어서 상여나가는 곡소리에 눈물을 흘릴 만큼 심약해진 어머니를 외면했을까?`
지난달에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효(孝)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아파트 위층에 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이 효자 이야기를 빼 놀 수가 없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세 며느리를 불러 모았다. `가세가 빈곤하여 너희에게 적은 유산조차 못 물려 주는 내가 이런 말을 할 염치조차 없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내 마지막 유언이니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너희 셋이서 삼 일씩 내 수발을 들어다오.`
아버님은 식음을 전패하시고 15일간을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오랜 병상생활로 인하여 병상에 닿은 부분이 곪는 종기를 예방하기 위해서 가족들은 서너 시간에 한 번씩 아버지의 누운 자세를 고쳐 드려야 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하여 모든 가족은 밤낮으로 아버지 곁을 지켰다.
그 긴 보름 동안 대학교 다니는 딸애가 할아버지의 온몸을 정성껏 씻겨 드렸다. 그는 내게 말했다. ``내 딸이지만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어.` "시집가면 시댁 어른들에게 사랑받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고." 세상 사람들은 효(孝)는 더이상 훌륭한 배필의 조건이 아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마음씨 곱고 효심이 지극한 처자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장례가 끝난 후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아버지는 형제간의 우애(友愛)를 강조하기 위하여 세 며느리를 불렀던 거야.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자식들을 걱정하신 거지." 이 효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위층 어머니 곁에서 잠을 잔다.
3. 내가 경험한 바로는 효(孝)는 경제력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효(孝)에는 세속적인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다. 만일 성공하고 출세해서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리는 것이 효(孝)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마치 냉장고를 인스턴트식품으로 가득 채우는 행위와 같다.
효(孝)란 부모와 자식 모두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효(孝)란 어머니가 시인으로서 구도자로서 가치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용기를 북돋아 드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