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상처 받는 말 들었다면,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겨라”

최만섭 2022. 8. 2. 05:25

“상처 받는 말 들었다면,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겨라”

중앙일보

입력 2022.08.01 06:00

업데이트 2022.08.0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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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가장 혼란스러웠던 순간은 그동안 몰랐던 내 안의 폭력성을 마주할 때였습니다. 인간의 성장을 지척에서 바라보는 삶은 경이로웠지만, 그만한 희생이 뒤따랐죠. 몸과 마음이 고단한 날이면 배우자는 물론이고 기저귀를 찬 아기에게도 언성을 높이게 되더군요. ‘비폭력대화’라는 제목에 마음이 이끌린 건 그래서입니다. 양육자가 되고 제 인격의 얕은 한계를 실감하는 날이 많았거든요.

책의 저자 ‘마셜B. 로젠버그’는 심리학자이자 갈등중재자입니다. 그는 평생 폭력의 한가운데서 살았어요. 다섯 살 무렵의 이민이 그 시작입니다. 로젠버그 가족이 이주한 곳은 인종차별 폭동이 심했던 미국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 지역이었거든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때리고, 죽이는 모습을 본 그는 두 가지 질문에 맞닥뜨립니다.

‘인간은 왜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여전히 인간미를 발휘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 화두를 풀기 위해 그는 심리학자가 됩니다. 이후 30여년간 르완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는 분쟁지역을 오가며 갈등을 중재하는 활동을 하죠. 여기서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이하 NVC)가 탄생해요. 심각한 갈등으로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말하는 방법에 달렸다는 사실을 알게된 겁니다. 깨달음을 얻은 로젠버그는 1984년, 비영리 국제평화기구 비폭력대화센터를 설립하고 전 세계에서 비폭력대화를 가르칩니다. 이 책은 그가 창안한 비폭력대화의 교과서죠.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다양한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로젠버그는 한 가지 결론을 얻었어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고, 누구나 타인의 삶에 기여할 때 기쁨을 느낀다는 거죠. 하지만 사회는 소수의 지배계층 아래에서 다수가 복종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스템 안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폭력에 무뎌집니다. 사회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나쁘다고 판단해버리거나, 특정 집단을 혐오하거나, 원하는 바를 굴복시켜서 이뤄내는 태도가 대표적이죠.

비폭력대화의 목적은 인간의 본성을 되찾는 데 있습니다. 의무와 책임, 두려움, 보상 등에 의한 동기가 아니라 ‘기꺼이 주고 싶은 마음’으로 타인과 연결되는 게 이 대화의 핵심이죠.이번 글에서는 비폭력대화의 4가지 요소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의 상세한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양육자의 일상과 가까운 예문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으니 꼭 실천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비폭력대화의 첫 번째 요소는 평가와 관찰을 구분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자기 생각을 뒤섞어 말하곤 해요. 아이가 실수했을 때 “왜 이렇게 덤벙거리니”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말에 관찰과 평가를 뒤섞으면 그걸 듣는 상대방은 비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관찰한 바를 표현할 때는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죠.다음의 예를 보면 ‘관찰’과 ‘평가가 섞인 관찰’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평가가 섞인 관찰: 상우가 어제 ‘이유 없이’ 내게 화를 냈다.

관찰: 상우가 나에게 화났다고 말했다/ 상우가 주먹으로 탁자를 쳤다.

평가가 섞인 관찰: 동생을 도와주다니 ‘정말 착한 아이’구나.

관찰: 동생의 가방을 대신 들어줬구나.

여기서 기억하면 좋은 팁이 있습니다.‘언제나, 한 번도, 결코, ~한 적이 없다’ 등의 어구들은 관찰과 평가가 섞인 말을 과장할 때 자주 쓰인다는 겁니다. 자기 뜻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어구를 사용하면 내 의견이 가닿지 않고, 상대방에게 변명하고 싶은 욕구만 일으키니 주의해야 해요.

평가: 너는 내가 하라고 말하는 건 좀처럼 하지 않는 구나.

관찰: 너는 내가 제안한 3가지를 다 하기 싫다고 말했어.

평가: 우리 아이는 이를 자주 닦지 않는다.

관찰: 우리 아이는 이번 주에 이를 2번 안 닦고 잤다.

