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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스코프] 우크라이나 중립화 해법 ‘동상이몽’… 전쟁의 출구가 안 보인다

최만섭 2022. 4. 18. 05:06

[유로 스코프] 우크라이나 중립화 해법 ‘동상이몽’… 전쟁의 출구가 안 보인다

우크라 “나토 회원 준하는 무장 중립국”, 러 “비무장 완충 국가”
자국의 힘 없이 주변국 선의에 기댄 중립은 역사에 유례없어
어려울 때 누가 끝까지 도와줄 것인가? 동맹 외교가 중요한 이유

입력 2022.04.18 03:00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째로 접어들었지만 전쟁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푸틴이 예상했던 빠른 승리는 달성하기 어려워졌고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생각보다 강했다. 전쟁은 어느 한 쪽이 승리를 확신하거나 양측이 절망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 때까지 지속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느낄 때까지 잔혹하고 강한 위협을 계속하며 더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하려 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큰 전선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제재의 효과가 갈수록 치명적인 피해를 줄 것을 기대하며, 서방의 지원을 바탕으로 저항을 지속한다. 양측이 모두 미래에 대해 유리한 기대를 하는 과정에서 외교적 해법은 지속적으로 모색된다.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방안도 주요한 대안으로 논의된다.

우크라이나는 NATO(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유엔(UN) 상임이사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가 자국의 안전을 보장하기를 희망한다. 중립을 하더라도 NATO 회원국에 준하는 안전 보장이 수반되는 ‘무장 중립국’을 원한다. 그러나 서방은 집단 방위안에 부담을 느끼고, 러시아도 이에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의 기본 전략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다. 제한된 자체 군대만 보유하고 외국 군사기지가 없는 비무장 국가로 전환하며 소위 ‘탈나치화’로 저항 단체를 무력화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친러 정권을 수립해 완충 국가이자 실질적인 위성 국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신뢰가 부재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는 계속해서 무력 침공에 대한 불안을 가지게 되고, 친러 기조를 유지하는 한에서만 안전이 보장되는 제한적인 중립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강대국 경쟁에 있어서 중립화만큼 약소국에 매력적인 용어는 드물다. 원하지 않는 국제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자국의 정치적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립이 성립될 수 있는 조건은 극히 제한적이며, 중립이 지켜지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다. 지정학적 가치가 너무 높아도 어렵고, 지리적으로도 개방되어 있으면 중립을 지키기 더 어렵다. 중립화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동의하고 스스로를 구속해야 하는 다자 간 협정이다. 자신의 능력과 주변국의 의지가 결합되지 않으면 중립화 방안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과 기술적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중립화는 실패로 귀결되었고, 많은 평화협정은 무력화되었다.

유럽에는 일련의 중립국들이 존재한다. 핀란드는 1939년 소련과의 치열한 ‘겨울 전쟁,’ 뒤이은 ‘계속 전쟁’과 ‘라플란드 전쟁’을 거치고 나서 1948년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통해 주권과 독립을 보장받는 한편, NATO에 가입하지 않고 소련을 자극하지 않는 외교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개방경제에 확고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고, 파시키비와 케코넨 두 대통령의 역할을 통해 적극적 중립으로 외교적 역량을 강화해 왔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10월 연합국의 점령을 끝내는 대가로 중립을 선언했고,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외국 군사기지 유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스웨덴은 1814년부터 비동맹주의를 유지하고 1, 2차 세계대전 동안 군사적 중립을 지키는 정책을 고수했다. 스위스도 오랜 세월에 걸쳐 중립 정책을 진화시켜 오면서 금융과 국제 거래의 중심지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중립의 시대는 오히려 저물어가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장비 지원을 추진하고, 급격히 증가한 찬성 여론을 바탕으로 NATO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두 나라는 실제로 1995년 EU(유럽연합) 가입 이후 공동안보방위정책을 통해 NATO의 실질적인 파트너로 기능해 왔다. 스위스 역시 2014년과는 달리 국제법상 예외 상황을 적용하며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이 국가들이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하며 중립을 포기하면 우크라이나 중립화 해법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중립화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는 동상이몽의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중립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체 역량을 지니고 중립을 하는 것과 역량을 상실하고 중립의 지위를 갖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비동맹과 무동맹은 다르다. 우크라이나가 침묵을 지키며 위성국가처럼 되는 소극적 중립을 원하는 러시아와, 주권과 안보에 있어 적극적 중립을 통해 서방으로 걸어 나오기를 바라는 진영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 이상과 현실, 단기적 봉합과 중·장기적 위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평화협정이 갈 길은 험난하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합의할 수 있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최소공약수를 찾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모든 전쟁은 합의로 끝난다. 전쟁 자체는 일방적이지만 평화 구축에는 여러 주체가 동원된다. 적당한 선에서 봉합하고 손을 떼는 순간 평화의 기반은 다시 흔들리게 마련이다. 누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해 줄 것인가? 힘을 보태줄 수 있는 동맹과의 외교는 그래서 중요하다. 얼마 전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 대한민국 국회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급한 일도 아니고, 내가 아쉬울 때면 누군가가 당연히 피를 흘려줄 것이라 생각했다면 아직 한반도의 평화 구축은 요원하다. 평화, 반전, 중립의 가슴 뛰는 용어들은 막연한 이상론으로 흐를 때 가장 위험하다. 고종 황제 때 스위스와 벨기에를 모델로 했던 대한제국 중립화론은 열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립국화는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한다. 자신의 운명을 주변국의 선의에 기대면서 평화와 번영을 누린 경우는 역사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