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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 실즈부터 흑인 청년시인까지 하나 됐다…시드니 포이티어의 마지막 선물

최만섭 2022. 1. 10. 05:17

브룩 실즈부터 흑인 청년시인까지 하나 됐다…시드니 포이티어의 마지막 선물

첫 흑인 오스카 남우주연상 탄 개척자
인종·성별·나이 불문하고 일제히 추도
소셜미디어에는 고인과 함께한 ‘추억의 한 컷’ 올려

입력 2022.01.09 14:58
 
 
증오와 분열로 넘쳐나던 미국인들의 소셜미디어가 모처럼 화합과 추억의 장으로 훈훈해졌다. 황무지에 길을 내는 역사를 쓰고 떠난 아흔 다섯의 노배우가 세상에 보낸 마지막 선물이었다. 스승의 날 단골 안방극장 상영작이었던 ‘언제나 마음은 태양’의 참스승으로 기억되고 있는 할리우드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95). 그의 별세 소식에 인종과 세대를 넘어선 추모열기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다. 포이티어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던 1964년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들판의 백합)을 거머쥐며 유리천장을 깬 개척자다.

 

젊은날의 브룩 실즈와 시드니 포이티어 /브룩실즈 페이스북

우피 골드버그, 댄젤 워싱턴, 제이미 폭스 등이 할리우드 톱스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일찌감치 길을 열었던 대선배로 추앙받았다. 그가 7일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미국 유명인사들이 앞다퉈 애도 메시지를 올리며, 그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소개했다. 고인보다 여섯살 아래로, 미국에서 영향력이 제일 막강한 흑인 대중음악가로 꼽히는 퀸시 존스는 “내 평생 가장 소중한 형제를 잃었다. 하루를 시작할 수 조차 없었다”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시드니 포이티어와 퀸시 존스. /퀸시 존스 페이스북

그러면서 “그와 나는 할리우드에서 함께 일하며 목표를 성취했고, 함께 목소리를 내왔다”고 했다. 소수인종과 뛰어난 재능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던 두 사람은 영화 배우와 영화음악가로 여러 차례 협업을 했다. 퀸시 존스는 자신이 영화음악을 맡았던 포이티어의 출연영화 앨범 재킷과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을 올렸다.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와 시드니 포이티어. /오프라 윈프리 페이스북

가장 성공한 흑인 여성을 거론할 때 첫손에 꼽히는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도 추모 열기에 동참했다. 마치 아버지와 딸처럼 힘껏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고 “나의 큰, 가장 큰 나무가 떨어졌다”며 침통한 심경을 표현했다.

아카데미 역사상 흑인배우로는 첫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시드니 포이티어와 할리 베리. /할리 베리 페이스북

‘마이 걸’ 등의 노래로 그와 동시대 사람들을 위로했던 흑인 그룹 ‘템테이션스’도 “공연예술과 민권운동분야에서 기념비적인 행보를 보였던 그는 흑인사회 뿐 아니라 온 인류의 거목이었다”고 회고했다. 배우이자 가수인 달린 러브도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할때를 떠올리며 고인을 기렸다. 후배 예술인들도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포이티어가 남우주연상을 받고 38년이 지난 다음에야 흑인 여배우로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역사를 쓴 할리우드 스타 할리 베리는 대선배의 가슴에 자신의 손을 얹은 사진을 올렸다. 그는 “당신의 떠남에 내 영혼은 울고 있다”며 “당신은 흑인들이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시드니 포이티어와 가수 레니 크라비츠. /레니 크라비츠 페이스북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야(It ain’t over ‘til it’s over)’라는 노래로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흑인 가수 레니 크라비츠 역시 생전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당신의 빛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뮤지컬 영화 ‘드림걸스’에서 노래와 탁월한 가창력으로 2007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제니퍼 허드슨도 할아버지와 손녀처럼 보이는 사진을 올리고 “그는 우리를 위해 길을 개척했다”고 추도했다.

시드니 포이티어와 '드림걸즈'의 제니퍼 허드슨. /제니퍼 허드슨 페이스북

작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송하면서 미국 문학계의 샛별로 떠오른 흑인 여성 청년 시인 어맨더 고먼도 “언어 장애를 극복하는데 그의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포이티어가 특유의 액센트 때문에 놀림을 받자 방송 아나운서들의 발음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얘기를 아홉살 때 책에서 읽고 이를 활용해 언어장애 문제를 극복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시드니 포이티어와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페이스북

거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인종을 가리지 않았다. 가수와 배우, 감독으로 미 대중문화계를 종횡무진 누볐던 팔방미인 바브라 스타라이샌드는 그와 포옹하는 사진을 올리고 “포이티어는 영화에서나 정치에서나 신사적인 거인이었다”고 했다. 80년대 사춘기 남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원조 ‘책받침 스타’이면서 최근 활발한 대중활동을 하고 있는 브룩 실즈도 젊은 시절 그와 찍은 사진을 올리고, “우아함, 재능, 스타일의 본보기이자 아름다운 영혼, 그의 안식을 기원한다”는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