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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과학] 5·7·13·17년 소수 주기로 태어나… 천적 피하기 위해서죠

최만섭 2022. 8. 23. 05:30

[재미있는 과학] 5·7·13·17년 소수 주기로 태어나… 천적 피하기 위해서죠

입력 : 2022.08.23 03:30

미국에 사는 13년, 17년 주기 매미는
수십억 마리 한꺼번에 올라오기도
토양온도 감지해 동시에 땅 위로

 /그래픽=진봉기
매미가 밤낮으로 울고 있어요. 매미는 보통 땅속에서 애벌레(유충)로 3~17년의 세월을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요. 하지만 땅 위로 나온 매미의 삶은 허망할 정도로 매우 짧아요. 겨우 2~3주 산 다음 생을 마감하거든요. 땅속에 갇혀 지낸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걸까요. 땅 위의 매미는 여름 한철 힘껏 울어댑니다. 매미가 그토록 시끄럽게 울어대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주기를 맞춰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걸까요.

암컷 차지하려는 요란한 울음소리

요란하게 우는 매미는 수컷 성충이에요. 암컷 매미를 유혹해 짝짓기하기 위해서죠. 암컷 매미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이 없어 울지 못해요. 한국에 많은 참매미와 말매미의 울음소리는 70~90데시벨(dB)에 달해요. 이는 진공청소기나 열차 소리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미국 동부에 사는 매미는 100데시벨이 넘는 소음을 내기도 해요.

매미는 목이 아니라 배 쪽에서 소리를 내요. 가슴과 배 사이에 갈빗대처럼 볼록 튀어나온 '진동막'이라는 얇은 막이 있는데요. 진동막은 배의 근육과 연결돼 있어요. 이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진동막을 울려 커다란 소리를 내는 건데, 1초에 무려 300~400번이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고 해요. 매미의 배 속은 비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낸 소리는 공명현상을 일으켜 20배나 커져 울려 퍼지죠.

살기 위해 택한 소수의 법칙

매미의 수명은 종마다 달라요. 하지만 대부분 땅속에 있는 기간까지 합해서 5년, 7년, 13년, 17년 등의 소수(素數) 주기로 살아가요. 이는 천적으로부터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인데요. 소수는 어떤 수를 나눌 때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나눠지지 않는 수를 말해요.

매미의 천적은 너무 많아요. 그래서 매미는 천적과 마주칠 기회가 적은 해를 생애주기로 삼기로 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매미의 주기가 짝수인 6년이라고 가정해 볼게요. 이 매미의 천적들은 각각 2년, 3년, 4년마다 등장하고요. 그러면 주기가 2년, 3년인 천적과는 6년마다 만나게 되고, 주기가 4년인 천적과는 12년마다 만나게 돼요. 심지어 12년째에는 주기가 2년, 3년, 4년인 천적을 동시에 만나요.

하지만 이 매미의 주기가 6년이 아닌 5년이라면 어떨까요? 주기가 2년인 천적과는 10년마다 만나게 되고, 주기가 3년인 천적과는 15년마다 만나게 돼요. 또 주기가 4년인 천적과는 20년마다 만나게 되고요. 천적과 만나게 되는 기간이 길어지는 거예요. 곤충학자들은 매미의 주기가 처음엔 3년으로 짧았다가 천적과 만나자 5년, 7년으로 늘렸고, 그것도 부족해지자 17년으로 늘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17년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된다면 19년 매미가 나오게 될지도 모른대요.

17년 지난 것 아는 주기 매미

지구에는 3000여 종의 매미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참매미·말매미 등 12종의 매미가 사는데요. 우리나라 매미의 생애주기는 보통 5년이에요. 이렇게 주기가 비교적 짧은 매미는 같은 종이라도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다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종종 2년·4년 등 정해진 주기가 아닐 때 땅 밖으로 나오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비교적 일정한 수컷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하지만 미국의 매미는 달라요. 미국 매미의 대부분은 13년이나 17년이라는 긴 주기를 가지는데요. 17년 주기 매미는 총 12종으로 미국 북부 지역에서 서식해요. 13년 매미는 3종으로 미국 남쪽 지역에서 볼 수 있고요. 이 매미들은 주기를 비교적 엄격하게 지키며 땅 위에 등장해요. 그래서 이 매미들을 아예 '주기(periodical) 매미'라고 부르는데요.

특히 17년 주기로 나타나는 매미는 빨리 자란 유충일지라도 절대 먼저 땅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대요. 과학자들은 13년이나 17년 주기 매미의 체내에 환경적 신호를 통해 세월의 흐름을 기록하는 분자시계(유전자 또는 단백질 등의 분자 속에 있는 특정 부분이 생물이 진화하는 동안 계속 변화하는 것)가 있다고 추측해요. 예컨대 나무는 계절에 따라 나뭇잎이 떨어지고 자랄 때 수액의 구성이 바뀌는데요. 17년 주기 매미의 유충이 나무뿌리의 즙을 먹을 때 수액의 구성 성분으로 시간의 흐름에 대한 단서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이를 통해 계절 주기가 17번째 반복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는 거지요.

이들은 한 지역에서 한꺼번에 수십억 마리가 떼로 올라오는 인해전술을 쓰는데요. 비록 천적에게 잡혀먹히더라도 수십억 마리를 한 번에 다 잡아먹을 수 없을 거라는 계산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다 모든 매미가 물밀듯 동시에 세상에 등장하는 거예요. 지난해 여름, 미국 동부 지역은 2004년 후 17년 만에 찾아온 매미 떼로 유달리 시끄러웠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한 지역에 사는 매미가 어떻게 모두 같은 시간에 땅 위로 올라올 수 있을까요? 이들은 지하 20㎝ 깊이 토양의 온도가 18도가 되면 지표면으로 이동한대요. 매미가 일정한 체온에 도달해야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는 같은 17년 주기 매미라도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매미와 일리노이에 있는 매미가 다른 시간에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