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김철중의 아웃룩] 초고령사회가 코앞인데… 한국엔 국립 노화·장수 연구소가 없다

최만섭 2022. 7. 13. 05:02

[김철중의 아웃룩] 초고령사회가 코앞인데… 한국엔 국립 노화·장수 연구소가 없다

입력 2022.07.13 03:00
 
 
 
 
 

초고령사회 일본은 근육과 전쟁 중이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에서 열 명 중 셋(29.1%·2021년 기준)인 상황에서 구청 문화센터나 노인보건센터 등 어디 가나 근육 단련 프로그램이 성황이다. 근육 잔고, 근육 저금 등 새로운 용어도 흔히 쓰인다.

고령자가 누워 지내면 의료비, 간병비 등으로 한달 평균 500만원을 쓴다. 75세 이상 고령자가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 수준인 1641만명인 일본. 이들 중 상당수가 노쇠해 누워 지내게 되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고령자가 간병 없이 자립해서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국가 흥망 사활이 걸린 문제다.

장수 의학 연구가 사회로 확산

일본이 처음부터 근육 불리기에 나선 것은 아니다. 1990년까지만 해도 걷기가 국민 건강 캠페인 대표 종목이었다. 하루 만보 걷기도 그 과정서 나왔다. 하지만 걷기만 해서는 노쇠를 막을 수 없다는 연구들이 잇따라 나왔다. 6년 동안 걷기를 열심히 한 노인의 근력이 25% 감소한 것으로 나왔다. 걷기만 한 사람은 쥐는 힘 악력도 11% 줄었다. 고령사회에서는 걷기만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전역에 근력 운동 붐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노쇠 연구를 주도한 곳은 도쿄도(道)가 1972년 일본 최초로 세운 노화연구소, 건강장수의료센터와 연구소이다. 고령화 비율 7% 때 세웠다. 여기서 근육 감소와 노쇠 관련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 연구소에서 만든 근육 개선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 결과 현재 75~79세의 근력과 보행 속도가 10년 전 65~69세와 거의 비슷해졌다. 70대 후반이 십 년 젊어진 것이다.

도쿄 건강장수연구소는 구강기능저하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보급했다. 단순히 치아 관리 차원을 넘어 씹고, 삼키고, 말하기 등 구강 기능 전체를 보는 것이다. 구강 기능 감소 고령자는 일찍 노쇠하고, 인지 기능도 줄어 치매에 많이 걸린다는 연구들이 줄줄이 나왔다. 이에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성은 구강 기능 저하증 진단과 치료를 건강보험에 포함시키고, 고령자에게 확산시키고 있다.

연구소는 신(新)건강 장수 수칙 12가지를 만들어 국민에게 보급하고 있다. 기존 장수 지침이 신체 건강 위주인 것과 달리 이곳의 장수 수칙은 어울리기를 강조한다. 동네 사람과 길거리를 잘 아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연구를 근거 삼고 있다. 65세 이상에서 동호회·친목회 등 그룹 활동을 한 사람이 3년 후 사망할 위험은 그룹 활동을 안 한 사람보다 40% 낮다. 어울려야 노쇠가 천천히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일본 곳곳에 동네 고령자들이 어울려서 지내는 클럽이 70만여 개까지 늘어났다. 65세 이상 노인이 언제 어떻게 노쇠하는지 20년 이상 추적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70대·80대 나이대별 자립 수준에 맞게 노인홈, 요양원, 요양병원 수요를 대비하고 있다.

국가가 초고령사회 인프라 준비해야

일본 나고야에 있는 국립 장수의료연구센터가 세운 치매 병동에 가보면 다인실 병실 구조가 방사형으로 되어 있다. 4개 병상이 원을 그리며 배치되어 있고, 각각의 병상에 창문이 있다. 모든 환자에게 햇볕을 쪼여주기 위함이다. 이에 비해 기존 사각형 형태의 4인실에서는 창쪽 두 명만 햇빛을 받는다. 국립 장수의료연구센터의 치매 병동은 고령자에게 햇빛을 충분히 주어야 인지기능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일본 병원은 가능한 한 고령자에게 햇볕을 많이 주려고 애쓴다.

국립 장수의료연구소는 2006년에 개설됐다. 이후 산하 기관으로 치매 선진 의료 연구센터, 노년학·사회과학연구센터, 장수의료정보센터, 움직임과 노쇠센터 등을 잇따라 설립했다. 국립연구소에서는 치매 예방 목적으로 ‘코그니사이즈’를 개발하여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이는 영어로 인지 기능을 말하는 코그니션(cognition)과 운동을 뜻하는 엑서사이즈(exercise)를 합친 용어다. 여럿이 모여 스테퍼 운동 하면서 낱말 잇기 게임을 하는 식이다. 다 같이 어울려 운동하면서 머리 쓰기를 하면, 인지 기능이 크게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일본 TV에서는 연예인들이 모여 이 게임을 하는 모습이 종종 방영된다. 장수 의학 연구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건강한 고령자, 움직이는 고령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17.5%로, 이미 고령사회로 들어왔다. 4년 후인 2026년이면 그 비율이 20%가 넘는다. 초고령사회가 코앞에 왔고,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임에도 국공립 노화장수연구소가 없다. 일본이 고령화 비율 7% 때 종합노화연구소를 만든 것과 비교된다. 2000년대 초반 국립 장수연구소 설립 논의가 있었으나, 과기부, 복지부 등 정부 어느 부처에 두느냐로 논쟁을 벌이다 흐지부지됐다. 수 년 전에 다시 국립 장수연구원 설립 논의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어느 지역에 두느냐 놓고 따지다 없던 일이 됐다. 최근에는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보건원에 노화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민간 분야에서도 초고령사회를 종합적으로 대비하는 연구소나 기관이 없다. 도쿄대는 2009년 의학, 공학, 식품학, 법학, 사회학 등 여러 학과를 아우르는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를 출범했다. 여기에 기업들이 참여해 고령자 특화 영양 식품, 노인홈 주택 , 이동 수단, 노인 소통 기구, 간병 로봇 등 다양한 고령 친화 산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00세인 연구를 이끈 장수 의학자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 교수는 “선진국이 보행장애가 있는 고령자를 위한 무인 승용차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처럼 노화와 장수는 복지 차원을 넘어 미래 성장 산업과 사회 작동 시스템 혁신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1970년대 설립돼 경제발전 방향을 이끈 한국개발원 수준의 초고령사회 대비 종합 노화장수연구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움직이는 고령사회, 어울리는 한국사회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