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朝鮮칼럼 The Column] 경기 침체 두렵다고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포기할 순 없다

최만섭 2022. 7. 19. 05:18

[朝鮮칼럼 The Column] 경기 침체 두렵다고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포기할 순 없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2.07.19 03:20
 
 
 
 
 

초(超)인플레이션과 관련된 믿기 힘든 얘기는 도처에 있다. 멀리 가면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20년대 초 독일에서 발생한 초인플레이션을 들 수 있다. 현재는 박물관의 유물로 전락했지만 이때 발행한 50억짜리 마르크 지폐는 식료품과 난방용 석탄 구매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었다. 비교적 최근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 연 6000%가 넘는 악성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초토화되었던 브라질을 들 수 있다. 새로 주택을 장만한 후 도배지를 사러 갔다가 포기하고 지폐로 도배한 사진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최근엔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2008년과 2009년 물가 상승률이 무려 5000억%였다. 식료품을 사러 가면 짐바브웨이 달러가 100조 정도 필요했다. 택시를 타면 승하차하는 동안 요금이 바뀐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가 떠돌 정도였다.

계속되는 고물가에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까지 커지면서 소상공인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시내 재래시장의 상인들 모습./연합뉴스

짐바브웨에 버금가는 베네수엘라는 차베스와 마두로의 연속 실정으로 2019년 물가 상승률이 35만%였다. 인플레이션은 암세포와 같다. 완치 판정을 받아도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인플레이션이 암과 다른 점은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체가 인플레이션의 재발을 촉진하는 내생성 정도를 들 수 있다. 2019년 경제 순위 9위였던 브라질의 6월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1.89%로 유럽을 제외한 주요국 중 가장 높다. 짐바브웨는 191%, 베네수엘라는 167.15%다.

최근 어느 경제학자가 인플레이션이 100배가 되면 어떠냐고 주장해 화제가 된 적 있다. 실제 인플레이션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사례도 있다. 볼셰비키 혁명에 성공한 후 트로츠키 최측근으로 경제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21년 발간된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대의 화폐’라는 저술을 통해 대포나 소총, 기관총과 함께 ‘인민재정위원회의 기관총’ 즉 윤전기를 핵심 무기로 꼽았다. 무제한 화폐 발행을 통해 인위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함으로써 부르주아 중심의 기존 시장 체제를 배후에서 무너뜨리는 동시에 혁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결과는 참담했고 프레오브라젠스키 역시 인플레이션의 불균형을 일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빅스텝을 밟자 일각에서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비판적 여론이 일고 있다. 당연히 한은의 금리 인상은 여러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소비나 투자가 위축되는 만큼 경기 둔화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초인플레이션은 암과 같은 존재다. 그리고 그 처방약은 금리 인상 외에는 별다른 특효약이 없고 정부의 미시 정책들은 보조 치료제 역할에 그친다. 유일한 근본 치료제인 금리 인상은 특성상 항암 화학요법과 유사하다. 치료가 조기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치료 횟수가 늘어나면 구토나 탈모, 피부 발진과 같은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처럼 금리 인상 횟수가 늘어나고 장기화되면 경기 침체라는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인플레이션과 벌이는 전쟁은 시간 싸움이다. 부작용이 무서워 항암 치료를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이미 물가 상승률이 6%를 넘어선 상황에선 경기 침체가 무서워 금리 인상을 주저할 수는 없다. 인플레이션 유발이 공급 측에 있고 외부에서 전가되는 만큼 금리 인상의 약효가 떨어지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유일한 치료제다. 이에 따른 경기 둔화나 경기 침체는 완치 후 재정을 투입하든 통화 정책 정상화를 통해 극복하면 된다. 더군다나 작금의 물가 상승률 상당 부분은 수입 물가 상승에 기인하는 만큼 환율 관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한은의 금리 인상은 싫든 좋든 미국의 금리 인상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미국 금리가 우리 금리보다 높아지는 것까지는 허용하되 5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차이가 벌어지는 건 신중해야 한다. 주식뿐 아니라 국채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 유출되면서 환율이 더 높아지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를 넘어섰고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11%를 넘어섰다. 아직 인플레이션의 정점은 요원하다는 증빙이다. 이러한 고통의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한은은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 불안을 잠재우고 정부는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는 저소득 계층에 대한 지원을 포함, 부작용을 최소화할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