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촛불 정부’에서 부패는 왜 사라지지 않았나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한국, 한국인' 저자
입력 2021.03.22 03:20 | 수정 2021.03.22 03:20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LH 스캔들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보며 한 친구를 떠올렸다. 친척과 종업원 이름으로 된 재산과 은행 계좌를 가진 부잣집의 사위가 된 친구였다. 때로는 가난한 친척들이 차명 계좌에서 돈을 빼내거나 재산을 팔아 챙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일을 보고, 그는 자신의 정직성을 돌아봤다.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열린 'LH 부동산 투기에 분노한 청년들 모여라 긴급 촛불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와 청년진보당 등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21.3.15/연합뉴스
“나도 똑같은 일을 할까 묻게 되더라고. 만약 내 돈이 아닌 3억원을 인출할 수 있다면 난 그걸 가질까? 완전히 합법적일 테고, 아무도 다치지는 않을 거야. 사실 실제 주인은 큰 부자라서 돈이 없어진 것조차 모를 수도 있어.” 하지만 그는 부정직한 차명제 탓을 하며 개인의 부정직을 정당화해선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자신과 처가 식구들 사이에, 또 교수였던 자신을 우러러보는 젊은이들과 맺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죄책감의 장벽을 쌓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의 바탕에는 어떤 ‘완전 범죄’에도 단 한 분의 증인, 신은 계시다는 더 깊은 확신이 깔려 있었다. 그는 신과 사회, 자기 자신 앞에서 청렴을 지키는 일이 동탄의 새 아파트나 6년 치 미국 학비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부 정보를 활용해 신도시 개발 예정지 땅을 사들인 LH 직원들은 왜 그랬을까? 청렴하지 못한 걸까? 양심이 없는 걸까? 우리 모두 특권을 남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아는데, 왜 이런 부패는 계속될까? 법이 모호하거나 처벌이 가벼워서? 일부의 부도덕 때문이거나, 우리의 도덕률이 혼란스럽기 때문일까?
답이 무엇이든, 우리는 정부가 뭔가 해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문제 해결에 젬병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기부터 민간과 공공 부문에서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했다. 촛불 시위로 세워진 이 정부는 스스로를 부패와 벌이는 전쟁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전사로 내세웠다.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그 이후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들의 진정성 역시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 모두 통치 초기에는 부패에 맞섰다.
한국이 차근차근 나아진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인지는 의문이다. 정치인은 부패를 무기처럼 쓴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데 쓸 수 있다면 OK, 날 공격하는 데 쓰인다면 숨겨야지’ 하는 식이다. 그들에게 부패 개선은 정치적 유불리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다. 부패 척결 캠페인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불법 부실 건축의 결과로 1994년 성수대교,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음을 기억할 것이다. 일상의 구조물이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불안이 얼마나 컸나. 하지만 LH 스캔들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런 불안을 갖고 있다. 법무장관이 정의로운 사람인지, 세무 공무원이 정직하게 세금을 다루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동료 시민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공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변의 많은 부패가 우리 특유의 도덕적 선(善) 관념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 관료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집안이 부유한 이들은 청렴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진 권한을 이용해 돈을 벌어야 했다. 술 마시고 도박하려고? 그렇지 않다. 아이들을 먹이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는 대가족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속 사람들을 도와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들에겐 그것이 ‘국가’였다. 대가족과 속한 집단이 그들이 짊어진 도덕적 의무의 수혜자였다.
부패의 근원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 세대의 도덕적 의무는 이제 사라졌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교육해야 한다. 가족은 과거에 비해 훨씬 작고, 이제 내가 돈을 번다고 친척을 책임질 필요도 없다. ‘국가’는 이제 대가족이 아닌 나라 전체다. 현대 대한민국은 자부심을 가져 마땅한 나라이다. 후손들은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고난을 겪은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한국은 위대한 나라이며, 이 나라의 노년층은 한국 역사의 진정한 영웅 세대다.
우리는 지금 예전처럼 가족이 아니라, 동료 시민에게 도덕적으로 결속돼 있다. 비록 그들 대부분이 완전한 타인이라 해도 그렇다. 이 복잡한 현실을 존중하는 방법은 우리 자신의 청렴성을 스스로 진단하고, 서로 속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도덕적 잣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한국, 한국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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