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한국경제는 한겨울 이빨 빠진 호랑이"

최만섭 2015. 12. 16. 09:20


    

"한국경제는 한겨울 이빨 빠진 호랑이"

나지홍 기자 -  곽창렬 기자-  이신영 기자 

입력 : 2015.12.16 03:05 | 수정 : 2015.12.16 08:51 


[한국경제 위기 경보] [下] 국내외 전문가들 진단

"반창고만 덕지덕지 붙이지 말고, 韓國경제 과감히 메스 대라"


- 전직 경제首長 10명 모두

"글로벌 경제 혹한 오는데 기존 성장모델은 수명 다해 진통제 처방으론 못 버틴다"


-이빨 빠진 호랑이

"한국은 거대한 양로원… 위기 불감증에 걸린 정치권이 가장 큰 리스크"


- 독일식 노동개혁 나서야

"노동개혁법 통과시킨다고 당장 좋아지는건 아니지만 기대심리는 줄 수 있어"

'혼(魂·mojo)을 잃은 호랑이.'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166명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했다. 이 대규모 사절단을 보면서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이렇게 표현했다. "박 대통령에게 가장 큰 도전은 북한 핵 문제나 미·중 간의 외교 줄타기가 아니라 바로 경제다."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며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한국에 대해 최근 외신 및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 '기적의 껍질이 벗겨진 한국 경제'처럼 우울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한국 경제가 2016년에는 더 심한 혹한의 터널로 들어선다. 당장 17일 새벽(한국 시각) 미국은 근 10년 만에 기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주범이었던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돼 풀었던 돈줄을 조이는 것이다. 이에 맞서려고 중국도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유럽 등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더 낮추는 바람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풍랑이 다시 거세졌다. 국제 유가가 연일 하락해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중동 등에서는 지갑을 닫고 있다.


이런 파고를 견뎌내야 할 한국 경제의 체력이 눈에 띄게 저하된 상태여서 기업이나 경제 전문가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본지가 김대중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경제 부처 장관을 지낸 10명을 통해 한국 경제를 진단한 결과 10명 모두 "제조업과 수출을 앞세운 한국 경제의 성장 모델이 수명을 다했다. 이젠 진통제 처방만으로 만성화된 위기를 버텨나갈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경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 정리 표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과 전직 장관들이 꼽은 한국 경제의 당면 위기는 크게 네 가지로 집약된다.


무엇보다 한국을 둘러싼 대외 여건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난류(미국 금리 인상)와 한류(일본·EU의 양적 완화)가 소용돌이치는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세계 교역 규모는 2008년 금융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한국을 먹여 살려 온 수출이 상당 기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한국 경제는 고령화되는 거대한 양로원"(짐 로저스)이란 비유가 등장할 만큼 인구 구조가 더 이상 경제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고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 같은 대내외 제약보다 더 근본적 위기는 체격 커진 한국 경제가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한국은 위기 원인을 밖에서 찾지만 실은 내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했다. 가령 한·중·일 3개국 중 인건비 올라가는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 한국이다. 철강·조선 등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렸던 주력 산업의 시장점유율은 3년 전부터 중국에 밀리고 있다.


경제의 역동성이 뚝뚝 떨어지는데, 이에 대한 자각 증세는 전혀 없는정치권의 위기 불감증이 한국 경제에는 최대 리스크가 되고 있다. 가령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근거 법률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올해로 시한이 만료되는 한시법이다. 이 법이 연장되지 않으면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은 법률적 근거를 상실하고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안을 다루는 상임위원회(정무위) 자체가 열리지 않는 실정이다.


◇"국회선진화법 없애라"


전직 경제 수장들은 "정치엔 묘책이 있지만 경제엔 묘수가 없다"면서 "노동개혁·경제활성화법처럼 지금 논의되는 해법부터라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게 정도(正道)"라고 말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에 계류 중인 법들이 통과된다고 우리 경제가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국민들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정치권의 여야가 합심해 뭔가 미래를 위한 준비에 나서는구나' 하는 기대심리는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다수결을 막는 국회선진화법을 고쳐야 한다"(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는 목소리도 높았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선거로 다수당이 된 집권 여당이 책임을 지고 정책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선거는 왜 하느냐. 소수 정당이 국회 내에서 버티기로 정책을 방해하는 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해법으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데 대비해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낮은 금리로 한계 기업을 떠받쳐 왔다. "한국 경제는 중상에 반창고를 붙이는 처방으로 일관해왔다"(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한계 기업을 퇴출시키는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꽃필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식 불황 vs 독일식 개혁


우리가 벤치마킹할 국가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곳은 독일이다. 독일은 1990년 통독(統獨) 이후 경제성장률이 1% 안팎에 머무는 저성장을 겪었지만 과감한 경제 개혁으로 저성장의 터널을 탈출했다.


슈뢰더 총리가 이끌던 독일 사민당 정권은 2003년부터 기업들의 해고 요건 완화와 실업급여 지급 기간 단축 등 '하르츠 개혁'으로 불리는 노동 개혁을 추진했다. 슈뢰더에 이어 집권한 우파의 메르켈 총리도 이 개혁을 계승·발전시켰다. 비록 독일 사민당은 좌파와 노동계의 반발로 정권을 잃었지만, 슈뢰더 총리는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을 유로존의 성장 엔진으로 개조시킨 주역"(권오규 전 경제부총리)으로 평가받는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좌·우파 정권이 위기의식을 공감하고 경제정책에서 일관성을 이어간 독일 모델을 따르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일본식 장기 불황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