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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경찰국가’ 전락한 홍콩

최만섭 2022. 5. 12. 05:03

[기자의 시각] ‘경찰국가’ 전락한 홍콩

입력 2022.05.12 03:00
 
 
 
 
 

지난 8일 홍콩 행정장관직에 경찰 출신 리자차오 전 정무사장(홍콩 정부 서열 2위)이 낙점됐다. 홍콩의 반중(反中) 정서가 격화한 2019년 경찰 수장인 보안국장으로 재임하며 민주화 운동 진압을 주도해 중국 지도부 눈에 든 그가 결국 최고 자리인 행정장관에 오른 것이다. 리자차오의 당선을 위해 중국은 지난해 선거법을 개정하고 행정장관 선거인단에 친중 인사 정원을 대폭 늘렸다. 통상 2명 이상 후보가 출마해 허울뿐인 경쟁이라도 했던 명분마저 버리고, 단독 입후보해 99% 득표율로 당선됐다.

지난 8일 홍콩 행정장관에 경찰 출신 리자차오 전 정무사장(홍콩 정부 서열 2위)이 당선됐다./로이터 연합뉴스

리자차오 당선으로 홍콩은 첫 경찰 출신 행정장관 시대를 맞이했다. 40년 넘는 공직 생활 동안 강력 범죄·공안 사범을 단속했을 뿐 경제·행정 분야 이력이 없는 리자차오를 세운 중국의 의도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홍콩에서 시민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이 이에 맞서 싸울 ‘스트롱맨’을 고른 것”이라고 했다.

친중 강경파였던 리자차오가 권좌에 앉음으로써, 홍콩은 ‘경찰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전체 이익이란 명분을 내세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리자차오는 반정부 시위 관련자 1만명, 민주 인사 170여 명을 체포하고 언론사를 줄폐간하게 만든 국가보안법 집행을 진두지휘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일국양제(一國兩制) 덕분에 그나마 자유를 누리던 홍콩 시민들은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하게 됐다. 2014년 민주화 운동 ‘우산 혁명’, 2019년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등을 이끌며 폭력에 항거한 20대 청년 조슈아 웡 같은 활동가는 다시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홍콩의 중국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리자차오는 최우선 공약으로 ‘홍콩판 국가보안법’ 강화를 내걸었다. 테러·국가 전복·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을 처벌하는 기존 홍콩보안법에 중국이 요구한 별도의 죄목들을 추가하겠다는 취지다. 영국 BBC는 “리자차오의 임명은 중국이 홍콩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했다.

조슈아 웡은 과거 ‘언프리 스피치(Unfree Speech)’란 저서에서 “홍콩은 신냉전 속 전체주의 강대국의 위협을 저지하거나, 적어도 속도를 줄이기 위한 제1방어선”이라고 했다. 국제사회는 지금 홍콩이라는 ‘제1방어선’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냉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음 타깃을 노린 공격이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홍콩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2019년, 시위대의 최후 주둔지였던 홍콩이공대 벽면에 쓰였다는 대자보가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경계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당신일 것이다(Be aware or be next).”

 

 

 
Ease is a greater threat to progress than hard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