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시위정보 깜깜이 경찰… ‘민노총 시너 점거’ 아예 몰랐다

최만섭 2022. 8. 19. 05:13

시위정보 깜깜이 경찰… ‘민노총 시너 점거’ 아예 몰랐다

文정부 때 손발 묶인 정보라인… 화물연대 고공농성 등 허 찔려

입력 2022.08.19 03:00
 
 
 
 
 

민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 70여 명이 지난 16일 새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를 기습해 18일까지 3일째 1층 로비와 옥상을 점거한 채 불법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일부 조합원은 평소 250명이 근무하는 건물 안에 인화 물질 시너까지 반입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노조의 움직임을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안팎에서는 지난 정부가 “민간인 사찰 우려가 있다”며 경찰 정보 기능을 약화한 것이 서울 한복판 ‘시너 농성’ 같은 불법 행위가 잇따르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 막고 고공농성 지원 집회 - 18일 오후 2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화물연대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에서 농성 중인 조합원들을 소리쳐 응원하고 있다. 지난 16일 새벽 화물연대 조합원 70여 명은 하이트진로 본사 건물로 갑자기 진입해 1층 로비와 옥상을 점거했다. /박상훈 기자

1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16일 화물연대 조합원 일부가 강원 홍천 등 하이트진로 전국 공장에 흩어져 투쟁을 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해 주요 지역에 경찰을 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노조는 청담동 본사에 들이닥쳤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관계자는 “사실상 정보 활동이 실패한 셈”이라며 “부정확한 정보로 조합원들이 위험 물질인 시너 등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틈을 준 건 반성해야 할 대목”이라고 했다.

경찰 정보력 부족으로 애를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도심 한복판 기업 사옥이 잇따라 점거되는데도 경찰은 이를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난 6월 말 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로비를 기습 점거할 때나, 지난 2월 서울 마포구 CJ대한통운 본사가 전국택배노조에 본사 1·3층을 기습 점거 당할 때가 그랬다. 쿠팡 점거 농성은 1달이 넘도록, CJ대한통운 본사 점거는 19일간 이어졌었다.

작년 민노총이 수차례에 걸쳐 수천~수만명 규모의 도심 집회를 열 때도 경찰은 매번 마지막까지 집회 장소가 어딘지 몰랐다. 특히 작년 10월 20일 민노총은 서대문역 사거리에서 기습 집회를 열었는데, 집회 시작 30분 전 조합원들에게 집결 장소를 ‘기습 공지’했다. 서대문역은 경찰청 청사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집회 장소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엉뚱한 광화문 일대와 청와대 진입 경로에 대규모 차벽(車壁)을 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경찰의 정보 기능을 축소한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일환이었다. 당시 여당은 정보 경찰이 개인에 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모으는 ‘불법 사찰’ 등을 했다며 경찰 내 정보 기능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실제 그 이후 2020년 경찰법 및 경찰공무원법을 개정하면서 정보 경찰의 업무 범위가 줄었다. 특히 노사 갈등 현장에 대한 정보 경찰 개입이 금지됐는데, 이를 계기로 노조 관련 정보력이 크게 떨어졌다. 2017년 3500명이었던 정보관 수는 현재 2900명 정도로 10% 이상 줄었다. 서울청의 경우 정보 경찰이 100여 명인데 민노총 담당은 4명, 한국노총 담당은 1명뿐이다.

 
 

또 과거에는 불법 집회 때 정보관이 개입해 중재를 하거나 화해를 유도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모두 금지됐다. 서울청 소속 한 정보관은 “정보 경찰의 업무 중 70~80%가 노사 갈등인데, 손발을 묶어 놓은 탓에 관전자처럼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 선호도 1위 보직이었던 정보과의 인기도 사그라들고, 정보관들의 사기도 떨어졌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과거엔 정보과 지원자가 많아 경쟁률이 5대1 정도였는데 최근엔 1대1도 안 될 정도로 확 줄었다”고 했다. 서울청 한 정보관은 “정보활동에 쓴 비용에 대해 ‘정보 경찰 규칙을 지킨다’는 각서 비슷한 서명을 일일이 해야 하니 일을 하면서도 마치 범죄자가 된 것 같다”며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서 다들 몸을 사린다”고 했다.

노동계와 기업도 정보 경찰이 중재 등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계 관계자는 “과거엔 정보관과 상의해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시위를 했다”며 “지금은 조금만 잘못해도 불법 집회로 규정되고, 조합원들이 회사로부터 소송당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한편 화물연대 측은 18일 오후 2시쯤부터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9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었다. 차로 7개 중 3개가 막히면서 교통 혼잡이 빚어졌다. 사측은 본사 점거 농성 중인 노조원들에 대해 지난 17일 업무방해, 특수주거침입 및 퇴거 불응, 건조물방화예비,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담은 고소장을 서울 강남경찰서에 제출했다고 이날 밝혔다.

 
 
사회부 주말뉴스부 문화부를 거쳐 국제부에서 국제 뉴스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