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영완이 만난 사람] “백신이 호랑이를 고양이로 바꿔… 부스터샷 접종 늦으면 변이 바이러스 감당 못 해”

최만섭 2021. 12. 20. 05:15

[이영완이 만난 사람] “백신이 호랑이를 고양이로 바꿔… 부스터샷 접종 늦으면 변이 바이러스 감당 못 해”

백신 개발·지원 이끌어온 국제백신연구소 제롬 김 사무총장

입력 2021.12.20 03:00
 
 
 
 
 

코로나 방역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18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7314명 늘어 누적 확진자 수가 55만8864명이라고 밝혔다. 위중증 환자는 1016명으로,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처음으로 1000명대를 넘어섰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 접종받았는데도 코로나 확산세가 더 심해지자 일각에서는 백신의 효과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서울대 연구공원에 있는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백신은 핵심 무기”라며“한국이 백신 개발에서 앞서가려면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역동적인 백신 산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제롬 김(62)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전염병이 대유행하면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변이는 다시 또 다른 대유행을 부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백신은 모두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 바이러스를 타깃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새로 출현한 변이 바이러스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사무총장은 “미접종자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부스터샷(추가 접종)을 빨리 실시하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백신연구소는 국내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로, 개발도상국의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백신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1997년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설립됐으며, 세계 36국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설립 협정 조인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먹는 콜레라 백신과 차세대 장티푸스 백신 등을 개발했으며, 현재 국내외 20여 기업의 코로나 백신 개발과 임상 시험을 지원하고 있다. WHO가 공인한 코로나 백신 평가 표준도 개발했다.

 

백신은 코로나라는 호랑이를 고양이로 바꿔

-정부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를 중단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다시 강화하자 백신의 효과를 의심하고 부스터샷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에는 이미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졌다. 변이가 발생하면 백신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스터샷이 중요하다. 백신은 감염을 예방하는 것보다 중증을 막는 데 더 뛰어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백신을 맞으면 감염 위험이 5분의 1로 줄고, 입원과 사망 위험은 각각 10분의 1로 떨어진다. 백신을 접종받으면 호랑이가 고양이로 변하는 셈이다. 최종 목표는 백신으로 감염까지 완전히 막아야겠지만 지금으로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어떤 백신의 조합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델타 변이에 이어 전염력이 훨씬 강하다는 오미크론 변이까지 발생했다. 또 최근에는 어린이 감염자가 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어린이 백신 접종이 중요하다. 델타 변이가 퍼지자 백신 미접종자들이 감염원이 됐다. 백신 주사를 맞지 않았던 어린이들을 통해 코로나가 퍼졌다. 오미크론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오미크론은 이전보다 2.4배 전염력이 강한 데다 어린이에게 더 심한 증상을 유발한다는 관측도 있다.”(최근 남아공 국립전염병연구소가 오미크론이 어린이 입원 위험을 델타보다 20% 높인다고 발표했지만 아직은 과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다.)

-한때 항체 치료제가 코로나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하다가 다음에는 백신이 게임의 판도를 바꿀 무기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먹는 치료제가 새로운 희망이 됐다.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사람들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본다. 백신도, 치료제도 모두 중요하다. 백신이 어느 정도 감염을 예방하지만 핵심 기능은 질병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백신 접종자나 코로나 완치자가 돌파 감염되면 치료제가 필요하다. 궁극적인 목표는 코로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독감(인플루엔자)처럼 백신으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예방하고 그중에 돌파 감염이 일어나면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국제백신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외부와 완전 차단된 생물 안전 3등급(BSL3) 실험실에서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은 실험 동물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노출시켜 효능을 시험한다. /국제백신연구소

◇백신 개발 위해 정부의 과감한 투자 필요

-우리나라는 코로나 대유행 초기 거리 두기나 마스크 착용 같은 개인 방역은 잘 이뤄졌지만 정부의 백신 도입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백신 수급에서 한국이 뒤처진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은 코로나를 통제할 다른 방법이 없어 정부가 백신 개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지난해 9~10월 백신이 효과가 있는지 알기도 전에 백신 구매를 결정하는 모험을 했다. 반면 그들보다 코로나를 잘 통제하고 있던 한국 정부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백신 도입이 지연된 탓에 한국인들이 백신 접종을 받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델타와 오미크론 변이가 출현한 지금, 부스터샷은 늦으면 안 된다. 이제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많은 사람에게 부스터샷을 접종해야 입원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국제백신연구소는 최근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 백신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왜 코로나 백신 개발에서 다른 나라보다 늦었을까.

