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자

[강천석 칼럼] 아베 없는 일본 상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최만섭 2022. 7. 16. 21:09

[강천석 칼럼] 아베 없는 일본 상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우익 정치가로 우익에게 停止 신호 보내 먹히던 유일한 일본 정치인
아베 시절 왜 한-일 관계만 퇴보했을까 돌아봐야

입력 2022.07.16 03:20
 
 
 
 
 

일본 정부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장례를 오는 9월 국장(國葬)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 장례는 고인(故人)의 집안사람만 모여 단출하게 지내는 ‘밋소(密葬)’와 그와 간격을 두고 격식에 맞춰 공식으로 치르는 ‘혼소(本葬)’의 두 단계로 진행된다. 전직 총리 국장은 패전 직후 일본을 이끌며 현대 일본의 기틀을 다진 요시다(吉田茂) 전 총리 이후 두 번째다. 한국 저울로 재는 정치가 아베의 무게와 일본 저울로 재는 무게가 크게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정치가에 대한 나라 안 평가와 나라 밖 평가가 다른 것은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경을 맞댄 여러 나라가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전쟁을 벌이며 은원(恩怨)을 쌓은 유럽 역사가 그렇다. 전쟁으로 영토를 넓힌 한 나라 영웅은 다른 나라에선 침략의 원흉(元兇)으로 규탄받는 게 다반사다. 그러던 유럽도 평화가 깃들고 국가관계가 안정되면서 많이 바뀌었다. 아데나워 독일 총리와 드골 프랑스 대통령 평가는 두 나라 국경을 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베 전 총리를 한국에선 ‘극우 정치가’로 알고 있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 한일 관계가 1965년 양국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最惡)이었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베 하면 강제 징용, 위안부, 역사교과서, 반도체 첨단 소재 대한(對韓) 수출 제한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아베 전 총리가 일본 정계에서 가장 우익인 건 사실이지만 아베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 시대의 ‘죽창(竹槍) 외교’에 의해 만들어진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몇 년 전 일본 방문 때 원로 언론인에게 ‘정치가 아베의 강점(強點)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이 조금 뜻밖이었다. ‘일본 정치인 가운데 우익(右翼)을 제어(制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베뿐’ 이라고 했다. 우익에 반대하는 정치인, 우익을 선동하는 정치인은 있어도 우익에 휘둘리지 않고 결정적 순간에 정지(停止) 신호를 보내 그 신호가 먹히는 정치인은 아베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지 기반인 우익이 ‘아베에게 배신당했다’며 맹렬히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정부 간 합의의 실천을 미루다가 2017년 12월 아무 대안(代案) 없이 합의 파기를 선언했고, 양국 관계는 수렁으로 굴러 들어갔다.

일본에선 아베 전 총리 치적으로 흔들리던 미·일 동맹을 굳건히 다시 세워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버블 붕괴 이후 20년간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 경제에 소생(蘇生)의 희망을 불어넣었다는 걸 꼽는다. 그는 재임 중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14번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때마다 트럼프는 ‘미·일 동맹은 미국에 불공정하다’며 압박했다. 아베는 이런 미·일 관계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트럼프가 문 대통령이 아니라 아베에게 먼저 전화로 의견을 묻는 관계로 끌어올렸다. ‘쇠퇴하는 일본과 쇠퇴하는 미국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면 중국을 막기 어렵다’ 는 게 아베의 기본 생각이었다고 한다. 미국은 아베 사거(死去) 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수립에 아이디어와 표현까지 제공한 정치가로 치켜올렸다.

일본 주가(株價)는 1989년 12월 3만8915엔이라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 주가가 1990년 벽두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해 2011년 8445엔으로 추락했다. 이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아베는 아베노믹스 경제정책을 통해 주가를 임기 종반 3만엔대 가깝게 끌어올렸다. 아베노믹스는 당초 내건 정책목표 수치를 절반쯤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500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든 것은 큰 성과였다.

한국과 일본은 국익(國益)이 다르고, 국익이 다르면 정치가의 노선이 달라지고, 노선이 다른 상대국 정치가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진다. 그렇다 해도 아베 집권 기간 일본과 관계가 소원(疏遠)해진 나라가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면 그렇게 만든 시대와 원인을 한번 돌아볼 일이다.

아베 전 총리는 최대 파벌이란 숫자의 힘으로 당내 4위 소규모 파벌 영수인 기시다(岸田文雄) 현 총리를 만들었다. 기시다 총리에게 아베 전 총리는 상왕(上王)처럼 거북스러운 존재이면서도 그와 합의만 하면 정책의 실천이 보장되는 응원군이기도 했다. 온건파 기시다 총리는 우파를 움직일 힘이 없다. 지붕이 사라진 우파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한일 간 문제는 우파의 벽을 넘지 못하면 합의도 실천도 불가능하다. 기시다 총리가 한국의 적극 자세에도 살얼음 밟듯 조심하고 말을 아끼는 배경이다. 윤석열 정부 대일 외교는 치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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