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최은규의 백 스테이지] 지휘자가 바뀌면 오케스트라 소리 달라지는 이유

최만섭 2022. 3. 8. 05:05

[최은규의 백 스테이지] 지휘자가 바뀌면 오케스트라 소리 달라지는 이유

 

입력 2022.03.08 03:00
 
지난 1월 말, 국내 대표 오케스트라로 손꼽히는 KBS교향악단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신임 예술감독 취임 음악회가 열렸다. 두 악단 모두 지휘자로서는 젊은 나이인 40대 초반 외국인 지휘자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했다. 젊고 참신한 지휘자를 영입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취임 공연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KBS교향악단을 지휘한 핀란드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은 핀란드 음악가 시벨리우스의 관현악곡에서 시벨리우스 특유의 음향을 들려줬다는 호평을 받았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벨기에 지휘자 다비드 라일란트는 슈만의 교향곡 2번을 찬란한 음향으로 표현해내며 찬사를 받았다.

두 공연을 지켜보면서 새삼 지휘자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 KBS교향악단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특별한 오케스트라 소리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시벨리우스 곡을 듣고 나서야 진짜 시벨리우스 음악의 중후한 소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슈만 교향곡 느린 악장의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을 들으며 슈만의 독일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지휘자가 바뀌는 순간 오케스트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

일찍이 20세기 명지휘자 첼리비다케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 질서를 부여하는 자”라고 말했지만, 여기에 더하여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을 추가하고 싶다. 지휘자는 음악 작품이 이상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바로 그 소리, 혹은 그 악단만의 고유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역사상 수많은 지휘자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리를 오케스트라로 구현해내기 위해 애써왔다.

17세기 프랑스 궁정, ‘태양왕’ 루이 14세를 모시던 궁정음악가 장 바티스트 륄리는 오늘날의 오케스트라 소리를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지휘자다. 본래 이탈리아 태생이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인정받아 파리로 보내진 륄리는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아 프랑스 궁정에 발을 들이고 마침내 루이 14세의 총애를 얻어 궁정의 음악 총감독 자리에 올랐다.

 

발레를 사랑한 루이 14세를 위해 여러 가지 춤곡을 작곡한 륄리는 그의 춤곡들이 더 좋은 소리로 연주될 수 있도록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악단 이름은 ‘왕의 바이올린 24대’로, 유럽 전역에 소문이 날 정도로 연주 실력이 뛰어났다. 악단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왕의 바이올린 24대’는 활로 연주하는 현악기 중심으로 구성한 현악기 그룹을 기본으로 하면서 필요에 따라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타악기가 추가되는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콘서트홀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의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토록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지휘한 륄리는 지팡이처럼 생긴 긴 지휘봉으로 바닥을 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가 그만 자기 발등을 찍어 결국 목숨까지 잃었다. 훌륭한 무용수이기도 했던 륄리는 발을 잘라내 춤을 출 수 없는 삶을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의 교향곡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역시 오케스트라 소리를 훌륭하게 만들어낸 명지휘자였다. 말러는 지휘대의 독재자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혹독한 연습을 시키기로 유명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리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 연습을 하는 것은 물론, 특정 악기 소리를 크게 부각하거나 다른 악기 소리는 억누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소리를 만들어내곤 했다. 때로는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 베토벤과 슈만 등 거장들의 악보까지 자기 방식대로 바꾸어 지휘하는 바람에, 당시의 빈 신문에는 베토벤이 말러를 꾸짖는 삽화가 실리기도 했다.

이제 독재적 지휘자들의 시대는 지나간 듯하다. 오늘날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소통하기를 중요시하는 지휘자의 리더십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에 질서를 부여하고 특유의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새롭게 국내 오케스트라를 맡게 된 지휘자들이 앞으로 어떤 소리로 콘서트홀을 채워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