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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국가 개혁할까 국가 청소할까

최만섭 2022. 6. 18. 11:29

[강천석 칼럼] 국가 개혁할까 국가 청소할까

이념 지향 ‘문재인 청와대 정부’에서 국가 경쟁력 後退
진짜 개혁은 박수 대신 야유·삿대질 따르는 험한 길

입력 2022.06.18 03:20
 
 
 
 
 

윤석열 대통령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과 몇 마디 문답(問答)을 주고받는다. 대답 중엔 뉴스가 될 이야기도 있고 그냥 듣고 흘리면 그만인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우리 대통령 역사에 없던 모습이다. 전임자가 청와대 회의에서 A4 용지를 들고 읽어 내려가는 것만 봐서 그런지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후보 시절 말을 헛디뎌 휘청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아슬아슬했는데 무난하게 적응해나가는 것 같다.

이런 변화가 단순히 느낌 차원의 변화는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만일 매일 언론을 통해 자신을 노출했다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진상이 1년 9개월 만에 뒤집혀 밝혀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과 언론의 직접 대면(對面)은 대통령을 진실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대통령이 느끼는 부담감은 상당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나 영국 총리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신기한 느낌은 오래가지 않는다. 전쟁 승리도 오래 지도자 편을 들지 않는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1차 이라크 전쟁을 깔끔하게 매듭지은 아버지 부시는 얼마 안 가 선거에서 정권을 내줬다. 역시 대통령의 정면 승부는 국민을 얼마나 편하고 잘살게 해주었냐에 달려있다. 경제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져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병(甁)목’은 ‘병의 아가리 바로 아래쪽 잘록한 부분’을 가리킨다. 병의 몸통이 아무리 커도 병목이 좁거나 막혀 있으면 물이 흘러나오는 속도도 느리고 양도 적다. 개혁이란 나라의 크고 작은 병목을 찾아내 뚫고 넓혀주는 일이다. 한국의 병목은 정부다. 정부 가운데 가장 좁은 병목은 청와대였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정부’라고 불릴 만큼 청와대가 크고 힘이 셌다.

경제 관료 전부가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에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을 것이다. 진화(進化)는 강한 것, 옳은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 과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관료 환경은 살아남아야 할 자는 도태(淘汰)되고, 도태돼야 할 자는 살아남는 역행(逆行)이었다.

며칠 전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는 한국의 병목을 정확히 짚어냈다. 국가 경쟁력은 ‘부(富)를 키워 국민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국가의 역량(力量)’을 가리킨다. 이 발표에서 한국은 63국 가운데 27위를 했다. 이런 성적표에선 세계 몇 위보다는 인접해 있는 나라,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와의 비교가 더 의미가 있다. 독일을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 것보다 30여 유럽 국가 중 압도적 1위라고 하는 표현이 독일의 위상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한국과 반도체 기술·생산 경쟁을 벌이는 대만은 7위, 한국 상품의 최대 시장이면서 한국을 바짝 뒤쫓는 중국은 17위다.

 

과목(科目) 성적표를 보면 정부가 주체(主體)가 되거나 주도하는 모든 과목이 중간 이하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 재정 건전성·연금 재정 안전성, 기업가 정신, 노동자가 일할 동기부여, 조세(租稅) 정책·GDP 대비 공교육 비율 등등이다. ‘청와대 정부’였던 문 정부 5년 노동·공공·교육·연금 개혁을 외면한 결과다. 민주당은 선거로 탄핵(彈劾)받은 이 노선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병목을 뚫고 넓혀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숨을 쉰다. 문제는 국민들이 다른 분야 개혁은 찬성해도 자기 분야 개혁에는 맹렬하게 저항하리라는 점이다. 대통령은 현재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와 미래 세대(世代)에게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문 전 대통령은 주로 과거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우고 그렇게 얻은 지지도를 훈장이나 되는 듯 가슴에 달고 나갔다.

윤 대통령은 하루 종일 경제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옳은 방향이다. 경제 태풍이 불 땐 선장은 뱃머리를 지켜야 한다. 진짜 개혁 현장은 박수 대신 야유와 삿대질이 날아다니는 운동장이다.

문재인 정권 5년이 남긴 오물(汚物)을 청소하는 작업은 박수와 환호가 따른다. 지지자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피해 가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길은 문재인 시대 실패가 보여줬듯 입구(入口)만 포장돼 있고 그 끝이 늪인 수렁이다. 두 길을 동시에 걷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먼저 한 길을 걷다 다른 길로 바꿔 탈까. 대통령의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