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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공수처는 ‘2021년 체제’의 시작이다

최만섭 2020. 12. 16. 05:01

[송평인 칼럼]공수처는 ‘2021년 체제’의 시작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20-12-16 03:00수정 2020-12-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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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배후 두 원로 백낙청 이해찬
백낙청이 반복해온 ‘○○○○년 체제론’
이해찬이 들고나온 20년 집권론
내년 출범 공수처로 20년 집권하면
대한민국의 성공한 역사는 끝

송평인 논설위원

잡지 ‘창작과 비평’의 평생 독자다. 대학에 다닐 때는 창비가 폐간당해 나오지 않을 때이지만 없는 돈에도 창간호부터의 영인본을 구입해 읽었다. 복간된 후에도 창비를 쭉 봤다. 창비가 선호하는 리얼리즘 문학작품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별로 읽지 못했지만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창비에서 평을 보고 사서 읽었다.

창비의 설립자인 백낙청 씨는 문학평론만이 아니라 사회변혁론도 펼쳐왔다. 백 씨의 변혁론에 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변혁론이 진보 진영의 가장 정교한 변혁론이라고는 생각한다. 백 씨는 처음에는 계급모순론에 대항해 분단모순론을 펼쳤고 나중에 북한 세습체제가 문제가 되자 남한의 변혁 과정을 통해 북한의 변혁도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과제론을 펼쳤다. 이중과제론은 북한의 변혁 추구 부분이 약하고 그래서 남로당이 북로당에 잡아먹혔듯이 남한의 변혁 세력이 북한을 변혁하기는커녕 북한에 변혁당할 우려가 크다는 게 나의 비판이다.

창비는 문학 중심의 잡지였으나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정치평론을 크게 늘렸다. 과거 창비는 선동적이라기보다는 비판적이었는데 사실 중시의 비판 정신마저도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많이 사라졌다. 창비에 광우병과 천안함에 대한 선동적인 글이 대거 실렸다. 그것은 창비의 편집책임이 백 씨 이후 세대로 넘어간 것과도 무관치 않다. 백 씨 자신은 나중에 천안함 선동 등에 대해 자성하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창비가 ‘○○○○년 체제론’을 들고나온 것은 2007년 무렵부터다. 백 씨의 제자 세대들이 1987년 체제를 넘어 남북연합을 목표로 한 체제를 만들자는 의미로 ‘○○○○년 체제론’을 펼쳤다. 백 씨 자신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2013년 체제론이란 책을 썼다. ‘내가 보수 신문사 사주라면 잠이 안 올 것’이라는 점잖지 못한 말까지 하고 다녔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으로 꿈은 깨졌다.

 

그러다 2016년 박 대통령 탄핵 정국이 도래했다. ‘2017년 체제론’이 또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도 ‘○○○○년 체제론’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를 정말로 칠 기회가 왔다고 여겼을 때는 말부터 하지 않는다. 몽둥이를 뒤에 숨긴 채 조용히 접근한다. 그들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잡았다고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은 단순히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두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기 위한 작업이다. 그리하여 김대중과 노무현에서 문재인으로 직접 이어지는 자신들의 역사 발전 궤도를 복원하고 이 궤도를 이승만 집권 이전 해방 전후사의 좌파나 중도 좌파와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배후에 원로 원탁회의라는 게 있었다. 원탁회의의 세 중심 원로가 백낙청 이해찬 함세웅이다. 함 신부는 정치적인 일에 종교인을 동원하는 것 외에 큰 의미는 없다. 백 씨와 이 전 의원이 핵심이다. 백 씨는 이론의 대부이고 이 전 의원은 정치의 대부다. 이 전 의원이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리에 도전했을 때 그의 출마는 의원 선수(選數)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진보 진영 전체가 체제 변혁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씨는 전당대회 때부터 20년 집권론을 펼쳤다. 그의 말에 따르면 1800년 정조 사후 220년간 지속된 수구 세력의 편향을 극복하려면, 내가 이해하기로는 남북연합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려면 최소한 20년의 집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20년을 집권하는 데 꼭 필요한 기구가 공수처다. 이 정권이 왜 온갖 억지와 추태를 부리면서까지, 심지어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공수처 설립과 검찰 파괴에 집착했는지는 높은 역사의 고지에서 봐야 보인다.

공수처는 ‘2021년 체제’의 시작이다. 공수처는 국가의 틀인 형사사법체제의 중대한 변경으로서 헌법 개정을 통하지 않은, 헌법 개정 수준의 변경이다. 문재인 정권은 공수처를 최대한 활용해 2022년 재집권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재집권에 성공하면 대한민국의 성공한 역사를 만든 기반을 향후 20년간 하나씩 파괴해갈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