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최보식이 만난 사람] "가로수, 돌아갈 곳 없는 처지… 지금 서있는 자리가 자신의 무덤"

최만섭 2017. 6. 12. 06:44

[최보식이 만난 사람] "가로수, 돌아갈 곳 없는 처지… 지금 서있는 자리가 자신의 무덤"

입력 : 2017.06.12 03:02

[中卒 출신의 '나무의사' 우종영씨]

"자작나무는 더위 못 견뎌, 산딸나무는 습한 곳을,
단풍나무는 정원 그늘에, 소나무는 햇볕 많은 데로"

"사람이 원하는 데 아닌 나무가 원하는 데 심어야
빌딩 조경수나 가로수들은 좁은 콘크리트 상자에 갇혀"

나무는 입이 없어 못 떠들지만, 지금은 나무에 대해 얘기할 때다. 음력으로 망종(芒種)부터 하지(夏至)까지는 초록의 나뭇잎들이 일년 중 가장 풍성하게 매달려 있는 절정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가 어느 곳에서나 다 잘 자라는 게 아닙니다. 산에서 나무들끼리 모여있는 모습을 보세요. 수종(樹種)마다 좋아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건조한 곳, 습한 곳, 바람이 많이 불고 척박한 능선 등 각자 맞는 곳을 선택합니다. 나무의 본성에 따른 것이지요."

우종영씨는
우종영씨는 "나무가 정상적으로 생장하면 껍질이 떨어져나가 이끼가 안 붙는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우종영(62)씨는 '나무 의사'다. 30년 넘게 병든 나무를 치료해왔다. 정규 학력은 중졸(中卒)이다. 하지만 그는 '수목 보호 기술자' '문화재 수리 기술자' '식물 보호 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고, '나무처럼 살고 싶다' '게으른 산행' 등 책을 썼으며, 나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수피(樹皮)가 하얀 자작나무가 보기 좋다고 도시 안에 심지만 설령 살아 있어도 제 모습이 아닙니다. 자작나무는 원래 동토(凍土)에서 자라는 나무여서 여름 더위를 견뎌내기가 쉽지 않아요. 계곡에서 주로 자라는 산딸나무는 습한 것을 좋아하는데 언덕 위에 심으면 자라질 못하는 것과 같아요. 사람이 원하는 데가 아닌 나무가 원하는 데 심어야 합니다."

―나무가 '나는 어느 장소를 원한다'고 말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습도나 온도, 일조량 등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피톤치드를 많이 낸다는 편백나무를 남도에 많이 심는데, 중부지방에서도 그렇게 휴양림을 꾸미려고 심었다가 대부분 실패했지요. 단풍나무는 적은 햇볕에 살 수 있어 빌딩 사이나 정원 그늘에 심어도 잘 자라지만, 소나무나 유실수는 많은 햇볕을 원합니다. 그 나무가 무얼 요구하는지 알면 나무를 잘 키울 수 있습니다."

―한때 국내 산은 소나무 일색이었지만, 기후 변화와 병충해 등으로 산 생태계가 활엽수로 바뀌고 있다면서요.

"1970년대 민둥산에는 강한 햇볕을 좋아하는 소나무, 싸리나무, 아까시나무 같은 양수(陽樹)가 잘 자랐습니다. 이제 소나무는 능선까지 퇴각하고 있습니다. 그늘 아래에서 발아한 참나무 등 음수(陰樹)가 커 올라오자 소나무가 밀려나는 거죠."

―참나무의 성장에 왜 소나무가 퇴각합니까?

"소나무에 비해 활엽수의 생장 속도가 빠릅니다. 아래에 있던 활엽수가 소나무보다 더 성장해 가리게 되면 소나무가 살 수 없습니다. 소나무의 생장에는 햇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숲의 구성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선생은 '나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입원실·수술실 같은 것은 없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병원이 아닙니다. 직원 책상과 공구, 장비만 있지요. 환자가 찾아온 적이 없고 왕진(往診)을 가야 하지요. 의사가 진료를 하면 비용이 발생하는데 산속 나무들은 돈이 없지 않습니까. 정부에서 발주하는 천연기념물과 보호수 관리를 맡지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정원수들도 고객이 됩니다."

