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률 1~2%p 올리는데 2주… 바이든 “미국의 비극”
美·佛, 백신 남아도는데 왜 접종률 정체 상태?
입력 2021.08.09 03:00
(파리 AP=연합뉴스) 7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시청 앞에 모인 시위대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규제 조치와 백신 접종 증명서인 그린 패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오후(현지 시각) 지중해에 접한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툴롱의 중심가. 시민 1만9000명이 행진하며 “자유를 달라” “마크롱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9일부터 백신을 맞지 않으면 식당·카페 입장을 막겠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에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툴롱은 지난달 마크롱을 나치 제복을 입은 아돌프 히틀러로 그려놓은 대형 광고판이 등장하며 백신 반대 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이날 툴롱과 파리 등 프랑스 전역 198곳에서 23만7000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1회 이상 백신을 맞은 성인 비율이 65.1%다. 백신 공급이 충분한데도 지난 5월부터 백신 반대 정서에 부딪혀 속도가 느려졌다. 접종률이 30%에서 40%가 되기까지 18일 걸렸는데, 40%에서 50%가 되기까지 26일이 걸리는 등 눈에 띄게 속도가 둔화됐다.
백신 접종 의무화를 추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독재자 히틀러를 합성한 대형 포스터가 툴롱시에 떴다. /트위터
(파리 AF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경찰이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여권'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21일부터 50명 이상이 모이는 문화·여가 시설을 이용할 때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보건 증명서'(passe sanitaire)를 제시하도록 했다. 이에 더해 오는 9일부터는 카페나 기차 등 대중 시설 이용 시에도 보건 증명서를 지참해야 한다. 백신 여권 법안은 의회를 통과하고 헌법재판소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일에야 ‘성인 1회 이상 백신 접종률 70%’의 벽을 간신히 넘었다. 백신 접종 대상인 12세 이상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68%다. 지난 4월 이래 50%대에 정체돼 있던 접종률은 2주에 1%포인트꼴로 올랐다. 그나마 최근 플로리다 등 남부를 중심으로 델타 변이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자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백신을 맞기 시작해 간신히 달성한 수치다. 미 보건 당국은 집단면역을 달성하려면 접종률이 80%는 돼야 한다고 본다.
미국도 백신을 맞으라는 정부와 백신 기피층이 내전에 가까운 갈등을 벌이고 있다. 백신이 남아돌아 수천만 회분을 폐기 처분하고, 백신 맞는 이에게 100달러(약 11만원)를 주는데도 대상자의 30%, 9300만여 명이 백신을 거부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비극”이라며 한탄했다. 최대 도시 뉴욕은 백신 기피층을 압박하고자 오는 16일부터 식당·헬스장 등 실내 시설에 백신 미접종자를 입장하지 못하게 할 예정이다. 구글·월마트 등 대기업도 직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CNN은 백신을 안 맞는 직원 3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랜싱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미시간주 랜싱의 주의회 의사당에서 지난 6일(현지 시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집회를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병원, 대학, 기업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을 막으려 직원들의 백신접종을 의무화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의 백신 기피 정서의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유럽·미국 등에선 개인의 사생활, 특히 신체와 관련된 일을 국가가 강제하는 데 거부감이 꽤 크다. 팬데믹 첫해인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서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두고도 큰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개인 삶에 개입하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결과도 내가 책임진다(honor system)’는 시민사회 근본 가치를 흔든다는 인식이 있다.
백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종교적 거부감도 한몫한다. 지난 1796년 치명적 전염병이었던 천연두 백신이 개발돼 1850년대 영국이 유아 접종 의무화 조치를 발표할 때부터 백신 반대 시위가 일었다. 동물에게서 추출한 원료나 병균을 사람의 몸에 집어넣는 백신의 원리를 근본주의 기독교와 유대교 등에선 아직도 ‘신(神)의 뜻을 거스른다’고 본다. 미국 등에선 독감·소아마비 백신마저 어린이 자폐를 유발한다거나 유전자 구조를 바꾼다, 생식 능력을 훼손한다는 설이 퍼져있다.
프랑스의 경우 오래전부터 항생제와 우울증 치료제 복용이 많은 나라이고, 그에 따라 거대 제약사가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2009년 돼지 독감 유행 때 정부의 판단 착오로 수백만 명분의 백신을 사들였다가 폐기 처분한 사건이 정부의 백신 정책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다. 일부 미국 흑인 사이에선 1930~70년대 보건 당국이 매독 치료 항생제의 효능을 몰래 실험한 비윤리적 전력 때문에, ‘정부가 맞으라는 백신은 무조건 불신한다’는 분위기도 있다.
이런 정서에 극단적 정치 음모론이 가세했다. 코로나라는 생소한 바이러스의 기원과 전파를 놓고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상황에서, 백신 역시 전례 없이 급속도로 개발·승인됐다. “빌 게이츠와 거대 제약사가 백신 돈벌이를 위해 바이러스를 뿌렸다”는 음모론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졌다. 올해 민주당 집권 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주지사 등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반(反)과학·반정부 풍조에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지난 4일 미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에서 12세 청소년이 화이자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다. 플로리다 등 미 남부에선 델타 변이 확산으로 입원자와 사망자가 급증하자 백신 거부 정서에 일부 균열이 생기며 접종률이 약간 늘고 있다. 그러나 플로리다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인구 비율은 아직 40%대에 머무른다. /AP 연합뉴스
미 카이저패밀리재단 조사에 따르면 백신 기피층의 3분의 1 정도는 단순히 “코로나 백신이 너무 갑자기 나와 안전성에 불안이 있다”고 본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긴급 승인만 났을 뿐인 백신을 왜 강제로 맞게 하느냐”는 반발을 의식, 내달 중 백신을 정식 승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뉴욕에서 미국과 한국의 여러가지 문제를 보고 전합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파리에 상주하며 유럽 소식을 전하는 유럽특파원입니다. 유럽에 관심 있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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