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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美, 세계 위해 백신의 무기고 되겠다”

최만섭 2021. 4. 30. 05:09

바이든 “美, 세계 위해 백신의 무기고 되겠다”

취임 100일, 첫 의회 연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입력 2021.04.29 23:48 | 수정 2021.04.29 23:48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취임 후 첫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각) 취임 후 첫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전 세계) 민주주의의 무기고였듯 (팬데믹 시대를 맞아) 다른 나라들을 위한 백신의 무기고가 되겠다”고 말했다.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두고 연설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세계 정상들과 대화할 때 ‘미국이 (국제 무대에) 돌아온 것은 알겠지만 얼마나 오래 있을 거냐’는 질문을 가장 자주 받는다”며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머물 것이란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고립주의 경향을 보였던 미국이 세계 무대에 복귀했고 미국 내 백신 생산이 수요를 충족한 만큼 글로벌 코로나 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백악관은 이날 미국 정부가 확보해 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원료를 인도에 보내, 2000만회분 이상의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돕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지식재산권 일시 유예 같은 파격적인 추가 대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중국과 관련해 바이든은 “(미·중 간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유럽의 나토가 그러하듯 인도·태평양에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말했다”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공화당 의원들도 동참해 중국 견제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보여줬다. ‘나토’ 거론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 간 다자안보체제 형성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향후 관심을 끌 전망이다.

바이든 뒤에 해리스와 펠로시… 미국 권력승계 1·2위가 모두 여성 - 조 바이든(가운데) 미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취임 후 첫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뒤에서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미 권력 승계 서열 1위인 부통령(당연직 상원의장)과 2위인 하원의장이 모두 여성인 것은 미 역사상 처음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바이든은 또 “국경을 초월해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겠다고 (시진핑에게) 명확하게 밝혔다”며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이나 미국 기술과 지식재산권 절도처럼 미국 근로자와 산업을 약화시키는 불공정 무역 관행에 맞설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미국은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공약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면서 “책임감 있는 어떤 미국 대통령도 기본적 인권 침해에 침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 군사, 인권 등 전방위적 대중 견제를 예고한 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은 “미국과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이란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외교와 엄중한 억지(stern deterrence)로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의 대화 문은 열어 놓되 성과가 나올 때까지 대북 경제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대북 억지에 대한 동맹들의 동참도 중시할 것으로 예상돼 문재인 정부와의 이견이 예상된다. 또 바이든이 연설에서 인권 옹호를 “미국의 본질”이라고 표현하며 “그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 만큼 북한 인권 문제도 계속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상원의원으로 36년,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8년 간 역대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을 들었던 바이든은 이날 ‘미국 대통령’으로 처음 연단에 올랐다. 그는 “미치와 척은 잘 알겠지만 의사당에 들어서니 거의 집에 온 것 같다”며 입을 뗐다. 과거 상원 동료였던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에 대한 친근감과 의회에 돌아온 감회를 담은 말이었다.

 

대통령의 부인과 부통령의 남편 -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오른쪽) 여사가 28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의사당에서 열린 바이든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바이든 여사 옆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더그 엠호프 변호사가 서 있다. /AFP 연합뉴스

바이든은 “마담 스피커(여성 하원의장), 마담 바이스 프레지던트(여성 부통령)”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하며 뒤에 나란히 앉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돌아봤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 연단에서 이런 말을 한 대통령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제 그럴 때도 됐다”며 두 여성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미 역사상 최초로 권력 승계 서열 1위 부통령과 2위 하원의장이 모두 여성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각한 것이다.

이날 상·하원 합동 연설은 엄격한 코로나 예방 조치 속에 열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상·하원 의원 530명 중 200명만 초청했다. 과거에는 대통령과 의원들이 초청한 1000명이 넘는 외빈들이 위층 방청석을 꽉 채웠지만 올해는 ‘화상 초청’으로 대체됐다. 참석자는 줄었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폭스뉴스의 의회 담당 채드 퍼그램 기자는 “바이든은 64분간 연설했고, 연설 중 57번 박수 갈채로 연설이 중단됐다”고 했다.

바이든은 “100일 전 취임 선서를 할 때 나는 위기에 빠진 국가를 물려받았다”며 “이제 단 100일 만에 나는 국가에 보고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다시 전진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절대 주저앉아 있지 않는다. 항상 일어선다”며 “미국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말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바이든은 자신이 제시한 2조달러(약 220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안 ‘미국 일자리 계획’과 1조8000억달러(약 2000조원) 규모의 보육·교육 투자안인 ‘미국 가족 계획’을 의회가 통과시켜야 한다고 설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그는 “수십 년 전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2%를 연구·개발에 쓰곤 했다. 지금은 1%도 안 쓴다”며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일자리 계획’을 통해 “첨단 배터리, 생명공학, 반도체, 청정 에너지 같은 미래의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했다.

바이든 연설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미국우선주의’도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미국인의 세금은 미국에서, 미국인의 일자리를 만드는, 미국 물건을 사는 데 쓰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풍력 발전 터빈이 베이징 대신 피츠버그에서 만들어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 근로자들이 세계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생산을 주도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면서 “미국 일자리 계획의 모든 투자는 하나의 원칙에 의해 이뤄질 것이다. ‘미국 물건을 사라(Buy America)’이다”라고 말했다. 또 “미국 재계와 부유한 1%의 미국인들이 공정한 몫을 낼 때가 됐다”며 ‘부자 증세’로 재원 조달을 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