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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문화一流] 결함투성이 인간 향한 젊은 의학자의 연민, 獨 문학의 전설이 되었다

최만섭 2021. 3. 8. 05:30

[박종호의 문화一流] 결함투성이 인간 향한 젊은 의학자의 연민, 獨 문학의 전설이 되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

입력 2021.03.08 03:00 | 수정 2021.03.08 03:00

 

 

 

 

 

리마트강에서 바라본 취리히 도심/박종호

스위스 최대의 도시 취리히는 도심 가운데로 리마트강이 흐르면서 도시를 동서 양편으로 나눈다. 스위스 하면 떠올리는 은행이나 시계점이나 초콜릿 가게 등이 즐비한 화려한 곳은 서안(西岸)이지만, 깊은 매력은 동안(東岸)에서 맛볼 수 있다. 그곳은 대학이 모여 있고 학생과 예술가가 많으며, 골목마다 중립국으로 피신했던 망명객들의 자취가 배어 있다.

그 동네의 경사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바로 레닌이 살던 집이다. 러시아에서 도망친 레닌은 슈피겔가세 14번지의 작은 방에서 살았다. 그는 여기서 중앙도서관까지 매일 걸어 다니면서 자신의 이론을 집필하고 혁명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로 돌아가 혁명을 성공시켰으니, 그야말로 공산 혁명의 성지인 셈이다.

그런데 바로 옆집인 12번지에도 현판이 하나 있는데, 그곳을 알아보는 사람은 레닌에 비하면 아주 적다. 거기에는 “1837년 2월 19일 여기서 게오르크 뷔히너가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뷔히너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짧은 한 줄에 얼마나 많은 아쉬움이 들어있는지 울컥하는 감상이 밀려온다.

게오르크 뷔히너/위키피디아

1836년 9월에 23세의 젊은 독일 의학자 게오르크 뷔히너(Karl Georg Büchner·1813~1837)는 취리히대학 의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1월부터 같은 대학에서 해부학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직장을 위해 취리히로 이사한 뷔히너가 얻었던 방이 슈피겔가세 12번지였다. 여기서 골목을 따라 취리히대학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뷔히너는 이 집에 묵으면서 철저하게 신경비교해부학 강의를 준비한다. 그러나 가을 학기가 개강하자 수강생이 적어서 실망한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훌륭한 교수가 되리라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이 방에서 자신이 쓰던 원고를 꺼내서 집필을 계속한다. 이 희곡이 문학사상 불세출의 문제작인 ‘보이체크'다.

그러나 단 한 학기만을 보내고 겨울방학에 뷔히너는 병석에 눕고 만다. 장티푸스에 걸린 것인데, 해부학 표본을 만들다가 감염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결국 뷔히너는 봄 학기를 맞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앞날이 창창하던 젊은 교수는 학문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죽었지만, 그가 써놓았던 글로 세계 문학계를 뒤흔들게 된다. 지금도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 ‘게오르크 뷔히너 상’이다.

취리히 대학 본관/취리히 대학 홈페이지

뷔히너는 의사인 아버지와 문학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많이 하고 글을 썼다. 그는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의대에 진학하였다. 의대를 졸업하고 해부학자가 되었지만, 틈틈이 희곡과 소설을 집필하였다.

 

뷔히너의 작품들은 세상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천재들이 연구실이나 서재에 갇혀서 사회와 단절하거나 독선적인 성향을 가지기 쉬운 데에 반해, 뷔히너는 항상 남을 생각하고 다 함께 나아가려고 했던 이타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교수로서도 강의 준비에 최선을 다하였고 늘 학생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선생이었다. 그의 죽음도 학생들을 위한 강의 준비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운명은 그에게 비록 단 한 학기만을 허락하였지만, 만일 계속 강의를 했다면 학문적으로도 업적을 남기고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수가 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뷔히너는 짧은 삶에서 ‘당통의 죽음'과 ‘레옹스와 레나' 그리고 미완성의 ‘보이체크’ 등 희곡 3편과 소설 ‘렌츠’ 1편을 남겼다. 아주 적은 숫자지만, 23세라는 짧은 삶과 의학도이자 의대 교수였던 직업에 비추어보면 열정과 성실의 소산이다. 그리고 단 4편으로 그는, 비록 죽은 다음이지만 독일 문단에 폭풍을 일으킨다.

괴테와 실러로 대표되던 독일 문단에 뷔히너가 창작해낸 극 중 인물들은 충격적이었다. 그때까지 주인공은 이상적이거나 적어도 이상을 지향하는 인간상이었으며, 그런 태도와 행동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에 반하여 뷔히너는 ‘결함을 가진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서 그들에 대한 세상의 관심과 애정을 환기했다.

뷔히너의 이른 죽음으로 그의 작품들도 함께 사라지는 듯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두 세대나 흐른 뒤에 봇물이 터지듯이 공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최대 걸작인 ‘보이체크'가 미완성 부분을 수선(修繕)하여 초연되었다. 주인공 보이체크는 살인죄로 체포되어 사형당했던 실존 인물로, 이미 정신 질환 판정을 받았고 정상참작의 여지가 컸던 그에 대한 사형 집행은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뷔히너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보이체크'에서 한 기층민을 살인자로 만들어가는 인간들의 모순과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

우리는 위인을 말할 때면 주로 인생에서 성공을 거둔 승자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쓰러져 간 사람 중에도 생각이나 시도만으로도 기억하거나 존경할 사람은 많다. 요즘 같은 시대에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 쓰러져 갔던 젊은 학자이자 예술가를 생각한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