―정규 학력만 보면 나무에 대해 체계적인 공부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려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적색과 녹색 구분이 잘 안 되는 색약(色弱)임을 알게 됐습니다. 꿈이 좌절됐지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뒀습니다. 16세 때부터 먹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서울 양재동 근교의 원예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주인이 일본에서 나무 공부를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 일이 제 적성에 맞았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때 원예대백과사전에 나오는 식물을 모두 외웠으니까요."

그는 군에 입대했다. 1976년 제대 말년에 유격 훈련을 빠진 게 탈영 사고로 보고됐다. 사단본부에서 그에게 '서류에 도장 찍으면 징계 대신 김해 교육훈련소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영문 모르고 가보니 전역을 앞둔 군인 3만여 명이 모여 있었다.

"당시 연간 수출액이 100억달러를 돌파하던 시절인데, 중동(中東)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10억달러 단일 공사를 따낸 겁니다. 경사가 났지만 그걸 감당할 숙련된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젊은 군인들이 1년에 20만명 가까이 전역한다. 제대 말년 군인들을 훈련해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지시했던 겁니다."

그는 석 달간 배관 기술을 배워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됐다. 처음 1년은 대림에서, 그 뒤 1년은 현대에서 일했다. 50도가 넘는 사막에서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음식물은 입에 넘어가지 않았고, 거의 물과 소금으로 버텼다. 피골상접한 몰골이었다고 한다. 그는 2년 만에 1300만원을 모아 귀국했다.

그 돈으로 지금의 서울 마들역 근방에 땅을 빌려 국화와 장미 등을 키우는 원예 농장을 시작했다. 3년간 준비해 대량 출하를 했던 시기가 공교롭게 '5·18 광주'가 터진 1980년이었다. 아무도 꽃을 사지 않았다고 한다.

"농장은 망했지만 해 뜨기 전에 일어나는 습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떠도 갈 데가 없었습니다. 날마다 도봉산에 올라갔어요. 어느 날 도봉산의 포대 능선에 앉아있는데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자란 소나무가 보였습니다. 그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악조건 속에서 자란 소나무가 멋있듯이, 사람도 어려운 환경에서 저렇게 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을 내려와 다음 날부터 배운 도둑질인 조경 일을 시작했습니다. 전지(剪枝) 가위만 차고 나가면 됐으니까요."

88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건설 붐이 일자 조경업체까지 호황을 누렸다. 그 시절에는 조경수를 심기만 했지 가꿔주는 데가 없었다. 심은 조경수가 2년 안에 죽으면 다시 심어주는 '하자(瑕疵) 보수'만 있었다. 그는 삼성그룹 빌딩의 조경수 관리를 맡게 됐다.

"이병철 회장이 조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삼성이 매입한 을지로 입구의 내외빌딩에도 소나무 40여 그루를 심었어요. 서울시로부터 '조경상(賞)'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소나무들이 누렇게 다 죽어가는 겁니다. 당시 두꺼운 전화번호부 업종 편에 '시공 설계 전문 조경업체'들은 빽빽하게 실려 있었지만 '조경 관리업체'로는 제 회사가 유일했어요. 삼성에서 그걸 보고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2년 안에 모두 살려놓았습니다."

―어떻게 살렸습니까?

"도시 빌딩의 조경수나 가로수들의 아랫도리는 대부분 좁은 콘크리트 상자 안에 갇혀있다고 보면 됩니다. 뻗어나가는 뿌리는 벽에 막혀 썩게 됩니다. 큰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물과 비료를 주고 흙갈이를 해주는 등 관심을 가지면 살릴 수 있습니다. 그 뒤로 한동안 서울·경기 지역에 있는 삼성그룹 조경수를 모두 맡아 관리하게 됐습니다."

