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조차 “나라의 수치” 성명… EU “이건 미국이 아니다”
[트럼프 시위대, 美의회 점거] 역풍 맞는 트럼프
입력 2021.01.08 03: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각)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결과 인증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 의회로 행진했고, 저지선을 뚫고 의사당 내부까지 진입해 점거했다.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6일(현지 시각) 발생한 미국 의회 불법 난입 사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선 불복 행보를 하며 사실상 이번 시위를 부추긴 트럼프가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 비난 목소리가 나왔고, 세계 각국 정상들도 우려를 표했다. 그동안 트럼프의 편 가르기식 선동 정치에도 공화당 대부분이 침묵하고, 최강대국 미국의 내정에 외국이 함부로 논평하지 않았던 분위기와는 달랐다.
미 정계와 언론에선 이날 지지층을 선동·옹호한 트럼프에 대해 “쿠데타” “테러” “반란” “반역죄”란 비난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의 데이비드 시실린 하원 의원과 테드 리우 하원 의원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 트럼프 대통령을 직위에서 몰아내는 절차에 착수하라”고 요청했다. 수정헌법 25조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어려울 때 부통령이 직무를 대신할 수 있게 한 조항이다.
출입문 향해 총 겨눈 경비대… 의회 인사들 몸 숙이며 대피 - 미 의회의사당에서 대선 결과 확정을 위한 상·하원 합동 회의가 열린 6일(현지 시각) 시위대가 의사당 내부 회의실에 침입하려 하자 의회 경비대가 바리케이드 쳐진 회의실 앞에 총을 든 채 서 있다(왼쪽 사진). 이날 트럼프 연설 이후 시위대가 의회에 난입하자 의회 관계자들은 바닥에 엎드리며 대피했다(오른쪽 사진). 관계자 일부는 휴대전화로 시위대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민주당의 지미 고메즈 의원은 “이런 것이 바로 쿠데타가 일어나고,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반역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과 전·현직 각료, 공화당 의원 일부는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했다. 트럼프의 잔여 임기 2주를 정상적으로 마치게 해주지 말자는 것이다.
공화당 주류도 트럼프를 비판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이번 사태는 내부 테러”라며 “근거 없는 음모론에 이용돼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나라의 수치”라는 성명을 냈다. 뉴욕타임스는 한 공화당 인사가 “이날 사태가 바로 트럼프 유산의 일부”라며 “그의 집권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 공화당 의원은 이날 트럼프가 시위대 앞에 서서 “우린 절대 포기하거나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유세한 영상을 보고 “×소리 집어치우라 해!”라며 분노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시위대가 의회를 점거한 뒤에도 트위터로 “폭력은 안 된다”고 했지만 해산하란 말은 하지 않았고, 부상자가 나온 뒤에야 “집으로 돌아가라”면서도 “우린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최측근 린지 그레이엄 상원 의원은 6일 밤 대선 결과 확정을 위한 상·하원 합동 회의가 재개되자 “나도 이런 식으로 대통령과의 관계가 끝나는 게 싫지만, 할 만큼 했다”며 바이든 승리 인준에 찬성했다. 공화당 내에선 지난 11월 대선과 하원 선거를 진 데다, 상원 다수당 확보도 결국 트럼프 탓에 놓쳤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한다. 트럼프의 선거 불복이 상원 의원 2석에 대한 결선 투표가 실시된 조지아주에서 분노 투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덴버 AP=연합뉴스) 6일(현지 시각)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트럼프가 이겼다'는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트럼프 지지 시위대가 워싱턴DC 연방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미 다른 주에서도 대선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공화당 소속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성명을 내 “대선 뒤 이어진 일부 정치 지도자의 무모한 행동에 소름이 끼친다”며 “오늘 일은 바나나 공화국(부패가 심각하고 정국이 불안한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매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전직 대통령들도 “오늘 폭력 사태는 국가적 불명예와 수치로 역사에 남을 것”(버락 오바마), “지난 4년간의 유독한 정치와 가짜 정보가 의사당 점거를 부추겼다”(빌 클린턴)고 했다.
외국도 가세했다. 미국 우방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트위터로 “수치스러운 장면”이라고 했고,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폭력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유럽연합의 외교 수장인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대표는 “오늘 밤 미국의 민주주의는 포위됐다. 이건 미국이 아니다”라고 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의사당 난입 사태는) 나를 화나고 슬프게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기본 규칙은 선거 후 승자와 패자가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회 난입 사태를 일으킨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의 존재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게 내내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위기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 그룹은 최근 2021년 세계 최대 리스크로 ‘제46대 미 대통령’을 꼽았다. 트럼프가 퇴임 후에도 극렬 지지자들을 앞세워 대선 불복 운동을 계속하고 바이든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면서 2024년 대선 재출마 등 재기를 노릴 경우, 바이든 정부 실패로 인한 미국발 불안이 세계 경제 등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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