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전시회에 갔어요] 냄새 맡고, 만지고 … 오감으로 음악·미술 감상하죠

최만섭 2021. 8. 9. 05:12

[전시회에 갔어요] 냄새 맡고, 만지고 … 오감으로 음악·미술 감상하죠

입력 : 2021.08.09 03:30

비욘더로드

 /고운호 기자·비욘더로드

미술관에 가면 사람들은 조용한 가운데 작품 앞에 서서 들여다보고,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음악 연주회에서 관객들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있다가 한 곡이 끝나면 박수를 치고 다시 다음 곡을 듣습니다. 다른 요인들에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미술과 음악을 순수하게 그 자체로만 감상하는 방식인데요. 혼자 차분히 음미하고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같은 전통적인 감상법과는 다르게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전시도 있습니다. 오늘은 체험형 전시 중 하나인 '비욘더로드(Beyond the Road)'를 소개할게요. '비욘더로드'는 현대미술의 유행을 선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2019년 선보이면서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은 전시예요. 지난달 23일 비욘더로드가 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에 상륙했는데요. 오는 11월 28일까지 여의도 더현대 서울 6층 전시장 ALT1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음악과 미술은 하나래요

비욘더로드는 음악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몽환적 음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 가수 제임스 라벨의 앨범 '더 로드'에서 유래했어요. 앨범에 수록된 노래 제목과 가사, 음악적 분위기에서 영감을 받아 공간을 연출한 것인데요. 제임스 라벨은 "미술과 음악은 음과 양처럼 하나"라고 말했어요. 그의 말처럼 비욘더로드는 미술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고,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전시장에 온 사람들은 음악과 미술을 시각·청각·후각·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들을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몸의 감각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공포체험관에 온 것 같아요

전시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먼저 그라피티(Graffiti·낙서그림)가 가득 그려진 낡은 버스정류장<사진1>이 보입니다. 옆에는 30년 전쯤에 흔히 볼 수 있던 공중전화기가 있지요. 밤이 늦어 집으로 가려고 할 때 초조한 마음이 드는 이 버스정류장은 잠시 멈춘 전 세계의 '여정'을 의미해요. 조금 걸어볼까요? 양 벽면과 천장까지 낙서로 빽빽한 터널이 나옵니다. 글자들이 야광처럼 빛을 내며 이리로 오라고 유혹하는 듯합니다<사진2>.


푸른 터널을 건너는 사이에 혹시 이승세계에서 저승세계로 넘어온 것일까요? 음악을 따라 걸으면 커다란 방이 나오고 그 안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탁자가 놓여 있어요<사진3>. 여럿이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갔는지 탁자 위의 촛대에 촛농이 녹아내린 흔적이 남아있어요. 여기서 라벨의 '위령곡(Requiem)'을 듣고 있노라면,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 옆에 있는 것 같은 서늘한 기분이 들 거예요. 마치 공포체험관에 들어간 듯한 착각도 들지요.



33개 공간에서 오감으로 느껴요

바깥으로 나가면 갑작스레 색다른 공간이 펼쳐져요. 옛 유럽의 수도원 같은 통로가 나오는데요. 어둠 속에서 파랑과 빨강, 보라와 초록으로 배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복도를 따라 몇 걸음 더 가면 교회와 마주치게 돼요<사진4>. 그 안에서는 라벨의 '십자가 처형(Crucifixion)' '예언자(A Prophet)', 그리고 낮과 밤(Days and Nights)'이 흘러나옵니다. 장엄한 음악과 함께 교회 중앙의 커다란 화면에서는 물결이 움직이는 영상이 펼쳐집니다<사진5>. 단순한 물결의 모습이 아니라 얼핏 고통스러운 얼굴 같아 보이기도 하고 또 불새의 날갯짓 같기도 해요. 그 눈부신 형상은 바닥의 물에 비추어져 전체가 멋진 광경을 이룹니다.


태어날 때부터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옛 유럽 사람들은 교회에 가는 것이 곧 예술을 체험하러 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최고의 예술가들이 만든 찬란한 벽화와 조각으로 꾸며져 있었고, 가슴 뭉클한 성서의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연주나 성가까지 감상할 수 있었지요.

33개 공간에 스피커 99개와 특수 조명 148개가 만들어 낸 오감의 전시장으로 떠나보세요. 전시장의 아치형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관람자가 아니라 오묘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거니는 모험의 주인공으로 바뀌어 있을 거예요.


[종합예술]

음악과 미술·이야기가 총동원되는 예술을 '종합예술(composite arts)'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가 이 명칭을 처음 썼는데요. 그는 1849년에 쓴 글에서 "시와 음악, 그리고 미술과 건축이 따로 분리돼 있으면 전체적인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고 했어요. 종합예술의 역사는 노래, 시, 그리고 춤이 함께 어우러졌던 원시신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종합예술은 전체적인 주제를 아우르며 총괄 지시하는 감독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비욘더로드는 전시기획자 스티븐 도비와 콜린 나이팅게일이 음악, 이야기, 미술, 그리고 여러 기술을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제작·감독으로 협업했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