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늙었으니 소변주머니 차라고?" 1000명에 '방광' 선물한 의사

최만섭 2021. 11. 30. 05:16

"늙었으니 소변주머니 차라고?" 1000명에 '방광' 선물한 의사

중앙일보

입력 2021.11.30 05:00

“피가 많이 안 나고 수술 시간이 단축되니 환자한테 스트레스가 별로 없습니다. 80세 넘은 할아버지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이대목동병원에서 만난 이동현(비뇨의학과) 인공방광센터장(56·사진)은 “나이 많다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변)주머니 차세요’ 하면 노인 환자들이 굉장히 서러워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센터장은 국내에서 인공 방광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의사다.

인공 방광 수술은 방광암으로 방광을 절제한 환자가 주로 받는다. 올해 1월 발표된 국가 암 등록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방광암은 국내에서 10번째로 흔한 암으로, 3만7722명이 앓았다. 남성에서는 8번째로 많이 발병한다. 뿌리가 얕은 방광암은 내시경 수술로 제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방광을 다 도려내야 한다.

이 센터장은 이런 환자에 통상 6~7m 길이인 소장 끝부분을 잘라 공 모양으로 자르고 꿰매 요도에 연결하는 식으로 인공 방광을 만들어준다. 펠로우(전임의) 시절 '해외에서 이런 수술을 하는데 한번 해보라'는 은사 제안으로 첫 수술을 하게 됐고, 1996년 이래 홀로 한 인공 방광 수술이 1000건이 넘었다.

이 센터장은 “스포이드로 물을 채워 250~300cc 정도 사이즈로 만들면 향후 시간이 지나면서 400~500cc(성인의 평균 방광 용량)까지 늘어난다”고 말했다. 요도괄약근, 신경이 다 절제된 경우 등을 제외하곤 이 센터장에게 수술 불가능한 환자가 거의 없다.

방광 절제 수술을 받으면 흔히 옆구리에 소변 주머니를 차는 '회장 도관' 수술을 한다. 소변 주머니 수술에 비해 인공방광 수술이 훨씬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두 수술의 수술 비용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수술 이후 삶의 질 차이가 크다. 소변 주머니를 차게 되면 여러 불편을 겪을 수 있어서다. 외양만 달라지는게 아니라 소변이 샐까,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해 바깥 출입을 꺼리게 된다. 인공 방광 수술은 외관상 티가 나지 않는 데다 사우나, 골프, 수영, 성생활이 가능해 환자 만족도가 높다.

 

이 센터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로 15살 때부터 간질성방광염을 앓아 사춘기 내내 기저귀를 차고 지내다 21세 때 방광암 진단을 받은 청년 환자를 꼽았다. 그는 인공방광 수술을 받고 기저귀 없이 새 삶을 살게 됐다. 이 센터장은 “첫 번째 청춘을 선물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한다.

이동현 이대목동병원 인공방광센터장이 15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000건의 수술을 집도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8시간 걸리던 수술시간을 이제 3시간가량에 끝낸다. 수술시간을 줄이면 합병증이 적고 환자 회복도 빠르다. 특히 신경과 혈관 손상을 최소화해 출혈이 적다. 심혈관 질환이 있거나 고령 환자 등도 큰 문제 없이 수술받을 수 있는 이유다. 이 센터장에게 매해 150명 정도가 수술받는데 40% 가까이는 70세 이상 고령 환자다.

그는 “환자랑 얘기해서 혼자 아파트 3, 4층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하면 수술해도 괜찮다고 한다. 90세 다된 할아버지도 거뜬히 받았다”고 말했다. 수술 사망률이 2.4% 정도 되는데 이 센터장이 집도한 수술에서 그간 문제가 생긴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이동현 이대목동병원 인공방광센터장이 15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방광을 절제하면 복막 아래쪽에 구멍이 생기면서 장이 골반 쪽으로 쏟아져 내리고 이 때문에 장 폐색·협착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센터장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장간막(腸間膜) 일부를 복막의 뒷부분 벽에 꿰매고 장을 매다는 식으로 수 백회 수술을 진행했고 합병증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이 센터장은 수술 때 항생제를 안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부터 지금껏 400~500건 정도를 무항생제 수술로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그는 “큰 수술시 감염을 우려해 융단폭격이라 할 정도로 항생제를 많이 쓰는데 이 경우 내성균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고가의 희귀한 항생제를 써야 해 자칫 환자를 놓칠 수도 있다”며 “복막과 혈관 등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 비뇨기과학회에서 이런 수술법을 발표해 세계 석학의 주목을 받았다.

방광암은 국내에서 10번째로 발병률이 높은 암이다. 중앙포토

내년 2월엔 이 센터장이 주축이 된 이대비뇨기병원이 문을 연다. 국내 첫 비뇨기전문병원이다. 이 센터장은 “나이들면 머리가 희고 주름지듯 방광도 노화해 배뇨장애가 많이 온다”며 “비뇨의학과에 대해 성병, 발기 부전 수술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데 믿고 맡기는 비뇨기과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비뇨기 관련 건진센터도 만들어 50, 60대 남성들이 전립선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진단, 검사받는 센터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전 수술법을 전국의 후배에게 많이 물려줘 국내에 소변 주머니를 차는 환자가 없도록 하고 싶다고도 이 센터장은 강조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