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빨리 구할걸” 대만 매운 언니도 얻어터졌다
입력 2021.05.27 21:56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 10일 온라인으로 열린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매운 대만 언니’. 대만 첫 여성 지도자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별명이다. 그간 중국의 압박에 맞선 강한 이미지로 승승장구했던 차이잉원 총통이 최근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5월 들어 대만 내 코로나가 급증한 데다 백신 확보도 늦어 중도층이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참패했던 야당은 이를 계기로 차이 총통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고, 중국은 백신을 앞세워 차이 총통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대만민의기금회가 지난 17~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45%로 지난해 1월 재선 성공 이후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작년 5월(71%)과 비교하면 1년 사이 25%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방역과 백신 확보 실패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27일 하루 671명의 코로나 환자가 나왔고 13명이 사망했다. 하루 사망자 수로 역대 최다다. 급증한 환자로 중환자실을 비롯한 병상이 부족해 병원마다 비상이 걸렸다.
백신 접종도 전 세계 평균에 한참 뒤처진 상태다. 대만 인구 가운데 25일까지 코로나 백신을 맞은 사람은 1.4%에 불과해 전 세계 평균(22%)에도 못 미친다. 대만 정부는 8월까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미국 모더나 백신 등 1000만회 분량을 수입할 예정이지만 당장 접종할 백신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이례적 가뭄으로 5월에만 두 차례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나면서 민진당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커지는 것도 지지율 하락을 이끌었다는 해석이다.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면서 야당인 국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중국 제약사가 생산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이라도 들여오겠다며 중국 의약품 대리상과의 접촉을 허용해 달라고 공개 요구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국민당 후보로 나섰다가 차이 총통에게 대패했던 한궈위 전 가오슝 시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민당 소속 지자체장들에게 자체적으로 백신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중국도 차이 총통 압박에 나섰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지난 24일 “대만 동포들이 하루빨리 대륙(중국) 백신을 쓸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상하이의약위생발전기금과 장쑤성 해협양안문화교류촉진회 등 관변단체들은 대만에 대한 백신, 의료용품 지원 의사를 밝혔다. 국민당 인사들은 “중국산 백신을 수입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차이잉원 총통은 26일 민진당 지도부와 가진 화상회의에서 “백신 구매는 반드시 중앙정부가 총괄해야 한다”며 국민당 지자체장들의 주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독일 바이오엔테크 백신을 사기 위해 독일 측과 계약이 마무리 단계였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구매가 지연됐다고 주장했다. 대만 대륙위원회도 이날 “대륙 측이 대만 방역 물자를 사는 것을 막지 말고, 압박을 중지하는 것이 대만에 선의를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만 정부가 6월 안에 들여오겠다고 밝힌 백신이 200만회 분량에 불과하고 대만 제약사들이 자체 개발하는 백신 역시 빨라야 8월 이후에나 사용이 가능해 대만의 백신 수급난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국민당은 차이 총통에 대해 연일 총공세를 펴고 있다. 국민당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사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당 측은 “지난해 차이 총통은 10점 만점에 6.19점을 받았지만 올해는 최저임금 개선, 환경보호, 사법개혁,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5점 미만을 받았다”며 “차이 총통이 청년층 초임을 월 3만대만달러(약 120만원)로 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2만7000대만달러(108만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청년층 저임금은 최근 몇 년간 대만 선거의 주요 이슈였다.
차이 총통이 ‘5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앞으로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차이 총통은 그간 대만 내 높은 지지율, 홍콩 사태 이후 높아진 대만 내 반중 여론, 반도체 호황에 따른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중국에 맞서고 미국에 협조하는 외교 전략을 펴왔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내년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선전하지 못할 경우 외교 분야에서 정치적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19년부터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중국을 전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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