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천박하다’가 유행어가 된 세상
입력 2020.12.11 03:00
“더럽고 천박한 것.”
제 눈에 자기 흠은 잘 안 보이는 법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화살보다 더 크게 성내며 어깃장을 놓곤 한다. 위 대사는 최근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 ‘펜트하우스’ 속 불륜녀 천서진(김소연)이 자기 남편과 바람피운다고 의심한 오윤희(유진)에게 퍼부은 말. 남들 보기에 가진 건 많으나, 질투와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인성은 바닥인 인간상이 천서진이다. 가없는 악행. 하지만 반성 따윈 없이 타인을 비난하며 ‘피해자 흉내’ 내기 일쑤다. 심지어 성인(聖人)이라도 된 양 주변을 꾀어 가르치려 들기까지 한다. 비겁한 이들이 저지르기 쉬운 행위. 비열한 자들의 공통분모다.
이 드라마의 배경인 헤라팰리스는 마치 바벨탑을 쌓듯 100층으로 올라갈수록 입주자 부(富)의 급이 달라진다. 숫자에 따라 사람 등급도 매겨진다. 낯선 설정도 아니다. 수직적 계급사회를 수평 칸으로 보여준 영화 ‘설국열차’나 반지하, 지하 계단으로 표현한 영화 ‘기생충’ 등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천박함은 계층도, 등급도 따지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서도 ‘천박하다’는 대사는 메아리치듯, 아파트 층수를 넘나들며 돌고 돈다.
천박함은 속을 내보일 때 더 적나라한 민낯을 보이기 때문일까. 극 중 마마보이 변호사 이규진(봉태규)이 아내 대신 엄마한테 옷 골라 달라며 집 안에서 팬티 바람으로 서성대거나, 사업가 주단태(엄기준)가 불륜 상대 천서진에게 밀회의 상징으로 고급 브라 팬티 세트를 선물하고, 정사(情事)를 암시하는 장면에선 어김없이 속옷 차림으로 화면을 채운다. 그래서인지 시청자들 사이에선 ‘팬티하우스’라고도 한단다. ‘천박’이란 단어가 반복되다 못해 지루하게 들릴 즈음, 그의 대체어로 나온 대사는 ‘우아병’. “우아병 걸렸다”는 건, ‘있는 척’하려 버둥거리는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럭셔리의 반대는 빈곤함이 아니라 천박함”이라 규정한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명제가 새삼 떠오른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뉴스가 가득한 요즘, ‘갑질 졸부’를 가리키든 ‘내로남불 정치인’의 레퍼토리든, ‘천박’이란 단어는 이 시대의 유행어가 된 듯하다. 스스로를 ‘상류층’으로 부를진 몰라도, 하는 짓은 ‘삼류층’ 그 자체니까.
돈질 또는 천박 같은 단어를 예술적 방식으로, 말마따나 우아하게 극복해내는 경우도 있다.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루브르를 위한 경매(Bid for the Louvre)’가 그렇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미래’를 위해 루이뷔통, 디오르, 바셰론 콘스탄틴, 카르티에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가 루브르와 손잡고 나선 것. 그간 대외적 기부금에 거의 ‘노(No)’로 일관했던 루브르 박물관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운영이 어려웠다. 올해 예상 손실만 9000만유로(약 1184억원). 이 회사들은 루브르에 영감 받은 작품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고, 수익금 모두 루브르에 기부한다. 학생, 취약 계층, 장애인 등을 위해 세우는 예술 문화 교육 센터 등을 포함한 루브르 발전 프로젝트에 쓰인다. 누군가에겐 ‘가방팔이’ 등으로 불릴지언정, 이들은 역사적 사명감으로 다음 세대를 향해 손 내밀고 있었다.
얼마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을 찾은 디자이너 이상봉이 “감격스럽다”며 이은 말이 귓가에 맴돈다. 지난 2006년 한글 의상을 선보이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외려 국내에선 천박해 보인다는 둥 악평을 이겨내야 했다고….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이 지켜낸 자존심, 그것이 진정한 럭셔리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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