두 번째 요소는 ‘느낌’을 말하는 겁니다.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 보이면 상대에게 저항감을 일으키지 않고 뜻하는 바를 전할 수 있어요. 느낌을 말하는 건 얼핏 쉬워 보이는데요. 막상 시도해보면 우리가 느낌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인색했는지 깨닫게 될 겁니다. 말로는 “느낀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느낌을 표현하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연습을 한번 해볼까요? 아래의 예문에서 느낌을 표현한 말이 무엇인지 맞춰보세요.
다음 중 느낌을 표현한 말은 무엇일까요?
1.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하지 않아서 무시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2. 나는 쓸모가 없는 것 같아.
3. 네가 떠난다니 슬프다.
4. 나는 엄마로서 부족하다고 느낀다.
5. 빨리 하라는 말을 들으면 조급해져요.

어떠셨나요? 정답은 3번과 5번이에요. ‘슬프다’와 ‘조급하다’가 느낌에 대한 표현이죠.비폭력대화에서는 ‘느낌을 나타내는 말’과 ‘생각을 나타내는 말’을 구분하는 게 중요해요. 생각은 평가와 다름없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느낀다’는 말을 ‘생각한다’로 바꿔보면 좀 더 명확한 구분이 가능할 거예요.진짜 느낌은 생각으로 대체할 수 없거든요. 위에서 생각을 느낌이라고 착각한 예문을 바꿔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밑줄 친 단어가 느낌을 나타내는 어휘입니다.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하지 않아서 무시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지 않을 때 나는 섭섭하다.
2. 나는 쓸모가 없는 것 같아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슬프다.
3. 나는 엄마로서 부족하다고 느낀다 ⇨ 나는 엄마로서 좌절감⋅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엄마로서 나 자신이 실망스럽다.

로젠버그는 우리가 느낌을 표현하는 데 서툰 게 당연하다고 말해요. 어린 시절부터 내적인 동기보다 사회가 올바르다고 여기는 기준에 맞춰 움직이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폭력대화를 연습하는 건 개인으로서 나의 자유를 되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면 느낌을 표현하는 어휘를 많이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일상에서 느낌 어휘를 말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단순히 “좋다, 싫다”라는 표현 대신 “설렌다, 기쁘다, 사랑스럽다, 갑갑하다, 언짢다” 등 구체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낱말을 사용하는 겁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으로는 듣는 사람에게 우리가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전달하기가 어렵거든요.

세 번째 요소는 느낌이 생기게 된 근원인 ‘욕구’를 의식하는 일입니다. 어떤 느낌이든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충족되지 못한 나의 욕구와 기대’가 숨어 있거든요. 그걸 알아차리는 거예요. 비폭력대화를 연습하다 보면 알게 돼요. 타인의 말과 행동은 내 느낌을 ‘자극’할 수 있지만, 느낌의 ‘원인’은 아니라는 걸요. 느낌이 일어난 것은 충족되지 못한 나의 욕구 때문입니다. 숨은 욕구를 인식하는 건, 내 느낌에 책임을 지는 일이기도 하죠. 아래의 예문을 볼까요.

A: “음식을 남기다니, 걱정스럽구나”

B: “엄마·아빠는 네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에 네가 음식을 남기면 걱정스러워”

A와 B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A는 ‘걱정’의 책임을 음식을 남긴 아이에게 지우고 있지만, B는 걱정의 이유를 ‘아이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원하는’ 자기 욕구에서 찾고 있습니다.로젠버그는 자기 느낌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느낌이 일어난 근원에 있는 욕구를 인식하지 않고 에둘러서 말하면 상대방은 그 말을 비판으로 받아들이고 자기방어에 나서고 싶어지거든요.

 자기 느낌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 그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죄책감을 행동의 동기로 이용할 때 쓰는 기본 심리 과정이다 p.102.  

 

때로는 타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기도 하죠.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죄책감을 행동의 동기로 이용하는 대화가 흔하게 일어납니다. 만약 양육자가 “네 성적이 떨어져서 엄마와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 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면 좋은 일일까요? 로젠버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아이의 가슴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니라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느낌’과 ‘욕구’를 직접 연결해 말할수록 상대방은 나에게 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나는 ~이 중요하기 때문에(~했으면 하기 때문에) ~을 느낀다”는 공식을 기억했다가 대입해보면 훨씬 쉬워요. 다음의 예문처럼요.

