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응원 말라, 술 권유도 금지”… 모든 걸 규제하는 중국
팬클럽 규제해 콘텐츠 15만건 삭제
입력 2021.08.13 03:00
중국의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이달 초 아이돌 인터넷 팬클럽을 단속해 15만 건 이상의 글·사진·영상을 삭제하고 계정 4000여 개를 폐쇄, 일시 정지시켰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2일 보도했다. 또 중국 방송 감독기관인 국가광전총국은 이달 초부터 한 달간 인터넷 예능 프로에 대한 대대적인 감독·정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아이돌이 주인공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타깃이다.
이번 단속은 지난 5월 중국의 한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이 촉발한 ‘우유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제작사는 좋아하는 아이돌 연습생에게 팬들이 투표하게 하면서 협찬사 우유 제품에 투표를 위한 QR코드를 부착했다. 인터넷 팬클럽들이 투표를 위해 이 제품을 사들였고 20만개 넘는 우유가 버려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당국은 국가 기관을 총동원해 아이돌 숭배 문화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단속이 문화계 전반에 대한 정화(淨化)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 CNN방송은 “중국 정부는 아이돌 팬클럽이 인터넷 공간에서 화제를 독점하며 정부 메시지를 가리는 현상을 우려해왔다”고 했다.
중국 당국이 최근 기업과 사회, 개인을 향해 전례 없는 규제와 단속을 쏟아내고 있다. 예측이 어려운 데다 산업 전체를 붕괴시킬 정도로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속과 규제는 개인의 삶과 사회 풍속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10일 “업무상 필요하다고 술을 권하는 것은 병적인 가치관”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최근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의 여직원이 상사로부터 고객 접대 술자리에 참석하라는 강요를 받고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크게 논란이 되자 공산당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최고 사정 기관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해 기업의 회식, 접대가 사실상 금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주류 업체들 주가가 하루 2% 이상 떨어졌다.
중국 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올해 100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이 ‘일당 지배 체제’를 확고히 하며 현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기업들이 중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지만 공산당의 통제라는 ‘새장’을 벗어날 수 없으며 개인은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내외에 분명히 알리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년 10월쯤 열릴 예정인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최고지도부가 사회질서, 통제를 강조하면서 각 부처가 경쟁력으로 관련 대책을 내놓는 측면도 있다. 중국 문화여유부의 노래방 수록곡 검열·단속 방침과 검찰·경찰 등 10개 부서가 총동원된 인터넷 매체 단속 등이 이런 와중에 나왔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코로나 방역 장기화에 따른 불만,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라는 전례 없는 권력 독점에 대한 여론의 추이에 중국 최고지도부가 민감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의 단속으로 기업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예측 불능 상황에 처하게 됐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금융 기술) 기업인 앤트그룹의 상하이·홍콩 증시 상장을 불허한 것을 신호탄으로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해 잇따라 규제를 내놓고 있다.
중국의 우버라고 불리는 차량 호출 업체 디디추싱이 6월 말 미 증시에 상장하자 “국가 안보 우려가 있다”며 디디추싱의 중국 내 신규 회원 모집을 중단시켰다. 이어 증권 감독 당국은 중국 기업이 해외 증시에 상장할 때 안보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정책을 마련했다. 이 심사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상장 여부를 공산당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정부는 11일에도 보험 플랫폼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며 개인 정보 보호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난 7월 말 학교 교과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에 대해 ‘비영리 법인’으로 전환하라는 정책은 사실상 보습학원 폐지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후 대형 교육 기업들의 주가가 70~80% 이상 폭락했다. 직원들의 대량 해고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당국의 규제는 향후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행정부)은 11일 공동 발표한 ‘법치 정부 건설 실시 요강(2021~2025)’에서 “반독점 관련 법 집행을 강화·개선해야 한다”며 “공정 경쟁을 위한 심사 제도와 강력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5년 단위로 당정이 발표하는 요강에 ‘반독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며 기업에 대한 당국의 압박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19년부터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중국을 전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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