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당근마켓에서 사고팔기처럼 타협하는 정치를

최만섭 2022. 3. 4. 05:08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당근마켓에서 사고팔기처럼 타협하는 정치를

사회주의 혁명은 주로 농업 사회에서 일어나
상업 발달한 서유럽 지역에선 성공 못해
옳고 그름 아니라 대화 통한 거래 중시하기 때문
상거래 계약의 ‘양보와 타협’이 민주주의 기초
제3의 답 찾는 협상으로 우리 정치도 변혁해야

 

입력 2022.03.04 03:00
 
선거하면 항상 좌우 측에 40%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이 두 집단은 상대방이 죽어야 자기가 사는 선거라는 전쟁을 하고 있다. 선거는 전쟁이지만 선거 이후의 삶은 다르다. 며칠 후면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다. 누가 되든 자신을 찍지 않은 절반 이상의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여론 양극화의 이유가 소셜미디어가 만드는 확증 편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자신에게 맞는 정보만 듣기 때문에 반대편 의견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혹자는 좌우를 오가는 정권 교체 중에 각각의 정권이 잡았을 때 자기에게 일자리를 준 정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콘크리트 지지층이 된다고 본다. 혹자는 우리가 원래 해방 이후 여운형과 남로당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며 그나마 지금은 산업화로 잘살게 되면서 우파가 늘어나 절반 정도 된 거라고 말한다. 모두 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실제로 사회주의 혁명은 농업경제가 기반인 국가에서 성공했다. 상업이 발달한 서유럽 국가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회주의 혁명은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된 곳에서 성공한다. 상업이 발달하면 신흥 부호 계급이 등장하고 왕이나 종교 지도자의 권력이 밑으로 분산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없었다.

반대로 상업화와 산업화에 뒤처졌던 러시아, 중국, 북한, 베트남, 캄보디아는 사회주의가 집권했다. 소상공인들은 각각 자주적인 소규모 자본가가 되어서 피지배 계층을 선동하는 사회주의 혁명에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상공인은 민주주의의 풀뿌리다. 해방 직후 남로당이 득세한 것은 당시 경제구조가 농업경제 기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구밀도 높은 도시 없어 상업 발달 늦어>

우리나라에서 상업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밀도가 높은 도시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온돌이라는 난방 구조 탓에 주거 공간을 단층으로 넓게 퍼뜨려 지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분석한다.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면 계약이 발달하지 못한다. 계약은 내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약속의 연습이다. 이러한 양보와 타협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된다.

상업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 말기까지 우리는 농업경제 기반 사회였다. 특히 벼농사는 농지가 다 한 물길로 연결되어야 한다. 농업 사회에서 토지는 자본인데, 이것이 다 연결된 것이다.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인 사회다.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한 공동체로 평등한 사회를 추구한다. 벼농사 사회는 상업 사회보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가 받아들여지기 쉬운 사고방식이다.

조선 500년은 대부분의 농사꾼과 그를 관리하는 관료가 있는 유교 사회였다. 유교 사회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사회다. 관료가 백성을 가르쳐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들은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지만 속으로는 국민을 내려다본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과거에 백성은 상소를 했고, 근대에 와서는 혁명을 하기도 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혁명은 위대하다. 하지만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것은 더 위대하다.

 

우리나라는 비판과 정죄보다는 타협과 약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욕심을 탐욕이니 그릇됐다고 하지 말고 정당한 권리와 자유라고 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욕심을 이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정치가가 할 일이다. 관료가 옳고 그름을 가르치려고 드는 관습을 버려야 한다. 지금은 실학이 자리 잡지 못하고 대의명분만 추구하던 조선 말기의 정치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정치 발전하려면 역지사지 협상 공간 많아야>

우리 정치는 아직도 농업식 사고방식에서 상업식 사고방식으로 이전하는 과정에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 발전하려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것은 작은 연습에서 시작된다. 그런 연습 공간이 시장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고라’라는 시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이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찾고 사고팔면서 대화와 협상을 연습했다. 아고라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온상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마켓은 가상 공간으로 이동했다. 온라인 마켓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쿠팡 같은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물건을 파는 마켓이 아니라 당근마켓처럼 불특정 다수가 일대일로 거래하는 곳 말이다. 파는 사람 처지도 되어보고, 사는 사람 처지도 되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당근마켓은 내가 필요 없는 물건을 인터넷 장에 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사 가는 구조다.

가격 책정은 상대방 처지가 되어서 결정해야 한다. 역지사지 연습이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서로 필요에 따라 협상하고 뜻이 맞으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양보와 타협 연습이다. 이때 판매자와 소비자는 걸어가서 만날 수 있는 동네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 양보와 타협을 훈련한다면 좌우가 나뉘어서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죽이려 들지 않고 제3의 답을 찾아가는 식으로 우리 정치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다음번 정부에서는 그런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진정한 승자는 적을 죽이는 자가 아니라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자다. 어차피 우린 같은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