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복지病 좌파가 수술, 개혁 두려워말라”
[ALC] 좌파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前총리
입력 2020.11.12 00:06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강력한 남성 리더보다 여성 리더의 대처가 빛나는 이유가 뭘까요? 전문가 그룹, 소수·야당 의견을 무시하고 포퓰리즘으로 밀어붙이는 ‘스트롱맨’ 리더십이 역효과만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헬레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전 총리는 11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해“이 자리에 오기까지 모든 유형의 성 차별을 다 겪어봤다”며 여성 지도자로서 살아온 고충을 털어놨다. 덴마크 첫 여성 총리인 그는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잡으며 덴마크 복지병을 치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PA 연합뉴스
덴마크 최초 여성 총리인 헬레 토르닝슈미트(54) 전 총리는 11일 제11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코로나 이후에는 다양성을 가능케 하는 여성 리더십이 훨씬 중요해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화상으로 열린 ALC에서 토르닝슈미트 전 총리는 캐나다 유일 여성 총리인 킴 캠벨(73) 전 총리와 ‘여성 리더십 100년’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진행은 아리랑국제방송 사장을 지낸 손지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토르닝슈미트 전 총리는 이날 2012년 이후 세계 정치를 휩쓸고 있는 ‘스트롱맨 (strongman·강성 지도자)’ 현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 극복에 참혹한 실패를 겪었다”며 “반면 차이잉원 대만 총통,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응은 선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만 곁에 두고 의사 결정을 내리면 건강하지 못한 집단적 사고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며 “그룹 사고를 탈피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여성 지도자가 활약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도자의 가치관·신념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다른 의견에는 귀를 닫는 스트롱맨들의 ‘확증 편향’ 성향이 코로나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1년 좌파 연정을 이끌고 덴마크 총리에 당선된 토르닝슈미트는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헬레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백만장자들에 대한 세금을 올리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됐지만, 덴마크를 경제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정책 노선을 과감하게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2010년대 초반 덴마크에서는 직업을 구하지 않고 복지 수당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 ‘게으른 로베르트(Lazy Robert)’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상황이었다. 토르닝슈미트 전 총리는 재임 기간(2011~2015년) 동안 법인세를 삭감하고, 연금 지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올렸으며, 실업 급여 지급 기간을 4년에서 2년으로 축소했다.
당시 그가 “고용 정책을 샅샅이 살펴 ‘게으른 로베르트’들에 대한 수당 지급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했을 때, 지지 기반이었던 좌파 세력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정부는 포퓰리즘이 아닌 옳은 방법을 찾고 있다. 개혁은 필요하고,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덴마크는 복지 수준은 높으면서도 국가 채무 비율은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속가능한 복지’를 유지하고 있다. 토르닝슈미트 전 총리 집권 해 46.1%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19년 현재 33.2%로 낮아졌다.
토르닝슈미트 전 총리는 이날 ALC에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이자 흑인 부통령으로 당선된 카멀라 해리스를 언급하며 “싸울 사람을 잘 골라서 싸우되,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총리 재직 당시 명품 패션으로 ‘구찌(Gucci) 헬레’라는 별명이 붙었던 사연을 스스럼없이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모든 유형의 성 차별을 다 겪어봤다”며 “성희롱은 물론 머리 모양·옷차림·몸가짐에 대해서도 남성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고 했다.
이에 캠벨 전 총리는 “나 역시 1993년 총리 시절 늘 치마 정장과 스타킹을 신을 수밖에 없었고, 남자보다 두 배는 더 잘해야 한다는 얘기를 계속 들었다”며 “편안한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새로운 여성 지도자상을 보여주는 카멀라 해리스의 에너지가 아름답고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세계에서 ‘여성 최초’ 기록을 써온 두 전직 여성 총리는 이날 ALC 대담을 이렇게 외치며 마무리했다. “Girls, Go for it!”(소녀들이여, 한번 해봐!)
한경진 기자 편집국 산업1부 기자
조선일보 유통팀 기자. 먹고, 입고, 사고, 마시고, 여행하는 일상 속 경제 뉴스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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