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사랑한 우리말] [37] 우수리
[조선일보 100년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김철희·54세·경북 상주시
입력 2020.12.30 03:00
‘거리 두기’로 사람과 사람 사이 정(情)이 말라간다. 당장 먹고살기가 막막하니 곳곳에서 죽겠다는 아우성이 넘쳐난다. 시장에서 50년 손칼국수를 팔아온 늙은 상인은 그저 사람의 그림자가 그립다고 말한다. 장사가 되고 안 되고는 나중의 일, 오가는 사람 속에서는 어떻게든 비비적거리면 살아낸다고 절규가 밴 한숨을 내쉰다. 어쩌다 찾아온 손님에게 아낌없이 듬뿍 담아주는 넉넉함에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이젠 그마저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됐다.
‘우수리’란 말에서는 사람 살아가는 맛이 느껴진다. ‘물건 값을 치르고 남은 잔돈’이란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거스름돈’을 말한다. 준말로는 ‘우수’라 한다. 어떤 이는 셈을 다 치른 뒤 장사치가 잔돈을 건네면 “수고가 많다”며 받지 않기도 한다. 택시에서 내릴 때 몇백원의 잔돈이 그러하다.
연말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이 한창인 요즈음이다. 너나없이 십시일반 몇 푼씩 기부하는 모습에서 그래도 아직 일말의 정이 남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아는 가게에선 계산대에 돼지 저금통을 놓고 손님들이 자율적으로 거스름돈을 넣도록 하고 있다. 주머니에 잔돈을 넣고 다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취향을 기부로 연계 지은 좋은 아이디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터. 정성은 하나씩 모일 때 그 의미가 더 빛이 나는 법이다.
그 옛날 아버지는 곧잘 내게 수퍼에 가서 물건 따위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물건 값을 치르고 남은 돈을 드리려고 하면 “됐다, 냅둬라. 나중에 공책 사라” 하셨다. 당신이 떠나고 안 계신 지금 생각해보면 이 또한 용돈을 챙겨주기 위함이란 생각에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젠 카드가 화폐의 자리를 차고앉아 경제의 주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대학생 아들과 딸에게 용돈을 자동이체로 주는 세상이니 주고받음에 감사와 사랑이 싹틀 리 만무하다.
‘우수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편리함이 가져다준 건조함이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뒤숭숭한 이때 어렵고 힘든 이웃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꼭 가진 게 많다고 남을 돕는 건 아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는 ‘거리 두기’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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