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천일야화

[新중동천일야화] 사우디는 예멘 정부, 이란은 후티 반군 지원하며 ‘대리전’… 혼돈의 아라비아 반도

최만섭 2022. 1. 24. 05:27

[新중동천일야화] 사우디는 예멘 정부, 이란은 후티 반군 지원하며 ‘대리전’… 혼돈의 아라비아 반도

이슬람 수니·시아파 종주국 자임하는 사우디·이란 갈등 첨예화
후티 반군, 사우디 편들며 예멘 남부에 전략거점 만든 UAE 공격
美 중동 이탈 기조와 이란 영향력 확대에 걸프 국가들 긴장 커져

입력 2022.01.24 03:00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동맹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예멘 수도 사나의 건물. 앞서 지난 17일 예멘 후티 반군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드론으로 공격했다. /AFP 연합뉴스

일주일 전인 지난 17일 아랍에미리트(UAE)가 피습당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아부다비 석유시설과 공항을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했다. 후티는 그동안 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타격해왔다. 아랍에미리트 공격은 최근 3년간 전무했었기에 이번 공습이 다소 이례적으로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동 지역의 갈등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아랍-이스라엘 분쟁 그리고 사우디-이란 대결이다. 이스라엘과 아랍은 지난 70여 년 동안 네 차례의 중동 전쟁을 비롯, 숱하게 직접 부딪쳐왔다. 하지만 아브라함 협정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등 일부 아랍 국가들 간 수교 협정)으로 갈등 수위는 낮아지고 있다. 반면 사우디-이란 갈등은 여전히 첨예하다.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을 자임하며 역내 세력을 둘로 갈라 종파 간 진영을 만들고 있다.

사우디는 이슬람 혁명 사상 수출을 일종의 국시(國是)로 여기는 이란이 눈엣가시다. 이란이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시리아 아사드 정부 등 친이란 세력들로 아라비아반도를 포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티 반군도 이란 무기를 쓰고 있다. 같은 부류다.

2015년 예멘 내전 격화 후,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까지 점령하자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 등과 함께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며 개입했다. 남쪽 접경 지역에 후티가 이란산(産) 미사일을 배치하고, 자국 주요 도시들을 겨누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반면 아랍에미리트 역시 이란과 적대적이었고, 사우디와 함께 참전도 했으나 후티 반군에 대한 위협의 감도는 사우디와 달리 낮은 편이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연합군의 강도 높은 공습과 봉쇄에도 후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민간인 피해자가 속출했다. 무차별적 폭격과 호데이다 항구 봉쇄로 인해 인도주의적 위기가 닥치면서 사우디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했다. 아랍에미리트의 불만도 커져갔다. 여론의 부담과 함께, 자국 병사들의 희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아랍에미리트는 2018년부터 독자적 포석을 한다. 전투 병력 철군을 하되, 현지 세력을 이용, 해양 전진 기지로 예멘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 편에 서면서도, 분리주의 세력인 남부과도위원회(STC)와도 손을 잡았다. STC는 예멘 남부 아덴항 등을 거점으로 하는 반정부 집단이다. 예멘 남부 지역에서 세(勢) 확장을 통해 해양 항로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독자 노선을 펼치는 카타르처럼 아랍에미리트도 사우디 휘하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예멘을 디딤돌로 바다로 나섰다. 소코트라 군도, 페림(마뉴) 섬 등에 항만과 기지를 건설하며 아덴만, 아라비아해, 그리고 홍해 바브알만데브 해협으로 이어지는 해양 수송로에서 존재감을 높여왔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사이에는 묘한 냉기가 흘렀다. 형제국 사우디의 안보가 위험한 차에 아랍에미리트가 독자적 대외 전략으로 자기 이익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보였을 법하다. 이 틈새를 노렸는지 후티는 사우디 본토 공격에 집중했다. 예멘 내전으로부터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커진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혼돈의 걸프 지역에서 안정적인 비즈니스 허브 입지를 다지면서 바다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후티는 왜 아부다비를 공격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랍에미리트 개입 차단을 위한 공세다. 최근 예멘 내 주요 유전 지대이자 에너지 요충지인 마리브와 샤브와 지역에서 후티가 밀리기 시작했다. 아부다비의 지원을 받는 ‘거인 여단’ 등 친(親)아랍에미리트 반군의 공세 때문이다. 작년 가을, 후티는 공세 수위를 높여 이 지역을 장악했다. 후티가 이후 계속 남진(南進)할 경우 아랍에미리트가 내심 공을 들여온 STC의 거점 아덴항이 위험해질 처지였다. 바다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가 지원하는 현지 반군 집단이 나서 선제적으로 마리브와 샤브와를 공격하자 후티는 작심하고 아부다비를 타격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는 간접적으로라도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로 읽힌다.

둘째로, 역내 정세 변화 맥락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이란과 대화에 나선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의 행보가 주목된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보았듯 미국의 중동-서아시아 거리 두기 징후가 명확하다. 현재 빈에서는 이란 핵합의 관련 재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지원에 전적으로 안보를 맡겨왔던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국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을 떠나고, 이란과 재협상에 성공한다면 결국 숙적인 이란의 부상은 필연적인 셈이다. 차제에 걸프 왕정들은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위험 회피 차원에서 최근 이란과 대화를 모색 중이다.

작년 사우디 왕실은 이란과 네 차례 고위급 비밀 대화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고, 아랍에미리트는 12월 왕실 핵심 인사인 셰이크 타흐눈 국가안보보좌관을 이란으로 보내 라이시 대통령과 역내 안보 문제 등의 의견 교환을 했다. 한편 국제사회는 이란의 역내 대리 세력 지원 중단과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후티의 위기감이 그려진다. 호전적 공세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다.

이처럼 미국의 중동 이탈 기조와 맞물려 역내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다. 미국의 부재를 가정한 각자도생의 셈법들이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얽힌다. 더욱 깊은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평화를 위한 다른 방법은 없다. 일단 사우디가 전쟁을 멈추고 봉쇄를 풀어야 한다. 후티 역시 일체의 도발 행위 중단을 선언하고 협상에 나서되 국제사회는 후티 인구 및 점유 지역을 고려하여 지분을 일정 정도 인정하도록 예멘 정부와 정파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최대 관건은 이란이다. 책임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면 후티와 같은 대리 세력을 동원, 타국의 주권을 해치고 불안정성을 높이는 공세적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답은 다 알고 있다. 알고도 행동하지 않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