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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부르카’라는 이름의 절망

최만섭 2021. 8. 20. 05:04

[기자의 시각] ‘부르카’라는 이름의 절망

황지윤 기자

입력 2021.08.20 03:00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항복을 받아낸 15일 이후 카불·칸다하르·헤라트 등 아프간 주요 도시 곳곳에선 부르카 상점이 뜻밖의 호황을 맞아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수요가 폭발하자 가격도 급등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해 200아프가니(약 3000원)였던 부르카 한 벌은 약 3000아프가니(약 4만5000원)까지 치솟아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탈레반의 여성 억압을 상징하는 부르카. 하늘색이나 녹색 천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리게 하는 부르카는 탈레반 정권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이 집 밖으로 나갈 때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이다./조선DB

부르카는 눈을 망사로 덮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복장이다.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니캅’,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차도르’, 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히잡’과 비교했을 때 가장 엄격하다. 탈레반은 25년 전 집권 당시 여성 교육 금지, 취업 활동 제한 등 극단적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면서 부르카 착용을 강제했다. 지금 젊은 여성 대부분은 부르카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부르카가 생존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됐다. 절망적인 복고 유행이다.

탈레반 대변인은 수도 카불을 장악하면서 “히잡을 쓴다면 여성은 학업이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혼자서 집 밖을 나가는 것도 허용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믿는 현지 여성은 거의 없다.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도 벌어졌다. 카불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22세 여성은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젊은 아프간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제까지 대학에서 코딩을 공부하던 똑똑한 여성들이 집 안에 숨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했다. 졸업을 두 달 앞둔 그는 “영원히 졸업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카불 시내를 취재하던 클라리사 워드 CNN 수석 특파원은 16일(현지 시각) 거리에서 검은 히잡을 두른 채 한 탈레반 무장단원을 인터뷰했다. 워드가 “여성들을 어떻게 보호할 생각인가. 학업과 일에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고 묻자 그는 “히잡을 쓴다면 가능하다”고 답한다. 워드는 자신이 쓴 히잡을 가리키며 “이런 걸 말하는 거냐”고 하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당신이 쓴 건 안 된다. 얼굴을 가려야 한다.” 워드는 이 남성이 자신에게 ‘장갑도 끼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결혼과 함께 부르카를 처음 입게 된 열다섯 소녀 마리암의 이야기를 썼다. “망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게 낯설었다. 주변을 볼 수 없게 되니 힘이 빠졌다. 주름진 천이 입을 질식시킬 것처럼 압박하는 게 싫었다.” 서술 시점은 1974년이다. 마리암은 남편에 의해 부르카를 강제당했고, 1996년 아프간 여성들은 탈레반에 의해 부르카를 강제당했다. 그리고 2021년 8월 이들은 다시 부르카를 만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