―어떤 나무가 왜 시름시름 죽어가는지 정확한 병인(病因)을 어떻게 찾아냅니까?

"잎의 크기와 색깔, 마디 길이, 껍질의 색 등을 봅니다. 가령 사람의 저항력이 떨어지면 병균에 약한 것처럼, 이끼가 많이 낀 고목(古木)들은 생장이 둔화됐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정상적으로 생장하면 껍질이 떨어져나가 이끼가 붙을 수 없지요. 나무 의사는 나무의 본성을 파악해 진단합니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만으로 똥을 쌌는지 배고파 우는지를 알듯이 말입니다."

―병든 나무는 치유할 수 있지만, 뿌리가 한번 들린 나무는 살릴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태풍이 와서 뿌리가 한번 살짝 들리는 경우 나무는 결국 죽습니다. 쓰러지지 않았는데도 잔뿌리들이 끊어졌기 때문이지요. 천연기념물인 통의동의 백송(白松)이 돌풍으로 넘어갔을 때(1990년) 많은 기술자가 살릴 수 있다고 했으나 결국 못 살렸습니다."

―사람들이 심는 나무에도 유행(流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자체마다 왕벚나무를 심는 게 유행이 됐습니다.

"봄날 벚꽃만큼 화사한 꽃이 없으니까요. 벚나무는 상처가 생기면 목재 조직이 잘 썩습니다. 큰 가지를 자르면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가로수의 특성상 전지를 안 할 수 없지요. 이 때문에 벚나무는 도심보다는 제약 조건이 적은 제방이나 외곽에 주로 심습니다."

―요즘 아파트 단지 길을 다녀보면 이팝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더군요?

"남쪽에서 주로 자랐는데 서울에서도 겨울에 얼어 죽지 않아 유행됐습니다. 주책없이 크게 자라지 않고 꽃은 갓 지은 쌀밥처럼 소담스럽게 피니까요."

―가로수로 유실수(有實樹)를 심을 수는 없습니까?

"햇볕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고층 빌딩이 많은 서울 시내에서는 일조량이 적어 쉽지 않습니다. 녹지가 많고 건물이 낮은 강릉에는 감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었습니다. 어떤 지방에선 단체장이 자기 취향으로 '어떤 나무가 좋다'고 하면 그 나무를 심는데, 이는 나무의 본성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된 시인 도종환씨는 최근 출간된 산문집 개정판의 서문에 '나는 내 처지가 거리에 불려 나온 가로수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빨리 거리에서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썼더군요. 실제 가로수 처지에서 보면 어떤가요?

"가로수는 결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자신이 지금 서있는 자리가 장차 무덤입니다."

―'무덤'이라면 너무 직설적인 비유인데요.

"가로수는 아스팔트 열기와 자동차의 분진, 빗물이 제대로 들어올 수 없는 보도블록 속에 있고, 뿌리는 뻗어가다 콘크리트에 막히고 하수도에 닿아 썩습니다. 너무 자라면 전깃줄에 걸리고, 건물 간판을 가리게 되면 아래 가지를 다 잘라버리고 머리 쪽 우죽만 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을이면 아예 '토르소'처럼 몸통만 달랑 남은 가로수도 흔합니다. 어떤 시인은 '해마다 목 잘라 봐라/ 팔이란 팔 다 잘라 봐라/ 오금에라
도 싹 틔울 테니/ 발가락으로라도 잎 쳐들 테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심을 때는 '빨리빨리 잘 자라라'고 하지만, 가지를 뻗게 되면 '저걸 빨리 잘라버려야 할 텐데' 하고 마음이 바뀝니다. 도시에서 가장 운 없는 생명체가 가로수일 겁니다. 자기 씨앗을 싹 틔우지 못해 후손도 못 남깁니다. 그게 한여름날 인간에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가로수의 운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