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트코인 반토막 쇼크... 이과장·김대리 연차내고 앓아누웠다

최만섭 2021. 5. 21. 05:05

비트코인 반토막 쇼크... 이과장·김대리 연차내고 앓아누웠다

조유진 기자

김태주 기자

이영관 기자

입력 2021.05.20 21:38

 

 

 

 

 

/그래픽=박상훈

20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선릉역에서 만난 2년 차 직장인 김모(27)씨는 오전 내내 사무실에서 눈치를 보다 겨우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고 했다. 전날 비트코인을 비롯해 주요 코인 가격이 한때 30% 이상 폭락한 ‘검은 수요일’의 여파 때문이었다. 비트코인은 지난 2018년에도 중국 당국의 강력한 규제로 가격이 한달새 4분의 1 토막 나는 대폭락 사태를 겪었었다. 김씨는 “코인 투자하는 팀원 6명 중 2명이 오늘 갑자기 연차와 반차를 쓰고 안 나왔다”며 “8000만원 정도 투자한 팀장이 출근하더니 ‘아무 때나 연차 쓰지 말라’며 화풀이성 설교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100만원 정도 넣었다가 50% 날려서 어제 새벽 1시 반 넘어 잤는데, 오전 내내 팀장과 동료들 눈치보다 이제 간신히 한숨 돌린다”고 했다. 충청북도의 한 공공기관에 다니는 이모(30)씨도 “보통 동료들과 밥 먹거나 커피 마시면서 ‘코인 투자’ 얘기를 주로 하는데, 오늘은 다들 조용하고 착 가라앉은 분위기라 혼자 점심 먹으러 나왔다”고 했다.

코인이 대폭락한 다음 날인 20일 직장가는 투자금을 날린 직장인들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지난달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855명을 조사해보니, 코인에 투자한 직장인은 전체의 40%. 투자자의 주축은 신입 사원부터 과장급인 2030이다. 간신히 직장은 잡았지만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금 마련에 허덕이는 세대다. 올 1분기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 신규 가입자의 67%가 2030이었다.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약세를 지속한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부터 코인이 폭락하면서 날밤 새우고 출근한 직장인이 많았다. 이날 자정부터 20일 오전 7시까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무서워서 못 자겠다” “소주 두 병 마셔도 잠이 안 온다” 등 코인 관련 글만 500여건이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폭락에 국내 거래소 빗썸·업비트에는 투자금을 빼려는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19~20일에 걸쳐 입출금이 지연되는 ‘먹통 현상’이 벌어졌다.

폭락한 날은 각 기업의 ‘화장실’과 ‘흡연 구역’이 유독 북적인다. 서울의 한 대기업 3년 차 정모(28)씨는 “오전 11시쯤 단타를 하려고 휴대폰 들고 화장실로 갔는데, 모든 칸이 다 차 있는데 물소리는 하나도 안 나고 곳곳에서 작은 한숨만 터져 나오더라”고 했다. 20일 한 건설사 직원 황모(32)씨도 “코인 안 한다던 대리가 오늘은 1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이나 담배 핑계 대고 나가고, 코인 관심 없다던 차장님도 팀장님 회의 들어가자마자 1시간 넘게 폰만 보더라”고 했다. 직장에 말 안 하고 남 몰래 투자하는 이른바 ‘샤이(shy) 투자자’들도 폭락장에는 어떻게든 티가 난다는 것이다.

 

전날 3만1000달러까지 폭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20일 오후 4만달러를 넘어서며 살짝 반등했다. 알트코인(비주류 코인)의 대명사인 ‘도지코인’도 하루 만에 50% 폭락했다가 20% 반등하는 등 시세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직장가는 뒤숭숭하다. 직장인들은 ‘코인으로 한 달 만에 1년치 연봉을 벌었다’는 이들을 보면 의욕이 사라지고, 괜한 박탈감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한 반도체 제조 회사의 부장급 직원 최모(42)씨는 “4년 차 직원이 요새 이틀에 한 번씩 지각하고, 회의용 자료에 오타를 잔뜩 냈기에 ‘요즘 무슨 일 있냐’고 했더니 당당하게 ‘코인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답을 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며 “내 앞에서도 서슴없이 코인 앱을 보는 직원이 많다”고 했다.

코인족’과 ‘비(非)코인족’ 간 갈등도 빚어진다. 국내 한 경제연구소에서 일하는 손모(25)씨는 “옆자리 동료 폰에서 거의 30분마다 한 번씩 알림이 울려서 ‘좀 끄라’고 했더니 ‘코인 시세가 5% 단위로 바뀔 때마다 울리는 알람’이라더라”며 “끄기는커녕 코인 종목을 추천하기에 화가 났다”고 했다. ‘비코인족’인 유통업체 직원 김모(26)씨도 “엘리베이터, 카페, 회의 등 3개월 내내 동기랑 나눈 대화의 8할이 코인”이라며 “동기가 ‘너 이러다 평생 집 못 산다’고 잔소리해 지겨웠는데 요새 폭락이 아주 반갑다”고 했다.

 

조유진 기자

 

조선일보 조유진 기자입니다.

 

김태주 기자

 

 

 

이영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