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에 묻혀버린 거리두기
위드 코로나 앞두고 주말 인파… 토요일 확진, 4주만에 2000명
입력 2021.11.01 03:00
핼러윈(Halloween·귀신 분장을 하고 즐기는 서양 축제)인 31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세계 음식 거리는 다닥다닥 붙어 걷는 사람들로 “걸어가는 게 아니라 뒷사람에게 밀려가는 느낌”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부분의 술집, 바(bar)는 만석(滿席)이라 가게 앞마다 40~60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직장인 김모(32)씨는 “핼러윈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 내일 연차를 쓰고 나왔다”며 “지난주 금요일부터 사람들이 몰렸다는데 오늘도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했다. 거리 입구에 설치된 소독제 분무 게이트를 통과하도록 구청 직원들이 유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우회하는 이도 많았다. 흡연, 음식물 섭취를 위해 사람들은 거리에서 수시로 마스크를 벗었다.
서울 이태원 거리는 인파로 가득 -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시행을 하루 앞둔 31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핼러윈을 맞아 파티를 즐기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다. 사흘 연속 이태원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과 외국인 가운데 일부는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았고, 음식점과 가게가 문을 닫은 오후 10시 이후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야외에서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장련성 기자
‘위드 코로나’ 방역 체계 1단계 시행을 하루 앞둔 31일, 이태원뿐 아니라 강남, 홍대 등 서울 도심 곳곳엔 핼러윈을 즐기려는 인파가 사흘째 이어졌다. 덕수궁, 경기도 용인 한국민속촌 등 전국 곳곳의 관광지에도 나들이객이 몰렸다.
31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30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2061명으로 4일 연속 2000명대 수치를 이어갔다. 검사 건수 감소로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토요일에 2000명 넘는 확진자가 나온 건 지난 2일(2085명) 이후 4주 만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자들은 항체가 떨어져 돌파 감염이 일어나고 있고, 날씨도 쌀쌀해지면서 바이러스가 퍼지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더 긴장감을 가져야 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미 무장해제가 돼 우려스럽다”고 했다.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소위 ‘메인 스트리트’로 불리는 세계 음식 거리는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파티장을 방불케 했다. 주점들은 거리를 향해 음악을 크게 틀었고 오징어 게임, 수퍼마리오, 유령 등의 복장을 한 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지하철 이태원역에서도 갖가지 복장을 한 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오후 6시쯤, 1번 출구 앞에는 얼굴과 목덜미, 팔 등에 상처·피 분장을 한 1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2030세대 젊은이였지만 어린아이,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코로나 때문에 2년 가까이 억눌렸던 사람들의 욕구가 ‘위드 코로나’ 시행을 앞두고 한꺼번에 분출된 듯한 모양새였다.
핼러윈인 31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 음식 거리에서 태국 전통 복장 차림을 한 여성들이 합장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날 이태원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오징어 게임’진행 요원 복장을 비롯해 각종 영화와 드라마 캐릭터 모습으로 분장했다. 거리 안 술집들은 오후 6시 무렵부터 손님들로 가득 차 가게 앞에 수십명씩 대기줄을 이뤘다. 방역 당국은 핼러윈을 계기로 확진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방역 수칙 위반자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2만원 안팎을 받고 귀신·유령 얼굴 분장을 해주는 노점들도 성황이었다.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노점을 찾은 신모(여·43)씨는 “2년 가까이 어린이날 같은 행사도 가지 않고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추억을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큰 맘 먹고 나왔다”며 “아이들이 분장하고 기뻐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지만, 아직 감염 걱정도 있는 만큼 30분 정도만 돌아보고 귀가하려고 한다”고 했다.
오후 8시쯤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졌지만,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귀가하는 대신 근처 카페·건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영업 종료 시간인 오후 10시가 되자 식당,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며 거리는 더 북적였다. 경찰은 호루라기를 불고 붉은 경광봉을 흔들며 시민들의 귀가를 유도했다.
이태원 상인들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핼러윈 분장 소품을 파는 노점상 유모(43)씨는 “우리 같은 길거리 가게뿐 아니라 식당에도 사람 몰리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 ‘위드 코로나’가 이제 실감이 난다”고 했다. 이태원동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이모(33)씨는 “어제오늘 유동 인구가 많아 매출이 2배 가까이 늘었다”면서도 “술집·식당이 만석인 걸 보니 작년 ‘이태원발 코로나 대유행’ 때처럼 모든 게 또 수포로 돌아갈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맹기훈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장은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이니 기대감을 보이는 상인도 많지만, 또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상권이 걷잡을 수 없이 파탄 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경찰과 지자체는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경찰청은 31일 “29~30일 이틀간 전국에서 81건, 총 1030명을 방역 수칙 위반으로 적발했다”고 밝혔다. 밤 10시 영업 제한 지침을 어기고 영업을 이어간 이태원 클럽과 홍대의 음식점·유흥 주점 등이 적발됐다.
‘위드 코로나’ 방역 체계 1단계는 1일 오전 5시부터 시행된다. 유흥 시설을 제외한 다중 이용 시설은 24시간 제한 없이 운영이 가능해졌다. 사적 모임 제한 인원은 접종자·비접종자 구분 없이 수도권은 10명, 비수도권은 12명까지 늘어난다. 다만 음식물 섭취 시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식당·카페에서 미접종자는 4명까지만 가능하다. 접종 완료자 또는 PCR 음성(48시간 이내)인 사람만 출입을 허용하는 접종 증명·음성 확인제는 유흥 시설·노래 연습장·실내 체육 시설·목욕장업·경마장과 카지노 등 5개 업종에 적용된다. 다만 초반 1주(실내 체육 시설은 2주) 동안은 홍보 등을 위한 계도 기간으로 운영된다. 각종 행사·집회는 접종 완료자·미접종자 구분 없이 99인까지 가능하고 접종 완료자만 참여하면 499명까지 가능하다.
방역 당국은 앞서 “단계적 일상 회복 전환에 따른 개인 간 접촉 증가, 동절기 요인, 연말연시 모임 증가로 확진자가 최대 4000~50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 체계 여력이 위험한 수준이 될 경우에는 일상 회복의 과정을 중단하고 강력한 비상 조치 계획을 발동해야 한다”며 “(일상 회복을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일상 속의 방역 실천에 더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김민기 기자
조선일보 김민기입니다.
김동현 기자
Ease is a greater threat to progress than hardship.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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