“우리 연구소는 한국 기업들이 자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실험동물에게 접종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일부러 노출시켜 효과를 알아보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성과가 나올 것이다. 해외에서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한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엄청난 개발비를 부담할 여력이 있었거나 아니면 정부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받은 경우였다. 한국의 백신 개발이 늦은 것은 산업 규모가 작은 데다 정부가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염병 대유행은 앞으로도 반복된다고 하는데 한국이 백신 분야에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을까.

“기존 백신 제조사들은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제조 능력을 갖춘 회사와 손을 잡고 있다. 한국은 생산 능력이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는 SK바이오사이언스에 코로나 백신 위탁 생산을 맡겼으며, 모더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국제기구인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은 GC녹십자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스스로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려면 생산 능력과 함께 전 세계 판매망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매우 건강하고 역동적인 백신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국제기구와 손잡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백신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특정 회사의 지식재산권을 제한하는 방안도 모색됐다.

“백신은 특허권이 풀린다고 바로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제조 단계가 5만개에 이른다. 5만 단계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조리법’이 없다면 백신 제조는 불가능하다. 특허에 담겨 있지 않은 노하우가 있어야만 고품질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또 특허권을 뺏으면 장차 새로운 전염병 대유행이 발생했을 때 아무도 백신을 개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개도국 백신 접종해야 변이 차단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텐데 그때마다 새로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 것인가.

“기존 백신은 중국 우한에서 확인된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춰 개발됐지만 지금까지 여러 변이에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델타와 오미크론 변이에는 효과가 떨어져 제약사들이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또 다양한 변이에 다 효과가 있는 범용 백신도 생각할 수 있다. 독감 백신도 그런 방향으로 개발 중이다. 이미 일부 회사에서 범용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 임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아프리카처럼 아직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에서 계속 변이가 출현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 세계가 모두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데, 다른 나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을까.

“현재 전 세계에서 매달 20억회 접종분(도스)의 백신이 생산되고 있다. 1년이면 240억도스를 생산할 수 있다. 전 세계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양이다. 인도의 백신 제조사는 이미 공급이 넘친다고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의 백신 접종률은 여전히 낮다. 백신이 있어도 의료진과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까지 해결하도록 도와야 변이 바이러스 출현을 막을 수 있다.”

◇인플루엔자가 다음 번 대유행 부를 수도

-국제백신연구소는 왜 코로나 백신을 자체 개발하지 않았나.

“우리가 자체 백신을 개발하면 다른 곳에서 개발한 백신보다 우위에 두게 되고 제대로 외부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코로나 대유행 초기에 엄청난 개발비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를 포함해 어느 곳에서도 그만한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결과적으로도 다른 기업들의 코로나 백신 개발을 지원한 것이 다양한 차세대 백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올바른 판단이었다.”

-코로나 이후에도 전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이 반복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음번에는 어떤 바이러스가 세상을 위협할까.

“몇 년 안에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대유행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종류지만 감기만 일으키던 것도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대유행을 유발할 수도 있다. 오미크론 변이에서 보듯 바이러스끼리 유전자를 교환해 전염력이 강해졌다. 감기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백신은 게임의 판도를 바꿀 강력한 무기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백신을 사용할 의료진이라는 군대가 충분해야 한다. 개인도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제롬 김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하와이대에서 생물학·역사학을 전공했다. 예일대 의대를 졸업하고 듀크대 병원에서 내과 수련의(인턴)와 감염 질환 전문의(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미국 국립군의관 의대 교수와 미 육군 에이즈 바이러스 연구 프로그램의 수석 부책임자를 지냈다. 2015년 제3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언론과 외교 분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김현구(1889~1967) 선생의 손자로, 한국명은 김한식이다.

 
 
1997년 이후 줄곧 과학 분야만 취재하고, 국내 유일 과학기자 기명칼럼인 ‘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에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과학으로 풀어내길 좋아하는 이야기꾼, 이영완 과학전문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