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데스크에서] 선량한 은행장이 되는 법

최만섭 2016. 2. 16. 11:00

[데스크에서] 선량한 은행장이 되는 법


    입력 : 2016.02.16 03:00

    이진석 경제부 차장 사진
    이진석 경제부 차장
    "은행장 중에 선량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얘기죠."

    은행권이 최근 금융위원회에 옆구리를 찔려가며 '성과주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뒤늦게 연봉제 도입과 5000만원에 육박하는 은행원 초임 삭감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한 금융권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장 중에 선량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는 민법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라는 문구와 관련이 있다. 내가 주인이 아닌 경우나 관리 책임이 있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일 처리를 할 경우라면 보통 사람 수준으로는 주의를 기울여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은 주인이 없으니, 은행장들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했다면 당연히 진작에 연봉제를 도입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계속됐다. "은행이 지금껏 연공서열 위주의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보험, 증권, 카드 등과 달리 뚜렷한 대주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미래에셋증권, 현대카드 등 은행 외 금융사 중 연봉제 안 하는 곳이 있는가."

    그동안 은행장들은 호봉제를 유지하자는 노조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줬다. 같은 해 입사한 직원이라면 일을 잘하느니 못하느니, 일손이 빠르니 느리니 따지지 말고 매년 1호봉씩 올라가서 비슷한 월급을 받아 갈 수 있도록 해줬다. 어차피 2~3년 뒤엔 임기가 끝나는데 노조와 척지면서 연봉제를 강행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는 10억원 넘나드는 고액 연봉을 챙겼다. 공기업인 국책은행장 연봉도 4억원은 넘는다. 금융 관료들도 한몫 거들었다. 당장 선배가 갈 자리이고, 몇 년 뒤엔 내가 옮겨 갈지도 모르는 자리라고 생각했을 테니 호봉제니, 연봉제니 시끄러운 일이 생기는 게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다가 금융 후진국이라는 질타 속에서 금융 개혁에 나서면서 드디어 연봉제 전환이 이슈가 됐다. 국내 모든 은행 17곳의 행장들은 얼마 전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대표자 회의라는 이름을 걸고 모여서 연봉제 확대와 "어느 산업에 비해서도 높고, 금융권 내에서도 높은 편"(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인 은행권 초임 삭감을 거론했다. 늦었지만 선량한 관리자가 되기로 작정한 셈이다.

    은행 노조들도 달라져야 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살인적 노동 강도 부추기는 성과주의 확대 반대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지나친 일이다. '개미' 행원들이 땀 흘려 끌고 가는 수레에 '베짱이' 행원들이 무임승차하는 걸 방치해서는 안 된다.

    연봉제 확대와 초임 삭감은 월 급봉투에 손을 대는 일이라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은행장 대부분은 지난해 9월 신입 직원을 더 뽑는 데 쓰겠다며 연봉의 20%를 반납했다. 언젠가는 원상 복구될 반납이 아니라 아예 삭감하겠다고 하면 노조와 협상하면서 길이 좀 보일 듯싶다. 제 살은 깎지 않고 남의 살만 깎겠다고 덤빈다면 선량하다고 보긴 어렵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