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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삶을 생각하기 위해 찾아야 할 곳

최만섭 2022. 1. 20. 04:57

[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삶을 생각하기 위해 찾아야 할 곳

입력 2022.01.20 03:00
 
 
 

 

생일이니 특별한 곳에 데려가 준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를 떠올리겠는가? 뤼크가 에밀리를 데려간 곳은 묘지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페르 라쉐즈 묘지. 수많은 무덤 중에서도 그가 발을 멈춘 곳은 발자크의 무덤이다. 좋아하는 사람이냐고 묻기도 전에 이렇게 말한다. “여긴 아무도 없어서 여기 앉길 좋아해요.” 나는 이걸 보다 웃음이 터졌다. 발자크는 한국에서만 인기가 없는 게 아니라 모국인 프랑스에서도 저런 대우를 받는가 싶어서. 이 장면을 넷플릭스 드라마인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보고 발자크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고, 읽은 게 몇 편 안 된다. 아는 것도 있다. 소설보다 유명한 그의 요란한 행적. 폭식과 폭음으로 유명하고, 일중독자라 커피를 30잔씩 마셨고, 돈을 매우 밝혔는데, 돈이 그의 편이었던 적은 없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인쇄소, 활자 제조업, 은 광산, 주식을 했지만 모두 망한다. 내내 야단스럽고 우스꽝스러웠다.

돈보다 애타게 가지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작위다. 귀족이 되는 것. 책에 ‘오노레 드 발자크’라고 박혀 있어서 귀족이 아닌가 싶지만, 아니다. 귀족으로 보이고 싶어서 주로 귀족 이름에 붙는 ‘de’를 자기 이름에 붙인 게 발자크라는 사람이다. 원래는 발자크(Balzac)도 아니고 ‘발사(Balssa)’가 그의 성인데 ‘발자크’가 더 귀족답다고 생각했는지 발자크로 바꿨다. ‘오노레 발사’를 ‘오노레 드 발자크’로 창조한 것이다. 발자크 평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허영심에서 스스로를 귀족으로 만든 이러한 행동 때문에 불친절한 다른 문인들의 비웃음을 받았다.”(안인희 옮김 ‘발자크 평전’ 푸른숲)

마음씨가 고운 츠바이크라서 ‘불친절한 다른 문인들’이라며 한정했지만, 친절하거나 문인이 아닌 사람도 저런 거라면 비웃을 만하지 않은가? 발자크는 살아서도, 그리고 죽어서도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리는 사람을 멋있게 생각하지, 귀족이 되기 위해 귀족 부인과 결혼하려는 사람을 멋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너무 안간힘을 썼다. 어찌어찌해서 백작 부인인 한스카 부인과 결혼하지만 5개월 만에 죽는다.

 

백작 부인을 모셔 오기 위해 ‘발자크궁’을 꾸미는 데 너무 힘을 빼지 않았나 싶다. 정말 멋없이 설계된, 크기만 한 건물을 사서 벽을 흰색과 금색으로 칠한 후 상아를 박고, 드레스덴과 나폴리에서 사들인 ‘예술품’으로 채운다. 문제는 하나도 멋이 없었다는 것. 거북이의 등딱지로 장식된 책장을 포함해 진짜와 가짜, 취향이 형편없는 것과 그나마 괜찮은 것으로 섞인 그 집에 대해 츠바이크는 “우리 눈으로 보면 추악한” 곳이라고 묘사한다. 나도 글자로만 봐도 힘든데, 백작 부인인 그녀께서 괜찮았을 리 없다.

이러니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극본가는 ‘인기가 없어서 한적한 곳’으로 발자크 무덤을 등장시켰을 것이다. 힙하지도 쿨하지도 않다. 그런 것과 가장 거리가 먼 게 발자크다. 그렇다면 어느 무덤이 인기가 있나? 뤼크는 쇼팽과 거트루드 스타인,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은 너무 붐빈다고 말한다. 쇼팽이 얼마나 인기 있는지는 매년 열리는 쇼팽 콩쿠르의 열기가 말해주지 않나 싶고. ‘파리를 생각한다’를 쓴 사회학자 정수복은 “프랑스가 좋아 프랑스 사람이 되어 프랑스에 살다 파리의 페르 라쉐즈 묘지에 묻힌 미국 출신 여성 작가”라고 거트루드 스타인을 설명한다. 오스카 와일드 무덤의 열기는 내가 갔을 때도 정말 대단했다. 오스카 와일드를 보러 온 사람들이 두고 간 선물과 ‘정표’로 넘실댔고, 시들지 않은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니 말이다.

묘지에 자주 오냐고 묻는 에밀리에게 뤼크는 말한다. “내 생일엔 꼭 와요. 내 생각에 삶을 생각하려면 죽음을 고찰해야 해요”라고. 또 덧붙인다. “우리는 삶은 여기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저기 아래에 있죠”라고. 그렇게 말하는 뤼크의 뒤로 발자크의 동상이 보였는데, 오노레와 발자크 사이에 ‘de’가 있었다. 아무리 멋이 없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고 해도 저 정도면 괜찮은 삶 아닌가 싶었다. 무명 시절의 발자크가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페르 라쉐즈에 오면 영감을 주는 이름들이 있다고 쓴 적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발자크도 현대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de’를 위풍당당한 본인의 두상 아래 포박해 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