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명작 속 의학] [19]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
벨기에 출신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년)는 시대를 뛰어넘는 초현실 그림을 많이 남겼다. 중절 모자를 쓴 남자 얼굴 앞에 녹색 사과를 그려 넣은 그림은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고, 요즘 광고에도 쓰인다.
1928년 그린 <연인들>이라는 작품도 묘한 상상력을 안긴다. 면사포 같은 헝겊으로 얼굴을 가린 남녀가 키스를 하고 있다. 얼굴도 나이도 가늠할 수 없다. 가장 친밀하고 은밀해야 할 남녀 입술 사이에 하얀 천이 가로 놓여 있다. 말 그대로 베일 속의 연인들이다.
코로나 감염병 시대를 맞아 이 그림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2020년 3월 이탈리아 신문은 마스크를 쓴 채 키스를 나누는 연인의 사진을 내보냈다. 마그리트의 연인들 장면이 마스크로 바뀐 듯한 모습이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법이 100년 전 그림을 호출했다.
하얀 천은 잠재적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평론가들은 마그리트가 소년이었을 때,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건을 이 그림의 모티브로 삼는다. 정작 화가 자신은 이를 부인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연인들>을 두고 인간 관계 본질을 언급한다. 나해란 마음공감연구소 나 소장은 “타인과 접촉은 했으나 서로 닿기 어려운 그 무엇을 각자 가지고 사는 게 현실의 인간 관계”라며 “많은 이들이 진정한 접촉을 원하지만 실상 완벽한 접촉이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나 소장은 “나는 곧 너이고, 너는 곧 나라는 공식 때문에 질투하고, 공허해하고, 버림받지 않으려고 힘들어한다”며 “사랑하는 이들도 휴일이 필요하다는 노랫말이 있듯이 얇은 하얀 천과 같은 심리적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 되레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비(非)대면, 언택트(untact) 생활을 하고 있다. 초연결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역설이다. 떨어져 있어도 친밀해지는 심리 방역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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