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밀레니얼 사문난적] 儒家를 키운 건 8할이 墨家

최만섭 2020. 11. 24. 05:32

[밀레니얼 사문난적] 儒家를 키운 건 8할이 墨家

임건순 철학자

입력 2020.11.24 03:00

 

 

 

기원전 중국에 수많은 대사상가가 나와서 경쟁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제자백가 시대다. 그 제자백가 시대를 연 사람이 유교의 종사 공자다. 그 공자의 첫 번째 반대자이자 비판자가 있는데 바로 겸애를 말한 묵자다. 공자가 등장하고 묵자가 공자를 비판하면서 사상사가 시작되는데 묵자는 본래 공자의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공자 사상의 한계와 단점을 보고 말았고 결국 유가에서 독립해 나가 묵가라는 사상운동 집단을 이끌었는데 당시 한비자가 말했다. 양대 현학이라고. 공자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의 유가와 묵자의 사상을 따르는 묵가가 천하의 사상계를 양분하고 있었다고.

그만큼 두 사상 집단은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팬이 안티로 돌변하면 더 무서운 법일까? 본래 공자의 학문을 배운 사람답게 그는 공자 사상의 약점과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집요하게 약점을 파고들며 매섭게 비판하고 공격했다. 묵자와 묵자 무리는 유가에 참 골치 아픈 존재이자 위협적인 존재였다.

 

묵가 사상의 대흥행은 유가 진영을 크게 자극했다.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자칫하면 묵가에 밀려 공자 사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했는데, 묵가의 세는 유가 진영 사람들을 고민하게 했다. 어떻게 묵자의 공격에 맞서 방어의 성벽을 쌓아볼까? 묵자가 지적한 그 약점들을 메꿔볼까?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게 했다. 그러면서 묵가와 싸우고 묵가를 극복해나가려는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인물이 바로 맹자와 순자다.

 

묵자와 치열하게 사상 논쟁을 벌이면서 공자 사상이 진화해 맹자와 순자로 대표되는 사상가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역시 싸우면서 닮아가는 것일까? 둘 다 적이라 할 수 있는 묵자 사상의 장점을 수용해서 공자 사상을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면서 더욱 탄탄한 논리와 체계를 갖추게 된 유가 사상은 한나라 초기 사상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 적수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불교와 도교인데 위진 남북조 시대와 수당 시대, 불교와 도교가 크게 흥하면서 유가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다. 사상적 주도권을 잃어가다시피 한 상황에서 유가는 묵가와 싸웠던 것처럼 도교⋅불교와 치열하게 싸우고 논쟁했다. 그러면서 이론적 모색과 보완을 해냈다.

 

묵가와 싸울 때처럼 도교와 불교의 장점을 받아들여 형이상학과 우주론을 유가 사상 내부에 편입했다. 결국 다시 한번 적수들과 싸우면서 크게 진화에 성공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성리학이다. 유가가 다시 해낸 것이다. 경쟁을 통해 상대의 장점을 수용하며 훌륭히 거듭나 다시 사상적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유가의 역사는 이렇게 치열한 경쟁과 논쟁을 통한 진화의 역사라 할 수 있는데 애초에 묵가에 진 빚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묵가에 매를 맞고 치열하게 싸우면서 유가는 강한 맷집을 가지게 되었고 논쟁의 힘을 갖추게 되었다. 그 결과 언제든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해도 자신 있게 싸울 수 있게 되었고 싸움을 통해 상대의 장점까지도 수용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유가의 저력은 묵가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유가를 키운 건 8할이 묵가라고, 묵가가 유가를 그렇게 신랄하게 공격하며 도전하지 않았다면 맹자도 순자도 왕양명도 주희도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학문의 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신랄하게 비판받고 지적받는 것이다. 특히 바로 옆에 있는 동학들에게 비판받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겪어야만 연구자는 크게 성장해나갈 수 있다. 신랄한 공격과 비판을 하는 이들이 옆에 있어야 자기 생각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고 논리를 탄탄하게 세울 수 있는데, 연구자는 반드시 묵자 같은 이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안타깝게도 현재 대학원마다 사람이 없다. 인문학 특히 철학 중에서도 동양 철학을 연구하는 젊은 인력이 없다. 단순히 수가 적은 게 아니라 서로 날카롭게 비판하며 성장을 도울 이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비판의 매질은 연구자에게 큰 복인데 지금 대학에서는 그런 환경이 만들어질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문 후속 세대가 자라날 수 있을까? 매우 안타까운 일인데 학문의 세계만이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어디를 가든 라이벌과 훼방꾼들을 만난다. 훼방꾼도 무조건 폄하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비록 논점을 흐리고 진영 논리에 매몰해서 공론장을 혼탁시키는 맹점은 있지만 어떤 식으로는 우리가 이를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미워할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자신들만의 묵자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임건순 철학자