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 眞 양지은 “마미부 보고 용기냈더니 ‘양지’가 펼쳐졌죠”
금수저? 덕지덕지 빨간 딱지에 쫓겨나기도
“준결승 탈락 뒤 환하게 맞아준 동료들에 감사”
입력 2021.03.06 01:00 | 수정 2021.03.06 01:00
미스트롯2의 진이 된 양지은은 “경연장 무대에 서는 설렘과 행복감에 밥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며 “끼니를 자주 걸렀더니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며 웃었다./고운호 기자
양지은(31)이 결승에 올랐을 때, 그의 판소리 스승님이 말했다. “판소리 ‘흥보가’에서 흥보가 쫓겨날 때 ‘응지(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응지 되오’라는 대목이 있지. 이제 음지였던 시간들은 모두 잊자. 이제 네 이름처럼 ‘양지’만 펼쳐 질 것이다.”
한라산 백록담 같은 새파란 드레스를 입은 그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난 4일 밤 방송된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 최종 결승전. 1대 미스터트롯 진(眞) 임영웅이 그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순간, 왕관에 박힌 보석만 한 눈물이 또르르 굴렀다. 심사위원까지 중간합산 점수 순위로는 2위였지만 실시간 문자 투표에서 23% 를 얻으며 양지은은 최종 1위가 됐다.
TV조선
최종 시청률 32.9%(닐슨 전국 기준)로 자체 최고를 경신하며 매회 드라마를 쓴 ‘미스트롯2’는 새내기 트로트 가수 양지은의 인생 역전 드라마이기도 했다. 2010년 시한부 아버지를 위한 신장이식으로 접었던 명창의 꿈. 두 아이 엄마로 살면서 하루하루 꿈에서 더 멀어졌다 생각했다. “‘미스트롯'이 제게 운명같이 왔어요. 둘째를 낳고 3주쯤 돼서 몸조리하고 있을 때 미스트롯(2019) 첫 방송을 봤어요. 예쁜 참가자들이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 있는데,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는 거예요. 그러다 ‘마미부’를 보고는, ‘저거다!’ 싶었지요.” 그는 “길 가다 모르는 분과 눈이 마주쳐도 ‘저분이 나를 뽑아주셨다’고 큰절 올리고 싶은 마음”이라며 “초심 잃지 않고 감동과 위로 드리는 가수 되겠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목소리라는 얘길 들었다. 초등학교 때 KBS 전국 동요대회에 나가 장려상을 받았다. 세계 무대를 누비는 성악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세가 기울고 있다는 걸 눈치로 알았다. 집 전화기 코드가 뽑혀 있는 걸 보고 나서다. 군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주변의 도움도 한사코 거절한 부모님이었다. 한창 사춘기인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집 안에 온통 빨간 딱지가 붙었다. 부모님은 잠깐만 다른 집에 옮겨 살면 된다고 했지만 1년을 갔다. “집이 아니라, 공판장에서 살았어요. 관광 상품 팔던 곳이어서 유리창으로 돼 있는 거예요. 학교 언니들이 ‘저게 뭔가’ 하고 안을 들여다보는데 자다 일어난 저랑 눈이 딱 마주친 거예요. 그날 엄마한테 ‘커튼 달아달라’고 엉엉 울었죠.”
그가 강진의 ‘붓’을 인생곡으로 고른 이유는 가사가 자신의 ‘소리길’과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힘겨운 세월을 버티고 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그 설움 어찌 다 말할까 이리 오게 고생 많았네’라는 말을 보면서 판소리 스승님 말씀이 생각났어요. ‘험난하고 힘들었던 네 소리길이 빛을 발한다니 기쁘다’라셨거든요. 트로트 한다면 속상하실까 봐 미리 말씀도 못 드렸는데….”
중학교 때 제주에서 목포까지 배를 타고 다니며 소리를 배웠다. 수업료가 자꾸 밀렸다. 합숙할 때는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괜찮다”는 말씀에 뭐라든 대신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군색한 집안이 아니었다. 양지은 아버지의 외삼촌은 한림공원을 만든 제주 명망가라고 했다. “저희가 고생하는 걸 뒤늦게 전해들으셔서 당시 2000만원을 빌려주셨어요. 그걸로 5층짜리 아파트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우리에게 집이 생겼다’며 정말 신이 나서 엄마와 도배지를 함께 발랐거든요.” 5층에 있는 그때 그 집에 아직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 진 상금으로 암과 당뇨합병증으로 발이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5층이 아닌 1층으로 집을 옮겨드리겠다고 말한 것이다.
지난 3일 미스트롯 진 양지은은 인터뷰 도중 금수저 논란에 대해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살 만해지니 닥친 아버지의 시한부 선고. 어머니가 교환 이식을 신청했지만 대기자가 수천 명이었다. 부모가 모두 말렸지만, 양지은이 나섰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내가 심청가를 아주 잘 부른다”고 웃었다.
가수의 꿈을 가장 지지해준 건 남편이었다. 지원서 양식을 뽑아다 줬고, 목요일마다 미스터트롯을 함께 보면서 노래 스타일을 함께 분석했다. 아이가 잠들면 연습을 위해 코인 노래방에 다녀오라고 했다. 그는 미스트롯2 동료에게도 공을 돌렸다. 준결승 탈락에서 다시 돌아온 양지은을 가장 환하게 맞아준 이들이었다. “준결승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에 들어오는데 모두 기립박수를 해주며 ‘방송 나가면 최고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줬어요. 동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수많은 도전과 시험 앞에서 힘들어할 때 ‘엄마가 해냈어’라는 장면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다 보면 언젠간 여러분한테도 ‘양지’가 펼쳐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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