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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지난 전투식량 배급… 제트기엔 구식 무기 장착

최만섭 2022. 3. 10. 05:24

20년 지난 전투식량 배급… 제트기엔 구식 무기 장착

러시아군, 침공 2주… 가려진 실체 드러나

입력 2022.03.10 03:00
 
 
 
 
 
지난 8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 도시 이르핀에서 피란민들이 폭파돼 무너진 다리 밑을 지나고 있다. 이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키이우 외곽 지역과 마리우폴 등 일부 지역에 ‘인도적 통로’를 마련하는 방안에 합의하면서 이르핀에서도 민간인 대피가 시작됐다. /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개전 2주째가 되도록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미국과 함께 세계 최고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지상군이 아직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진입하지 못했고, 공군 제트기들도 우크라이나 하늘을 맘껏 날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사기 저하로 공격 명령을 거부하거나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 시각) “유럽 국가들에게 러시아군은 그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그 이미지가 산산조각 나고 있다”고 말했다.

①군 수뇌부에 과도한 권한, 현장 지휘관은 보신주의

우선 러시아군 지휘 계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NYT는 “모스크바에 있는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게 모든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사소한 사안도 일일이 그의 허락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최전선의 작전이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징집된 어린 병사들은 경험이 없고, 실전에서 부사관들은 현장에 맞는 지휘를 못한다고 한다.

군 지휘관들이 지극히 보신주의적으로 움직인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전력 손실 책임을 회피하려 휘하의 전투 자산을 일부만 투입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싱크탱크 ‘발다이 디스커션 클럽’은 “소규모 부대(대대전술단) 단위로 편제를 바꾼 러시아군 개혁의 부작용”이라고 분석했다.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 지시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한 민족, 한 국가”라고 교육받은 일선 지휘관과 병사들이 심각한 사기 저하를 겪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패, 그리고 취약한 보급 시스템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러시아군은 개전 당시 3일치 보급품만 받았다”고 했다. 전투가 길어지자 즉각 연료와 탄약, 식량 부족 문제가 불거졌다. 장병 중 일부는 유효 기간이 2002년인 전투식량을 받았다고 한다. 군납 비리와 부패로 늘 보급이 부족 한데다, 그 질도 교도소보다 못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러시아군에 식량을 납품하는 회사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군에서 ‘제2의 통화’라고 불리는 기름은 장병들이 중간에 빼내 팔아먹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남부 전선의 러시아군은 친러 세력이 장악한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이 가까워 상대적으로 보급 상황이 나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부 전선에서는 수백㎞ 떨어진 러시아에서 보급품을 실어 날라야 하는 데다, 연료 부족으로 보급 부대의 기동도 느려 보급 문제가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③구식 미사일·폭탄 장착한 전투기

러시아군은 개전 첫날 “우크라이나 공군의 방공망과 주요 기지를 모두 파괴했다”며 제공권 장악을 공언했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군 전투기와 헬기가 격추되고 있다. UK디펜스저널 등 영국 군사전문지들은 “러시아군의 첫날 공습이 정확하지 못해 의외로 많은 우크라이나 전투기와 방공 전력이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은폐된 임시 활주로에서 출격한 우크라이나 공군기가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하는 사례도 나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정밀 유도무기 재고가 충분치 않아 러시아 제트기가 구식 폭탄을 싣고 저공 비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때 우크라이나군이 휴대용 대공미사일로 제트기·헬기 등을 격추하고 있다.

④64㎞ 늘어선 지원부대 ‘거북이 진격’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키이우 쪽으로 이어진 약 64㎞의 러시아군 장비와 보급 트럭 행렬도 미스터리다. 미국 위성업체 막사 테크놀로지스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28일 이후 9일째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이들의 최전선 진격이 지연되면서 러시아의 키이우 공략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연료 부족과 장비 고장,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군 작전 계획 수립과 사전 현장 정보 획득, 훈련 부족, 동원·이동 역량 등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지지부진한 전세를 일거에 뒤엎기 위한 과격한 공격 행위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푸틴 대통령은 지금 화가 나 있고 좌절하고 있다”며 “그는 민간인 사상자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병력을 증강해 우크라이나군을 격파하고 분쇄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