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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제2도시 하르키우, 나치 공격 5개월 막아낸 스탈린그라드처럼 항전”

최만섭 2022. 3. 4. 04:51

우크라 “제2도시 하르키우, 나치 공격 5개월 막아낸 스탈린그라드처럼 항전”

입력 2022.03.03 21:08
 
 
 
 
 
2일 우크라이나 동부도시 하르키우 도심 광장이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받은 가운데 잔해가 널려 있다./AF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8일째인 3일(현지 시각) 동북부 요충 도시 하르키우를 둘러싼 양국의 공방전이 이번 전쟁의 흐름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하르키우의 방어선을 뚫으려 무차별 포격을 계속하자 우크라이나군은 결사 항전(決死抗戰) 의지로 맞서고 있다.

하르키우는 인구 140만명의 산업도시로, 우크라이나 동북 지방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개전 이후 매일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았으나 끈질기게 버텨내 ‘항전의 상징’으로 떠오른 곳이기도 하다. 전날 시내에 투입된 러시아군 공수부대가 외곽 지역 주력부대와 함께 우크라이나군을 양면에서 압박, 도시를 함락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고립된 러시아 공수부대가 시가전에서 상당한 인명 피해를 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러시아군의 포격이 계속되면서 하르키우 병원과 경찰서, 학교 3곳, 시의회, 국립대학 건물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하르키우시 당국은 2일 밤 “지난 24시간 동안 최소 21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군 공격으로 어린이 2명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직원 등 민간인 10여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1일 우크라이나 제2도시인 하르키우. 러시아의 공습으로 파괴된 승용차가 시청사앞 광장에 놓여 있다./AP 연합뉴스

 

이곳 시민과 우크라이나군은 임전무퇴(臨戰無退)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호르 테레코프 하르키우 시장은 “이곳은 주로 러시아어를 쓰는 도시였지만, 전쟁 발발 이후 시민들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일치단결해 굳건하게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대통령실 고문은 “하르키우는 2차 세계 대전 때 스탈린그라드(현재 볼고그라드)를 떠올리게 한다”며 “하르키우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1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한 파괴된 빌딩안에서 한 시민 방위군이 소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EPA 연합뉴스

 

스탈린그라드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연전연승을 저지하고 전쟁 흐름을 바꿔놓은 도시다. 나치 독일은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점령 후 모스크바까지 진격하려다 5개월여에 걸친 러시아의 결사 항전에 막혀 패퇴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등 추축국이 80만명 이상, 소련군 100만명 이상 등 총 200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영국 합동군 사령관 출신의 리처드 배런스 예비역 장성은 “하르키우가 함락되면 러시아의 중대한 군사적 승리가 될 것”이라며 “이는 수도 키이우(키예프) 전투에 임하는 양측 군대의 사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남부에서는 인구 30만의 물류 거점 도시인 헤르손이 러시아군 수중에 떨어졌다. 이호르 콜리카예프 헤르손 시장은 소셜미디어에서 “러시아군이 거리에 진입해 시의회 건물까지 들어왔다. 시내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외곽으로 밀려난 우크라이나군이 시가전을 벌이고 있지만, 러시아군에 완전히 제압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날 그는 “오늘 밤 우리가 러시아군을 막아내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남부 해안 도시 마리우폴은 러시아 육·해·공 3군의 공격을 동시에 받고 함락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저항에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내에는 전기와 수도, 난방이 끊겼고, 2일 하루 동안 130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서 대피하려는 시민들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는 우크라이나인을 집단 학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르손이 함락되면 러시아군은 드니프로 강을 따라 곳곳을 점령하면서 수도 키이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여기에 마리우폴까지 손에 넣으면 친러 반군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 지역부터 크름(크림)반도까지 러시아 점령지가 연결된다. 후방에 대한 걱정 없이 북부 지역을 향한 공세를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셈이다.

키이우 전투는 3일 일시적 소강상태를 보였다. 이날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벨라루스 브레스트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2차 협상이 열린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당초 이 회담은 지난 2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측 협상단이 일정을 계속 미루면서 이날 오후 5시에야 열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사전 협의 때문에 회담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현재 키이우에서는 러시아군의 폭격을 피해 시민 1만5000여 명이 지하철역에서 대피 생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키이우 지하철역은 구소련 시절 방공호를 겸해 지하 100m 지점에 건설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러시아의 민간인 지역 공격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비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통화에서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며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추가적인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알렉산드르 그루슈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자국 국영 TV 인터뷰에서 “나토의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은 매우 우려스러운 사안”이라며 “이로 인해 나토와 러시아 간에 ‘사고’가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위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