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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사벽’을 넘었다

최만섭 2022. 7. 20. 05:32

‘넘사벽’을 넘었다

우상혁 세계선수권 높이뛰기 2m35 넘어… 사상 첫 은메달

입력 2022.07.20 03:00
 
 
 
 
 
한국 높이뛰기 간판 우상혁이 19일 미국 오리건주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두 번의 시도 만에 2m35를 넘는 모습. 이 기록으로 우상혁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에서 낸 최고 성적이다. /.EPA 연합뉴스

마지막 기회였다. 2m33에서 두 번 모두 실패한 뒤 맞이한 3차 시기. 이번에도 넘지 못하면 19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시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메달 없이 마감해야 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도약을 준비하던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은 높이뛰기 바(bar)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씩 웃었다. 큰 보폭으로 ‘펄쩍펄쩍’ 뛰어가더니 배면뛰기(몸을 새우등처럼 뒤로 눕혀서 뛰는 기술)로 날아올랐다. 머리카락이 바에 닿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넘는 데 성공했다. 우상혁은 지난 3월 실내 세계선수권에서도 2m31을 3차 시기에 넘은 끝에 결국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위기에 강하다.

이날 최종 기록이었던 2m35는 2번 만에 뛰어넘었다. 이번엔 빙글빙글 돌면서 자축의 춤을 췄다. 경쟁자이던 장마르코 템베리(30·이탈리아)가 2m35에서 세 번 내리 실패하면서 메달권에서 벗어났다. 우크라이나의 안드리 프로첸코(34)는 2m35에서 두 번, 2m37에서 한 번 실패하면서 동메달로 레이스를 끝냈다.

우상혁이 금메달을 따려면 2m37을 한 번에 성공시킨 무타즈 에사 바심(31·카타르)을 제쳐야 했다. 우상혁은 2m37에서 한 번 실패하자 곧바로 높이를 2m39로 올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2m33부터 여러 차례 바를 넘지 못해 체력을 소진한 때문인지 우상혁은 두 번 모두 바를 떨어뜨렸다. 아쉬운 표정 속에서도 우상혁은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고, 관중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6년만에 세계 벽 뛰어넘다

지난 3월 실내 세계선수권에 이어 이번 실외 세계선수권 우승을 노렸던 우상혁은 “2m33에서 3차 시기까지 가는 등 경기 운영이 다소 매끄럽지 못해서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세계선수권 은메달은 한국 육상 사상 처음이다. 육상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은 남자 20㎞ 경보 김현섭의 2011년 대구 대회 동메달이 유일한 입상 성적이다. 마라톤에선 1996년 이봉주가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나 세계선수권에선 입상 경력이 없었다.

 

우상혁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로 주요 대회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록 향상에 큰 몫을 한 건 다이어트였다. 키가 188㎝인 우상혁은 73~74㎏ 정도를 유지했는데, 지난해 도쿄올림픽 직전 69.5㎏까지 떨어트렸고, 한국 신기록인 2m35를 뛰어넘으면서 메달권 바로 아래인 4위라는 ‘깜짝’ 성적을 거뒀다.

이번 대회에서도 호밀빵, 샐러드 등만을 먹는 혹독한 식단 관리로 65~66㎏ 몸무게를 꾸준히 유지한 끝에 은메달을 따냈다. 그는 “쌀밥과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해서 다이어트가 무척 힘들지만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게 더 힘든 일”이라며 “시즌이 진행되는 10월까지는 다이어트를 이어간다”고 했다.

우상혁은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한국은 올림픽 도로 종목인 마라톤에서 황영조, 이봉주가 메달을 땄지만, 트랙 및 필드에서는 아직 메달리스트가 나오지 않았다. 내후년까지 우상혁이 이 기세를 이어간다면 한국 최초의 금메달도 꿈은 아니다. 이진택 해설위원은 “지금도 너무 대단하지만, 근력과 탄성을 키우면 기록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우상혁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낸 바심은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탬베리와 함께 공동 금메달을 목에 건 남자 높이뛰기 최고 스타다. 지난 5월 카타르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에선 우상혁에게 우승을 내줬지만, 이번에 남자 높이뛰기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3연패를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