1. 이번 주말에 가족여행을 가려고 오랫동안 기다려왔기 때문에, 팀장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화가 나요.
2. 저녁 식사는 함께 먹었으면 했는데, 네가 친구와 노느라 늦게 들어와서 섭섭하구나.
3. 네가 한 노력이 인정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네가 상을 받았을 때 엄마아빠는 정말 기뻤어.

어떻게 부탁해야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할 수 있을까요? 로젠버그는 “원하는 것을 부탁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을 표현하라”고 말합니다.‘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을 부탁하면 상대에게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고,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부탁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거든요. 자기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말할수록 상대가 그것을 받아줄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부정적인 부탁(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당신이 일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긍정적인 부탁(무언가를 하는 것): 일주일에 하루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모호한 부탁: 네가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구체적인 부탁: 네가 자신감을 기를 수 있도록 ‘자신감 육성 캠프’에 참가했으면 해.

부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반응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상대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그를 비난하거나 미워하면 부탁이 아니라 강요가 됩니다. 

 강요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보이지 않는다. 복종 아니면 반항이다. 어느 경우든 부탁을 한 사람은 강압적으로 비치고, 듣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 부탁에 응하기 어려워진다. p.145 

비폭력대화는 상대가 스스로 원해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임을 기억하세요.자신의 부탁이 받아들여졌을 때만 비폭력대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진정한 목적에서 벗어나 비폭력대화를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일 뿐입니다.

비폭력대화는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 말하기이자, 나를 지키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기도 해요.나에게 상처가 될만한 폭력적 언사를 들을 때도, 비폭력대화의 기술을 적용하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죠.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는 다음의 4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① 비난과 비판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누군가 당신에게 “정말 이기적이군요”라고 말했을 때,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구나”라고 반응하는 겁니다. 이 선택은 타인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해서 나를 비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어요.

②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 비난하기  
누군가 당신에게 “정말 이기적이군요”라고 했을 때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어요. 진짜 이기적인 사람은 당신이에요”라고 반박하는 겁니다. 얼핏 속이 후련해보이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 마음 안에는 분노가 생깁니다.

③ 자신의 느낌과 욕구에 주목하기
상대의 말을 들었을 때 내면에 피어오른 느낌과 욕구를 인식하고, 그걸 표현하는 거예요. “당신이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느낌). 왜냐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내가 얼마나 신경쓰고 노력했는지 인정받고 싶었거든요(욕구)”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스스로도 내가 어떤 욕구 때문에 마음이 아픈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④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에 불을 비추기  
상대방은 왜 당신에게 이기적이라는 말을 했을까요? 그 표현 아래에 자리한 욕구를 찾아보는 겁니다. 예컨대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죠. “당신이 조금 더 배려받기를 원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실망하셨어요?”라고요. 이 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진정한 욕구를 알게 되면 그를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위의 선택지에서 3번과 4번은 욕구에 주목하는 비폭력대화의 방식이에요.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 해석, 평가 등은 사실 자기 욕구를 돌려서 말하는 왜곡된 표현일 뿐입니다. 상대가 던진 말에 끙끙 앓으며 상처받을 필요가 없는 이유죠.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들렸던 모든 메시지 뒤에는, 자신들의 삶에 기여해 달라고 우리에게 호소하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의식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았다고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p.178 

비폭력대화는 단순한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게 하는 책입니다.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한 명의 존엄한 개인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거든요. 비폭력대화가 특히 좋았던 건 말하기뿐 아니라 듣기에도 의미 있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었어요.폭력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하는 상대를 만나도, 그가 욕구를 가진 유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관계에서 오는 고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생깁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이 무자비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무자비한 태도와 행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변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p.13

책에는 다양한 갈등상황에서 비폭력대화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다수 실려 있습니다. 특히 로젠버그가 여러 분쟁지역을 다니며 상처 난 마음을 비폭력대화로 어루만진 이야기들은 단 몇장의 글로 요약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이 있죠.

 

로젠버그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빼앗겨 분노하는 이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말 뒤에 숨은 욕구를 알아채고 공감해줍니다.단단히 걸어 잠겨있던 마음이 풀릴 때까지요. 그러자 수십 년의 싸움이 막을 내리고,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손을 맞잡죠.이 아름다운 치유의 과정을 보면 잊고 있던 진리가 하나 떠올라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니라 해님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책을 읽으며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첫걸음은 어쩌면 ‘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녀 양육을 넘어 평화로운 관계 맺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폭력대화〉의 일독을 권합니다.


성소영 객원기자 ssoy419@gmail.com, jung.sune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