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외교·안보 정책 정상화는 이제 시작일 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지만, 국정 여러 부문에서 가시적 변화가 일고 있다. 위기에 처한 국가 안보 복원과 대중국·대북한 굴종 정책 청산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맡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소리 없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명박 정부가 대외 정책을 정상화하고 무너진 한미 관계를 복원하는 데 수년을 소모한 반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불과 한 달 사이에 본격적 변화가 일고 있다.
정부는 새 정부 출범 11일 만에 5·21 한미 정상 공동성명을 발표해 지난 5년간 한국 외교를 황폐화한 친중·친북 정책과 결별하고 ‘안미경중(安美經中)’의 몽환에서 깨어나 한국의 정체성을 재천명했다. 북미-아시아-유럽의 문명 세계 전체가 함께하는 대중국 연합에 본격 동참하여 쿼드와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를 통한 협력, 대중국 첨단 기술 보호를 위한 협력, 한·미·일 협력 필요성 등에 합의했다. 민감한 대중국 현안인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문제 및 역내 인권 문제에 관한 협력도 선언했다. 종래 이견이 많았던 북한의 핵 위협과 인권 상황에 대한 공통 인식을 확인했고, 한미 연합 훈련 확대에도 합의했다.
이와 유사한 한미 공동성명은 작년 5월 워싱턴 정상회담 때도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가 미·북 협상 재개를 독려하려 정략적으로 수용한 문구였기에 이행 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반면 이번 5·21 한미 공동성명은 즉각적 이행과 실천을 수반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반대와 위협 속에 지난달 23일 출범한 IPEF에 창설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한미 연합 군사 시위로 즉각 대응했다. 지난주엔 4년 7개월 만에 미국 항모와 한국 마라도함이 참여하는 한미 연합 항모강습단 훈련이 재개되었고, 이달 말 26국 함대가 참여하는 미국 주도 환태평양훈련(RIMPAC)에도 대규모 전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외교·안보 정책 정상화의 핵심인 대중국·대북한 정책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넘어야 할 큰 산들이 남아있다. 대중국 굴종 외교의 상징이었던 ‘3불 약속’은 아직 건재하다. 특히 대중국 자주 외교와 북핵 대응의 핵심 사안인 사드 추가 배치가 단행되는 기미는 없다. 대북한 정책은 변화가 더욱 더디다. 원론적 대북한 자세 변화와 한미 연합 훈련 재개에도 불구, 우리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편파적 합의들로 가득 찬 평양 남북군사합의는 아직 건재하다. 북한의 코로나 사태가 알려지자마자 서둘러 대북 의료 지원 제안부터 하고 보는 습관성 대북 정책 관행에도 변화가 없다.
분단국의 평화 통일이라는 초유의 선례를 남긴 독일이 분단 시대에 시행한 대동독 정책은 우리에게 귀중한 역사적 교훈이다. 서독은 브란트 수상의 동방 정책 이래 19년간 통일보다는 동독의 개혁·개방과 인권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를 대동독 경제 지원과 철저히 연계했다. 동독의 공식 요구가 없거나 투명성이 없거나 반대급부가 없는 대동독 지원은 차단됐다. 그런 단호한 정책의 결과, 동·서독에서 각각 매년 주민 100만명 이상이 상대측 지역을 방문했고, 동독 주민 25만명이 합법적 서독 이민을 허가받았으며, 동독 정치범과 가족 3만3755명의 서독 망명이 실현되었다. 동독 주민의 자유로운 서독 방송 청취와 동서독 간 우편물 교환, 노조 설립의 자유 등도 관철되었다. 이들은 서독 정부가 경제 지원의 대가로 동독을 압박해 얻어낸 개혁 조치들로, 이에 따른 동·서독 간 이질성 해소는 1990년 독일 통일의 불가결한 토대가 되었다.
우리 외교·안보 정책이 바로 서려면 무엇보다 대북 정책이 바로 서야 한다. 과거 우리 외교와 국방 정책이 혼선과 파행을 거듭해온 이면에는 국내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왜곡된 대북 정책의 그림자가 종종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국익과 안보를 희생한 채 남북 관계에 올인한 정권들이 얻어낸 건 무의미한 합의문 몇 장뿐이었다. 대북한 눈치 보기와 퍼주기로 환심을 사서 피상적으로 관계를 진전해 보려는 식의 대북 정책으로는 비핵화도 평화도 이룰 수 없고, 인류 역사상 성공 사례가 전무한 ‘합의를 통한 평화 통일’도 불가능하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가 평화이고 통일이라면, 인내심을 갖고 장기간에 걸쳐 북한을 원천적으로 변화시키는 개혁·개방의 고육지책 외엔 대안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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