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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허준이·임윤찬이 사랑한 불멸의 언어

최만섭 2022. 7. 11. 05:17

 

[朝鮮칼럼 The Column] 허준이·임윤찬이 사랑한 불멸의 언어

 

입력 2022.07.11 03:20
 
 
 
 
 

후배 한 명이 웃으며 투덜거렸다. 이제 칸 영화제나 빌보드 차트뿐만 아니라, 클래식 콩쿠르와 필즈상까지 대비해야 하는 세상이라고. 물론 즐겁고 반가워서 하는 농담이다.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필즈상을 받은 39세 수학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자기계발서를 준비 중인 출판사에서는 벌써 책 제목까지 정해놨다고 한다. ‘허준이처럼 수학하고, 임윤찬처럼 연주하라’. 거의 신드롬 수준의 인기다.

예술과 학문에서도 생동(生動)하는 한국의 에너지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두 사람 모두 극단의 제한 조건을 돌파하고 상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콩쿠르와 수학상이고, 필즈상의 경우 40세 이상은 자격도 없다. 하지만 이 예술가와 수학자에게 유달리 시선이 오래 멈춘 이유는 그런 경이로운 숫자나 트로피라는 결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삶과 언어의 아름다움에 매혹됐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 소감에 이런 대목이 있다. “개인적으로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이고, 일반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일입니다”. 수학을 수학의 언어가 아니라, 문학이나 예술의 언어로 듣는 경험이었다.

임윤찬의 수상 소감과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제 실력이 더 느는 게 아닙니다.” “인간이 언어를 하지 못할 때 음악을 통해 소통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깊은 아픔을 겪었을 때 음악이 탄생하죠.” 아직 앳된 표정의 청년은 언어가 불가능할 때 음악을 한다고 했지만, 이 사려 깊은 말은 그의 힘찬 타건(打鍵)만큼이나 울림을 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문장을 듣고 읽으면 우리 역시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존재가 우리 시대에도 인문학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는 모범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쓸모를 가지고 논하자면 기둥 뒤에 숨어서 눈치를 봐야 하는 고사(枯死) 위기의 학문. 인문학은 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취직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며, 아파트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지도 못한다. 하지만 ‘퍼펙트 스톰’이 닥쳐온다는 경제와 허구한 날 진영 논리로 싸우는 정치, 그리고 전쟁과 테러로 넘쳐나는 이 우울한 세계에서, 두 사람의 쾌거와 소감은 우리가 잠시 호흡을 고르며 웃게 도와주는 한 토막 여유 같은 게 아니었을까. AI를 걱정하는 시대에도 인간이라는 종이 왜 아름답고 신비한지를 보여주는 존재 증명으로써 말이다.

 

허준이 교수는 중학생 때 시인을 꿈꿨다는 문학 소년.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시인을 원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수학과 시는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수학자들의 공동 연구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때로는 제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잠시 머물다 가는 그릇 같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이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다니며 점차 풍성해지는 것이 신기하다.” 난해한 숫자와 공식의 수학은 증발하고, 아름답게 부풀어 오르는 예술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랄까.

임윤찬은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된 단테의 ‘신곡’을 빠짐없이 찾아 읽었다는 그의 말을 기억한다. 리스트의 피아노곡 ‘단테소나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아날로그 청년은 콩쿠르를 앞두고는 휴대폰에서 유튜브 앱도 지운다. 다른 훌륭한 피아니스트 연주를 보면 무의식중에 따라 하게 되고, 나만의 독창성은 사라진다고 믿으니까. 그는 말했다. “마음에서 나쁜 것을 품으면 음악이 정말 나쁘게 되고,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연주하면 음악에도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기자의 책상 위에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미국문학예술아카데미(AAAL)의 웅장한 청동 문 사진이 붙어 있다. 그 청동 문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오직 예술만이 지치지 않고 우리와 함께 머문다. 예술의 문을 통해 우리는 행복한 신전(神殿)으로 들어선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불멸의 언어와 예술을 만들어내는 마법. 허준이와 임윤찬, 덕분에 인간이라는 종이 어떤 방식으로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