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아파트값 25% 급등… 서민 내집마련 19년 걸린다
집값 잡겠다는 정부의 2020 성적표, 서울 저가주택이 더 상승
저소득층 소득은 줄었는데 내집마련은 9개월새 2년 반 늦어져
입력 2021.01.04 03:12
서울 노원구에 사는 40대 직장인 최모 씨는 본인이 살던 전셋집을 매수하기로 집주인과 협의하다가 최근 틀어졌다. 두 달 전 집주인이 “연말까지 잔금을 내면 시세보다 3000만원 낮춰주겠다”며 먼저 제안했지만 그 후 한 달 사이 시세가 1억원 넘게 오르면서 “안 팔겠다”며 말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비(非)강남 집값이 급등하면서 이 지역들 아파트를 구입하려던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더 멀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서울 집값은 평균적으로 계속 올랐지만 강남과 한강변 등 일부 고가 지역이 주도하는 양상이었다. 상대적 박탈감은 느껴도 서민들의 실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주택 공급 부족, 전셋값 급등에 따른 불안 심리로 저가 주택의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이제 서민들은 좁은 집으로 옮기거나 도심에서 더 먼 외곽 지역으로 밀려나야 할 처지다.
◇서초보다 노원 집값이 3배 더 올랐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은 2015년 6월 2000만원을 돌파했고 2018년 9월 3000만원을 넘어섰다. 1000만원 오르는 데 3년 3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그 후 1000만원이 더 올라 지난달 4000만원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2년 3개월이었다.

/그래픽=박상훈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값
특히 지난 1년간은 부유층이 많은 강남권보다 서민 주택 밀집 지역인 강북의 집값 상승률이 더 가팔랐다. 한강 이남 11구의 평균 아파트 값이 17.4% 오르는 동안 강북 14구는 25.2% 올랐다. 평당 1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여럿인 서초구(11%)보다 서민 주거지인 노원구(33%)가 3배 더 가파르게 올랐다.
노원구 상계동 ‘중계센트럴파크’ 84㎡(이하 전용면적)는 작년 1월만 하더라도 6억6000만원이던 실거래가가 10월 8억9000만원으로 뛰었다. 중계동 ‘청구3차’ 84㎡도 1월 9억9000만원에서 연말 12억원으로 올랐다. 상계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차법이 개정된 8월 이후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신축은 물론 낡은 아파트마저 매물이 나오면 구경도 않고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며 “거래가 많지는 않지만 가끔씩 성사되는 건은 대부분 신고가(新高價) 거래”라고 전했다.
◇소득 적을수록 내 집 마련 부담 커
집값이 무차별로 오르고 소득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면서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주택 가격과 소득수준별 주택 구매력을 5단계로 나눠 분석한 분위별 PIR(소득을 모두 저축한다고 가정할 때 주택 구입에 걸리는 시간) 자료에 따르면, 저소득 가구들의 내 집 마련 부담이 고소득 가구에 비해 더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

소득 분위별 주택 매수에 걸리는 기간
가장 소득이 낮은 하위 20%(1분위) 가구가 하위 20% 가격대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19년 말 16.5년에서 작년 9월 19년으로 9개월 사이 2년 6개월 늘었다. 그보다 소득이 높은 2분위 가구도 14.5년에서 18.1년으로 단기간에 크게 늦어졌다. 반면 소득이 가장 높은 상위 20%(5분위)가 상위 20% 가격의 주택을 매수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2019년 말 15.2년에서 작년 9월 15.5년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63만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지만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39만7000원으로 오히려 2.9% 증가했다. 소득이 올라도 내 집 마련이 아득한 저소득층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강북 집값이 급등하면 서민 무주택자 부담이 커질뿐더러 1주택자가 보유세 때문에 지출을 줄이면서 내수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다(多)주택자 거래세 완화 등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정확하고 친절한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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